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이 인정한 지역유지는 42명(?)
김 환 철 편집국장 //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제21차 재경담양군향우회 정기총회가 열렸다.
매년 이맘때쯤 서울에서 고향이 같은 사람끼리 친목을 위하여 가지는 모임이다. 지역민들도 출향인들의 행사를 축하해 주기 위해 바쁜 일손을 놓고 상경하는 풍경이 연례행사처럼 된지 오래다. 올해도 여느해와 같이 지역민과 출향인이 한자리에 만나서 기쁨을 같이 나눴다.
그러나 기쁘고 즐거워야 할 향우들의 잔치가 끝난 후 지역에서 참석한 명단을 두고 뒷말이 많아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버스를 타고 상경하는 참석자들에게 담양군이 만들어 배포한 인쇄물에 실린 각급 민간기관 및 사회단체를 대표한다는 42명의 명단 때문이다.
재경향우회 행사가 열린 다음날인 9일 오전 신문사 사무실.
빈번하게 걸려온 전화마다 다짜고짜 “재경향우회 정기총회 참석자 명단 봤느냐”며 격한 목소리다.
“이게 무슨 지역유지야. 순 선거운동원 명단이구만”, “담양을 대표할 만한 사회단체장이나 기관장도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지역의 유지인가”, “담양의 지역유지가 42명 뿐이냐. 이런 명단을 담양군은 어떻게 작성했느냐”, “담양의 지역유지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는 등 아무 영문도 모른채 질책 아닌 꾸중을 들어야했다.
그래서 담양군이 제공한 인쇄물을 구해서 찬찬히 훑어봤다.
‘재경담양군향우회 제21차 정기총회 참석계획’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은 사회단체장들도 아니고 기관장들도 아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지역유지 등 42명’의 이름이 실려 있었다.
그래서 어떤 기준으로 지역유지를 선정했는지 판단하기 위해 다시한번 명단을 꼼꼼히 살펴 봤다.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역유지로 표현된 사람들은 실제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담양군이 작성한 문건에 이런 명단이 올라 올 수 있었을까?
담양군에 물었더니 “그 명단은 담양군이 작성한 것이 아니고 향우회에서 올라 온 명단을 그대로 실었을 뿐으로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답변이다.
또 “당초 담양군은 신종플루와 선거법 등을 고려해 군수권한대행과 실과소장 및 읍면장, 그리고 담양군의원만이 참석할 방침으로 민간인들의 참가는 일체 고려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민간인의 명단을 군에서 작성을 하지 않았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알고보니 재경향우회에서 담양군과 지인에게 명단을 주고, 군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내년 선거를 겨냥해 모임에 열심히 활동하는 특정인이 참석자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어떤 경로를 통해 작성된 명단일지라도 ‘지역유지’라는 이름으로 담양군이 내놓은 인쇄물에 찍혀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같은 일은 담양군이 최종 결정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담양군에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담양군의 답변은 어이없게도 항변 수준이었다. 변명치고는 너무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면 향우회가 작성해 제공한 명단을 여과없이 그대로 프린트한 담양군은 정말로 책임이 없단 말인가?
예를 들어 담양군이 어떤 정책을 입안하면서 교수와 민간인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결정을 토대로 정책을 추진하다가 잘못된 정책임이 드러났을때 담양군은 “그 정책은 민간인 전문가가 입안한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라고 책임회피성 답변만 할 텐가.
신문사로 국한시켜 보자. 어느 제보자에게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받아 잘못된 기사를 싣게 되면 그 책임은 제보자가 아닌 해당 신문사에게 있다는 것 쯤은 만인이 상식으로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정기총회 참석계획은 ‘담양군 로고’와 ‘슬로시티 마크’, ‘대숲맑은 담양’ 등 담양군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찍혀있어 담양군이 최종 결정자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비록 ‘재경향우회’라는 민간단체가 일개 주민에게 의뢰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담양군이 작성한 것과 다름이 없고 그 비난과 책임은 담양군이 지게 된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담양군의 업무처리 능력의 한계라고 봐야 한다.
특히 지방선거가 8개월도 남지 않았으며 군수출마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입지자들의 입장과 이로 인한 선거과열 및 지역분열을 고려하면 정치적인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정상적으로 행정을 수행하는 공무원들의 상식이다.
어찌보면 ‘선거’라는 관점을 떠나면 이번 문건이 사소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타당한 행정을 수행해야 할 담양군의 입장에서는 공연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담양군은 지금 군수부재라는 초유의 상태다.
때문에 지역을 걱정하는 군민들은 과도기의 군정, 과도기의 행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