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담양 하키 뿌리를 내린 변춘섭씨
“운동이나 인생에 있어서 승패는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교직 29년 경력중 16년을 담양중에서 근무 불모지 담양에 하키 씨앗 뿌리고 가꾼 산증인 하키동호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니 행복 공고에 잔디구

변춘섭씨의 고향은 충북 제천이다. 그런데 담양 하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변춘섭씨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담양에 하키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 담양 하키의 명성을 온 세계에 드높였다. 그 세월이 무려 스무 해가 넘는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다.
“흔히들 제2의 고향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저 역시도 제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까 원래의 고향은 제천이고 담양을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키와 관련지어 생각했을 때 담양은 제 고향입니다. 힘이 닿는 한 담양에서 하키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 살 생각이니까요.”
변씨가 담양중학교 하키부를 설립한 것은 1985년이다. 제천에서 중고등하교를 다니면서 하키선수 생활을 한 다음 전남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은 직장이 담양중학교다.
“체육교사 발령을 받으면서 반드시 하키부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수를 확보하는 일도 그렇고, 여건도 아주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십대 젊은 혈기라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대들었던 것이지요.”
하키부 창단을 구상한 그는 근무가 끝나면 체격조건 등을 따져 눈여겨보아 두었던 학생의 가정을 방문했다. 운동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학부모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시다시피 하키는 비인기 종목입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하키선수로 졸업을 한다고 해도 진로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하키는 실업팀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 마음에 둔 학생의 집을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마음으로 찾아가고 또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1985년 마침내 담양중학교 하키부가 탄생된다.
1985년 하키부를 창단하고 나서 그는 담양중학교에서 8년간을 근무한다. 일반적으로 교사는 단위 학교에서 4년 이상은 근무할 수 없는 인사규정이 있는데 그는 하키부 때문에 8년을 근무하게 된 것이다.
“8년 이상은 더 근무할 수가 없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는데 담양중학교로 다시 발령이 났습니다. 하키부 때문이지요. 내가 감독을 할 때와는 달리 조직이 느슨해지고, 선수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운동부를 존속시키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엔트리에 필요한 숫자가 16명인데 그 숫자가 미달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다짐으로 담양중학교로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키부 조직을 추스르고 다시 다른 학교로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담양중학교에서만 16년을 근무하게 된다. 교직 29년 경력에서 16년을 담양중학교에서 근무한 것이다. 그동안 담양중학교 하키부를 거쳐 간 학생들이 대략 120명쯤 된다. 그 가운데서 청소년 대표, 국가 대표 등 태극마크를 단 사람이 30명이 넘는다.
광주에서 담양행 버스를 타 본 사람은 정류장을 안내하는 멘트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광주를 출발한 버스가 여러 정류장을 지나오다가 담양에 진입하게 되면 ‘담양출신 하키선수들이 시드니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멘트가 나온다. 필자 역시도 그 멘트를 들은 적이 있다. 담양사람으로서 자부심도 생기고 으쓱해졌다.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시드니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그 하키팀의 주축을 이룬 선수들이 바로 담양중학교를 졸업하고 담양공고를 나온 우리 담양 출신이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담양중학교 하키부가 올해로 24년째입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전국 대회에서 우승도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시드니올림픽 은메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팀의 주축이었던 김용배, 여운곤, 임종천, 김철환 등이 담양중학교 출신들입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활약한 장종연이도 담양중학교 출신입니다. 이 밖에도 모두 다 거명을 할 수는 없지만 담양중학교 하키부 출신들은 지금도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으며 중고등학교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의 하키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운동이 다 그렇겠지만 하키는 무엇보다도 팀워크가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키는 아주 빠르고 격렬하며, 거기에다 스틱이라는 특수한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많습니다.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에 신사도(紳士道)를 아주 중요시 합니다.”
모든 시합은 상대가 있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랜 동안 이 생활을 해 온 변씨는 시합에 있어서 승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시합에서는 이겨야 좋지요. 담양중학교 하키부 감독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시합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맞붙고 싶지 않은 팀이 있는데 바로 제 모교인 제천중학교 팀입니다. 그래도 담양중이 이겨야 하지요. 삼십, 사십 젊었을 때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심판에게 어필도 많이 했습니다. 젊은 혈기 때문에 이기고 지는 것은 시합의 한 과정이라는 걸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운동시합이나 인생에서 성공과 좌절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필연적인 일입니다. 시합에 지고 났을 때 교육적인 효과는 더 크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아픔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담양중학교 하키부를 거쳐간 120여명의 동문들. 이들은 해마다 연례적인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도모하며 담양중학교 하키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모색하고 있다.
“제자들이 이런 모임을 갖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니까 정말 행복합니다. 그리고 요즘 아주 고맙고 기분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담양공고에 잔디구장이 생긴다니까 우리 담양중학교 하키부들도 전국대회에 나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지자체나 지역의 하키 동호인들에게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현역으로 뛰는 한 담양중학교 하키부를 잊지 않을 겁니다. 제가 창단한 팀인데, 힘이 닿는 한 모든 열정을 담양중학교 하키부에 쏟아야지요.”
현재 전라남도 중고등학교 하키부는 담양중과 담양공고가 유일하다. 그리고 국내 남자 실업팀은 겨우 3개이다. 너무 미미한 숫자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땄다는 것은, 자랑스럽다고 말하기 전에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말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 기적이 바로 담양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