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필리핀에서 태어나 담양아줌마로 살아가는 나이라씨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가 좋아요” 결혼전문회사 아닌 고모 중매로 7년전 결혼 필리핀은 고향일뿐 대한민국이 우리나라 주민등록에 올라있는 한국식 이름 ‘나이라’ 시아버지 권유로 초교 방과후학교

2009-04-17     마스터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가 좋아요.”
필리핀에서 태어나 담양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는 나이라씨(31)의 말이다. 나이라씨가 말하는 ‘우리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을 말한다. 이제 필리핀은 그녀의 고향일 뿐 나이라씨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 한사람으로, 그리고 담양아줌마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꾸었다. 주민등록에 올라있는 그녀의 이름은 ‘나이라’이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라일라 파블로(Leila pablo)'이다 그런데 ’나이라‘로 바꾸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나이라씨는 ‘담양 나씨’의 시조가 되는 셈이다.

라이라 파블로씨, 아니 나이라씨가 태어난 곳은 가가얀이라는 작은 도시다.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40분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나이라씨는 이곳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그녀가 다닌 대학은 가가얀대학인데 컴퓨터 전공을 했다.
졸업 후에는 곧바로 홍콩으로 건너와 은행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외모가 단정하고 뛰어난 영어실력 덕분에 은행장 비서로 일을 했다.

해외 여성들이 한국으로 시집오는 것은 대개가 전문적인 결혼회사가 다리를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결혼회사를 통한 결혼은 한 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이라씨는 결혼회사의 소개없이, 다시 말해서 ‘중매(仲媒)’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중매는 나이라씨의 고모 요란다씨가 섰다. 요란다씨는 1996년에 담양으로 시집온 필리핀 여성이다. 요란다씨는 대한민국으로, 그리고 담양으로 시집온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사람이다. 그래서 자기의 조카인 나이라씨를 담양 총각과 짝을 맺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담양총각 박춘우(금성면 농공단지 주식회사 자연과 사람들 회사원)씨와 필리핀 가가얀 태생 나이라씨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편지도 주고받고 국제전화도 했다. 물론 언어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처 고모인 요란다씨가 모든 편지의 번역을 해주었고, 전화를 할 때도 옆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이때 박춘우씨는 나이라씨와 좀 더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영어사전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그 세월이 3년이었다.

마침내 2002년 6월,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나이라씨의 아버지는 30년 이상 마을 이장 일을 하고 있는, 이른바 그 마을의 유지이다. 그리고 전형적인 농부인데 가정형편도 넉넉한 편이고 자녀는 3남3녀를 두었는데 나이라씨는 그 중 맏이다.
결혼 7년째가 되는 박춘우, 나이라씨 부부에게는 현재 일곱살 난 딸과 세살 난 아들을 두고 있다. 그리고 시부모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삼대가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랑이라고 했는데, 나이라씨 역시 시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며느리는 복둥입니다. 결혼하자마자 아들딸 손자를 낳아 주었고, 무엇보다도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모습이 너무나 예쁩니다. 우리 며느리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곱고 그야말로 백점짜리 며느리입니다.”
시아버지 박용수씨의 며느리 자랑은 끝이 없다. 시어머니 역시도 업어 주고 싶은 며느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나 똑같잖아요. 크게 잘 못한 것도 없으면서 며느리하고 시어머니 사이가 왜 나쁜지 잘 모르겠어요. 가족끼리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인터뷰 도중 나이라씨는 ‘가족’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삼대(三代)가 한지붕 아래서 사는 경우는 드물다. 생활의 변화로 인해 대가족 형태에서 핵가족 형태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나이라씨 가족은 삼대가 모여 알콩달콩 가족끼리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라씨는 결혼 후부터 담양군 관내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영어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벌써 5년째가 된다. 영어강사 활동은 시아버지 박용수가 적극 권유해서 시작한 일이다.
“밖에 나가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한국말도 빨리 배우라는 생각에서 그 일을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담양 젊은 며느리들 가운데 우리 며느리처럼 영어실력이 좋은 사람도 드물지 않습니까? 그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성격도 많이 쾌활해졌습니다.”
시아버지 박용수씨의 말대로 나이라씨의 영어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이 된다. 필리핀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덕분에 나이라씨의 딸과 아들은 영어과외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평소 생활속에서 엄마로부터 영어공부를 배운다고 한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우리나라 말(한국어)을 사용하지만, 저하고만 있을 때는 영어만 사용합니다. 우리 아이들 영어 아주 잘 해요. 우리 딸은 행사때 나가 영어로 노래를 해요.”
그렇다면 아이들의 영어과외 교습비를 남편에게 청구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가족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해요?”
나이라씨의 대답이다.

이렇게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문득 고향 생각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향수병(鄕愁病)에 시달림을 당한다고 한다.
아주 이례적인 질문을 해봤다. 필리핀이 좋은가 한국이 좋은가라는 질문이었다.
“필리핀은 너무 더워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가 좋아요.”
이제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라고 말하는 대한민국의 담양아줌마가 되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방해가 된다며 아이들을 자기네 방에 들어가 있도록 한 것도 대한민국의 보통 아줌마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려는데 나이라씨가 방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냈다.
“손님이 가시는데 잘 가시라고 인사해야지?”
그야말로 확실한 담양아줌마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