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설재록 - 네가 있어 줘야 내가 있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더이상의 덧붙임의 설명이 필요없는 진리이다. 사람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을 한자로 쓰면 ‘인(人)’이다. 두 개의 막대가 서로 의지하고 서있는 모양이다. 둘 중 하나가 없어진다면 ‘인(人)’은 서있지 못하고 넘어지게 될 것이다.
한 해를 보내고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사회적 동물’로서 어떻게 살아왔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어느 분이 새해를 맞이하여 연하장 대신 ‘토끼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이야기 한 편을 보내 주었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다. 그러나 토끼는 혼자 속으로만 사랑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토끼가 거북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다. 거북이 역시도 토끼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 토끼는 거북이를 볼 때마다 늘 가슴아파했다. 거북이가 자기의 느린 걸음을 한탄하며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토끼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문득 토끼는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으로 궁리를 한 다음 거북이에게 달리기 시합을 제의했다.
제의를 받은 거북이는 토끼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몹시 기분이 상했다. 잘 달리는 토끼가 느림보인 자기에게 달리기 시합을 제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결과는 불 보듯 훤했다. 망신을 주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기가 생겨 질 때 지더라도 한 번 붙어보자는 마음으로 토끼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경주가 시작되었다. 경주가 시작되자마자 토끼가 순식간에 저만치 앞서갔다. 토끼는 미리 궁리했던 계획을 실천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중간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골인하는 걸로 계획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자칫 거북이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풀밭에 누워 자는 척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토끼는 거북이가 자기를 깨워 함께 골인하는 것을 상상했다.
그러나 토끼의 궁리는 빗나가고 말았다.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그냥 지나쳐 갔다. 자는 척하면서 토끼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거북이의 승리로 시합은 끝났다.
그 후 사람들은 거북이는 성실하고 근면하다고 칭찬했고, 토끼는 교만하고 경솔하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렇지만 토끼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비난을 감수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곧 자기의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은 자방선거가 있는 해이다. 이미 그 열기는 뜨거워졌고, 지역의 화합을 해치는 파열음(破裂音)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또 선거를 치르고 나서도 오랜 동안 지역민끼리의 대립과 갈등은 지속되게 될 것이다. 그 정도의 도가 지나치다며 아예 지방선거를 없애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참으로 위험천만이다. 지방선거를 없앤다는 것은 풀뿌리민주주의를 후퇴시키겠다는 발상이다. 빈대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어려운 난제(難題)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그런데 난제라고 할 것도 없다. 아주 쉽게 생각하면 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진리를 한번만 생각하면 된다. 사회적 동물이니까 세상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네가 있어 줘서 내가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상상을 해 보자. 연락이 두절된 외로운 섬에 홀로 버려졌을 때 여러가지 걱정과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먹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입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우선 생물체로서 살아가야 할 걱정을 먼저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열심히 헤매고 다니다 보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010년 지방선거가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또 걱정이 앞선다. 이미 깊어져 있는 갈등의 골은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더욱 깊어질 것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지역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느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그것은 최선이고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다만 생각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나와 생각이 달라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 아니다. 내가 옳은 선택을 했듯이 그 사람도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상대 없는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두 팀이 축구 시합을 하는데 어느 팀이 천사이고 어느 팀이 악마이겠는가? 팬들은 자기 팀이 이겨 주기를 바라며 열심히 응원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 팀을 아예 그라운드 밖으로 내쫓자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상대 팀이 있어야 우리 팀을 열열이 응원할 수 있기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축구 팬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자기 팀을 열열이 응원하지만 끝난 뒤에는 상대 팀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왜냐하면 상대 팀이 있어 줘서 재미있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는 이런 마음으로 치렀으면 좋겠다.
선택은 자유다. 누구를 선택하든 그 사람에게는 그 선택이 최선이다. 끝나고 나면 성숙한 축구 팬처럼 승자에게는 성원의 박수를 보내고, 패자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선거전(選擧戰)’이라는 말을 쓴다. ‘싸울 전(戰)’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지만 선거전은 상대를 쏘아 죽이고 나만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하고는 다르다. 승자나 패자가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축구 경기와 같은 싸움이다.
“네가 있어 줘야 내가 있게 된다”는 말을 사랑하는 고향 사람들 새 해 새벽 창가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