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노익장(老益壯)의 삶 보여준 송안(松岸) 국승준씨

“내 삶은 사회 지배가 아니라 사회 접근입니다” 매일 새벽 다섯시면 두 시간씩 방송대학 강의듣고 일본 시사·문예평론지 ‘문예춘추’ 십여년째 구독 현실감각과 정연한 논리…아직도 96세 청년 기득권

2010-01-08     마스터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낱말이 있다. 노인을 맞대고 존경하여 부르는 말이다. 어느 노인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노익장이라는 말을 아무에게나 쓰지않고 가려서 쓴다. 이를테면 나이가 들어서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무와 역할을 다하는 노인들을 노익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봤을 때 이 시대 담양의 노익장은 송안(松岸) 국승준(鞠承駿)씨가 아닐까 싶다.

2010년 벽두 송안을 다시 찾았다. 필자는 지난 2003년 양각리 송안의 댁을 방문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삶의 진면목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많이 노쇠해진 모습이었으나 말씀은 여전히 또렷했다. 송안은 책을 읽고 있었다. 신간을 구입했는데 내용은 읽기가 힘이 들어 차례만 보고 있다고 했다. 차례만 보아도 얻어지는 것이 많다고 했다.


송안의 안방 한쪽은 켜켜이 쌓아놓은 책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책들이 예사 책들이 아니다. 대개가 일어판이며, 그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시사·문예평론지 ‘문예춘추(文藝春秋)’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십여년째 한달도 빠지지 않고 이 책을 구독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매일 새벽 다섯시면 두 시간씩 방송통신대학 강의를 듣고 있다는 송안의 대화속에는 현실감각과 정연한 논리가 담겨 있다. 마치 명쾌한 시사관련 특강을 듣는 기분이다. 책을 읽든, 신문을 읽든, 방송통신대 강의를 듣든 반드시 소견을 적는다는 송안은 자신의 글을 적어놓은 노트가 다섯 권이나 된다.


“요즘은 노트에 메모하는 것에 게을러졌습니다. 나이는 못 속이지요. 정신과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몸이 말을 안들어요.”
송안이 메모노트 한쪽을 펼쳐 보인다. 이렇게 적혀 있다.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서양철학은 철저히 약육강식의 논리이지만 동양철학은 자연주의이며 인본주의이며, 인류공영의 해법이 동양철학 속에 들었다.>
메모를 보면서 필자는 숙연해지고 말았다. 송안의 논리는 정연하다. 나이 든 분에 대한 비유가 알맞을지 모르겠지만 송안의 정신은 봄날 새싹처럼 파릇파릇하다.


“첫째 무리하지 않고 제 분수에 맞게 생활해야 합니다. 무리하다 보면 실수가 나오고 넘어지게 됩니다. 다음으로 무슨 일엔가 몰두하면 저절로 건강해집니다. 젊었을 때는 여러 가지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든 지금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난 송안은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 서중의 전신)에 진학했는데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연루되어 퇴학을 당한다. 후에 조선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한 박준채 박사는 당시 송안과 서중학교의 단짝이었는데 그도 마찬가지로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관련 퇴학을 당한다. 송안은 현재 독립유공자다.


광주고등보통학교 퇴학후 서울 중동중학교를 거쳐 일본 메이지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그는 귀국 후 ‘우송농장’의 지배인으로서 사회활동을 시작한다. 우송농장은 200만평의 토지를 소유한 회사로 담양, 장성, 화순, 순창, 남원, 경기도 여주 등 광활한 지역에 자산을 갖고 있었다.
다음으로 갖게 된 직업이 ‘조선신문(일본의 신문)’ 담양지사장 겸 주재기자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주재기자시절 일본인들의 배급설탕 착복, 함흥비료 특혜사건 등 폭로기사를 써 일본 경찰 고등계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을 받는다.


다시 1951년에는 서른일곱살의 나이로 민선 담양읍장이 된다. 읍장이 되고 나서 그는 “법을 잘 지키는 읍장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떳떳하다고 말한다.
읍장시절 그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를 근무 철칙으로 삼았다. 이 말은 바둑과 관련된 용어인데 ‘내가 먼저 살아놓고 남을 치자’는 뜻이다. 회유나 협박에 견디지 못하고 부정에 타협하다 자신이 다치게 되면 임무수행도 못하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회지도층들의 행태를 보면 못마땅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신뢰사회는 몰락하고 불신시대가 되었습니다. 읍참마속의 지혜를 알아야 신뢰사회가 구축되는 것입니다.”
촉나라의 제갈량은 전쟁터에서 제멋대로 싸우다가 패한 마속의 목을 벤다. 물론 그 전날의 공과 두터운 친분을 생각한다면 눈 감아 줄 수도 있지만 제갈량은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던 것이다.

송안과 마주앉아 그의 막힘없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96세의 나이도 전혀 의식할 수가 없다. 진정 그는 청년이다. 이러한 송안의 생활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필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송안 선생께서는 지역사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기득권층으로 다시 말해서 군림하면서 살아오셨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안이 이야기를 잠시 멈추었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송안의 얼굴이 약간 굳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일제 통치 아래서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6.25도 겪었습니다. 흔한 말로 만고풍상을 다 겪었습니다. 특히 6.25를 겪으면서 인생을 많이 배웠습니다.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낮추어 모든 사람과 격의 없이 지내야 나중에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누군가가 도와주게 된다는 것도 터득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누구 위에 군림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나의 속마음을 몰라 주고 기득권층으로 매도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매도하는 것도 지역사회의 잘못된 풍조입니다.”


자신이 지금도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누구를 지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회에 접근하여 함께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득권층이란 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려준다. 덧붙여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順天者興이며 逆天者亡)’고 역설한다.
국승준씨의 아호는 ‘송안(松岸)’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그의 집을 나서면서 문득 ‘소나무가 서 있는 언덕’에 96세의 청년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송안은 이렇게 말한다.


“매사는 나한테 있다. 과욕하면 몸과 마음을 망친다. 분수를 지켜야 한다. 타인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