<담양인물지도>95. 담양우표박물관 이진하 관장
<담양인물지도>95. 담양우표박물관 이진하 관장
  • 설재록 작가
  • 승인 2017.05.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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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우표박물관’은 우리나라 유일의 우표 전문 박물관입니다”

 
중학교 때 나는 우표를 모으고 있었다. 용돈이 생기면 우표를 파는 문방구에 가서 외국우표를 샀다. 새로 나온 기념우표를 사기 위해 우체국 앞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기도 했다. 언제 내 차례가 오나 하염없이 기다리면서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사고 싶은 우표를 손에 쥐었을 때의 성취감과 행복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당시 나의 취미는 ‘우표수집’이었다. 지금 아이들이야 우표가 도대체 뭔대?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때는 우표 수집 취미는 아무나 할 수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용돈이 다소 넉넉해야만 가질 수 있는 취미였다.
 

1900년대 초, 영국령의 ‘기아나’의 어느 소녀가 한쪽 귀퉁이가 떨어진 우표의 나머지 귀퉁이도 잘랐다. 그랬더니 그 우표는 마름꼴이 되었다. 이 우표는 그야말로 희귀한 우표가 되었다. 2016년, 경매장에 나온 이 우표는 95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우표라는 개념이 들어 있는 지나 모르겠다. 이른바 ‘손편지’라는 걸 쓰지 않으니까 말이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면 대부분 휴대폰을 소지하게 된다. 상대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문자나 카톡으로 하면 된다.
 

우표가 붙은 우편물 받아보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일 년에 한두 번 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우편물은 왠지 정겹게 느껴진다.


담양 대전면 대치성당 인근에 ‘담양우표박물관’이 있다. 그런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뭔가 모를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저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새로 나온 기념우표를 사기 위해 우체국 앞에서 줄을 섰습니다. 학교에 가는 오빠 언니들의 심부름을 했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우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홉 살인가 열 살인가 그때부터였습니다. 이때 궁중의상 우표가 시리즈로 발행되었는데 우표 속의 궁중의상이 정말 아름다워 푹 빠진 겁니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으기 위해 내 생에 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우표였습니다. 그러니까 우표 수집이라기보다는 궁중의상 사진을 모았던 거죠. 그러면서 우표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갖고 모아지는 우표의 종류와 장수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커서 오빠와 언니들의 우표 수집 앨범을 인수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주위에서 나를 ‘우취인’으로 인정해 주었고, 이제는 우표박물관의 관장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담양우표박물관 관장 이진하(52)씨의 말이다.


담양우표박물관은 개인이 만든 이른바 ‘사립박물관’이다. 현재 이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표 나상국’, ‘관장 이진하’가 있고, 전시 업무를 담당하는 큐레이터가 있다. 대표와 관장은 부부지간이다.

부부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대치는 이씨의 친정부모가 살았던 곳이다. 대치에서 살았던 기억은 없는데 친정아버지의 고향이라는데 마음이 끌려 이곳으로 왔다. 이곳에 정착한 원래의 목적은 남편의 작업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표 앨범을 뒤적이다 아예 우표박물관을 만들기로 부부는 의견을 모았다.


“서울 우정사업본부 1층에 우표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은 박물관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우표 전문 박물관을 말하라면 우리 담양우표박물관 하나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박물관이라는데 나름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치한 곳이 시골이어서 관람객 수도 그다지 많지 않고, 세태의 변화로 우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운영상의 어려움은 다소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 않겠습니까?”


박물관은 월요일만 휴관한다. 개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이 박물관을 주로 찾는 사람들은 노년층과 학생들이다. 노년층은 우표에 대한 향수, 학생들은 교육적인 목적에서다. 그리고 관람료는 어른이 2천원, 학생이 1천원이다. 이런 수입만으로는 사실 운영이 어렵다. 대신 남편이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와 박물관 운영에 보탠다.


“관람객이 많지는 않지만 서울, 부산,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 각처에서 오고 있습니다. 대개 나이가 많은 분들입니다. 젊었을 때 우표 수집 취미를 가졌던 분들인데 소장하는 우표도 많고, 우표에 대한 식견도 많으신데 아마도 우표에 대한 향수 때문인 것 같아요.”


지난 5월 대나무축제 때의 일이다. 울산에 사는 노부부가 담양대나무축제를 방문했다.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였으므로 방을 구할 수가 없어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난 이 노부부는 곧바로 대치 담양우표박물관으로 향했다. 그 시각이 아침 9시였다. 이진하 관장은 이날 독촉전화를 받고 아침 9시에 박물관을 열었다. 이 노부부는 울산에서는 이름난 ‘우취인’들이었다.


담양우표박물관(Damyang stamp museum).
<작은 네모 속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는 소중한 우표는 각 분야의 시대별 변천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이씨가 소장하고 있는 우표의 수량은 본인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우표는 1884년에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다 1884년 4월 22일 고종 황제의 칙령으로 홍영식 등 개화파의 주도하에 우정총국이 설치되고 그해 11월 18일 우정총국의 업무를 시작하면서 최초로 발행한 우표다. 이 우표의 명칭은 ‘문위우표’로 태극무늬 둘레를 당초문이 에워싸는 디자인인데 인쇄를 일본에서 하는 바람에 디자인인 일본인의 손에 의해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위는 당시의 화폐의 단위가 문(文)이어서 문위우표라 부르게 되었다.


이 박물관에는 역사의 애환이 담긴 우표도 전시되어 있다. 미군정청의 가쇄 우표도가 있는데 해방 전 일제 때 사용하던 우표 위에 ‘조선우표’라는 인쇄를 덧씌운 우표다. ‘해방기념우표’는 당시 우리나라의 인쇄술이 뒤떨어져 일본에서 인쇄를 해왔다.


손편지를 쓰지 않는 시대, 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받아보기 어려운 시대, 어쩌면 아이들은 우체국에서 우표나 우편엽서를 판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수 있다.


“얼마 전 우편엽서 100매가 필요해 지역의 우체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탈탈 털어 60여 매를 샀습니다. 우표 판매는 우체국의 주 수입원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체국은 아마 택배, 보험으로 꾸려나가고 있을 겁니다. 사실 우리 박물관도 오로지 우표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앞으로 그렇게 발전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 인문학 강좌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현재 우리 박물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2017 한재 느티나무 행복 학습센터’에는 지역의 어르신들이 찾아오셔서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진하 관장은 오늘도 꿈을 꾸고 있다. 관람객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절로 힘이 생길 텐데. 사람들이 우표를 더 많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손편지를 많이 쓰고, 우체국 앞에 줄을 서서 우표를 사고, 그래서 우표가 붙은 편지가 이 집 저 집에 배달되면 참 좋겠다.


*이 글은 2017년 5월 8일 현재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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