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추월산 약다식 체험 전시관’ 관장 이순자씨
“인간과 자연이 어울리고 나누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추월산과 가마골, 순창 복흥의 산과 들… 식재료는 비싸지 않은 산야초들입니다 자연이 주는 식품은 탈이 없고 절대 썩지 않습니다 2004년, 숙원이

“자연의 맛은 크게 나누면 고소한 맛, 쌉싸름한 맛, 새콤한 맛, 달짝지근한 맛, 약간 떫은 맛 등 다섯가지 맛입니다. 또 이러한 오미(五味)는 제 각각의 향기를 담고 있는데 오향(五香)이라고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갖가지 산야초(山野草)와 형형색색의 열매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대량 생산체제가 되면서 인공색소, 방부제 등을 과다하게 첨가해 사람들이 독(毒)을 먹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인간과 자연이 어울리고 나누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시집살이 초년에는 어떻게 하면 남보다 예쁘게, 맛있게 음식을 만들까, 그리고 가족들에게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일까 궁리를 많이 했는데 그런 생활 자세가 오늘날의 저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월산 약다식 체험관’ 관장 이순자씨의 말이다.
담양군 고서면에서 태어난 이순자씨는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용면 추성리에 사는 허창우씨와 결혼을 했다. 이씨의 남편 허씨는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왕년의 스타 엄앵란 등과 함께 영화에 출연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런데 부모의 반대로 배우를 그만 두고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결혼 1년 후 담양읍으로 분가를 한다. 분가를 했지만 이씨는 시집살이를 병행한다. 남편과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면 곧장 용면 시가로 달려갔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읍내에서 용면을 왕래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1년간 보냈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남편과 상의하지도 않고 소달구지에 살림을 싣고 본가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시부모님께서 음식에 대해 무척 정갈해 김치가닥 길이도 가지런히 해야 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습니다. 오늘의 내 음식솜씨는 그런 시부모님 밑에서 시집살이를 한 덕택입니다. 그런데 내 식재료는 비싸지 않은 산야초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이씨는 산과 들을 다니면서 나물, 버섯, 열매 등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추월산과 가마골, 용면 쌍태리,, 순창 복흥과 쌍치의 산과 들,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이씨는 계절에 따라 색다른 다식(多食)도 만들었다. 봄이면 송화(松花)가루를 채취해 노란색의 다식을 만들고, 가을이면 맹감 열매를 채취해 붉은색 다식을 만들었다. 주위사람들은 이씨가 만든 형형색색의 다식을 보고 차마 먹기가 아까울 정도라며 찬사를 했다. 그리고 이씨의 솜씨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명절이면 특별한 다식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씨가 만든 다식 가운데 사군자(四君子)로 불리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이 있다.
“어느 날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 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미니장미를 길러 다시 수출하는데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 것을 놔두고 외화를 낭비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매실, 난초, 국화, 죽엽 등으로 색깔을 내봤는데 정말 은은하고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여러 가지 산야초와 열매로 다식 색깔을 내봤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 오랜 미국 망명길에서 귀국하던 해 서울 63빌딩에서 대대적인 환영식이 열렸다. 이때 이씨는 60가지 색깔의 다식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이씨 부부는 DJ, 한화갑, 권노갑씨 등 이른바 동교동계 인사와도 깊고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1970년대 초 DJ가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며 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이때 남편 허씨는 청년조직원으로 DJ 선거운동에 뛰어든다. 이런 인연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허씨는 1990년대 초 지방선거에 담양군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기도 한다.
“선거를 치르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첫 번째 선거에서는 이순자가 똑똑해 허창우를 당선시켰다고 좋게 말했는데, 두 번째는 이순자가 똑똑해 의원 노릇한다며 의원이 두 명이니까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매수되어 등을 돌릴 때는 인간적 비애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 지난 일인데 누굴 미워하고 그러겠습니까? 이제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음식 만드는 일에 매달려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 해야지요.”

1993년, 이씨는 전라남도농촌진흥원에서 주최한 쌀 소비 촉진 경진대회에서 다식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음식솜씨를 인정받는다. 이어서 1995년 제2회 남도음식대축제 우수상, 1998년 제5회 남도음식대축제 대상을 받는다. 그리고 2000년 전라남도 신지식인, 2002년 대한민국 관광분야 제10호 신지식인(행자부주관)으로 지정받는다. 제1호는 영화감독 심형래씨다. 심씨는 영화 ‘용가리’를 만들어 국위를 선양한 공로로 신지식인으로 지정된 것이다. 또, 자랑스런 전남도민의 상, 여성부가 주관하는 동백대상 등 여러 차례의 수상경력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흔 살 나이가 다 되었는데도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면서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대학교행정대학원에서 식품과 관련한 강의도 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식품경진대회의 고정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이씨는 오랜 숙원이던 ‘추월산약다식체험전시관’을 개관했다. 이곳에서는 직장, 사회단체 등 요청에 의해 식품 만들기 강의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담양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탐방코스가 되고 있다. 내방객은 연인원 2000여명이나 된다.
2층 전시관에는 이씨의 40여년의 세월의 흔적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전시된 식품이나 물건 하나하나에 이씨의 정신이 담겨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인다.
“특허를 내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연에서 얻은 것인데 어떻게 내 것이라고 못을 박습니까?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지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제조방법도 가르쳐 줄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들이나 산에 가면 자연의 식재료들이 더 많습니다. 대신 자연에 나가면 욕심을 내지 말아야지요. 내년이면 자연은 또 줍니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식품은 탈이 없습니다. 자연의 식품들은 제 각각 방부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발효되었으면 발효되었지 절대 썩지는 않습니다.”
식품 연구가 이씨를 이제는 ‘인간과 자연을 함께 생각하는 생명운동가’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씨가 너무 똑똑해 집안에서 남편보다 더 주장의 목소리가 클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남자의 바짓가랑이는 두 개이고 여자의 치마는 열두 폭입니다. 열두 치마폭에 모든 것을 감싸고 숨기며 사는 것이 부덕(婦德)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밖에서는 사리에 안 맞는 일에 대해 내 의견을 분명히 밝히지만 집에서는 모든 것을 열두 치마폭에 감쌉니다. 담양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