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도민체전 29연패(連覇), 담양군사격연맹 회장 조상용씨
“경기에서 양보나 타협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학생 시절 전국 국립대 체육대회서 금메달 1979년 담양 사격팀 도민체전 처녀출전 우승 81년 군사격연맹-86년 담양고 사격부 탄생 주역 경기에 나서

2010년 전라남도 도민체전(體典)에서 담양군 사격팀이 또 우승을 했다. 작년에도 우승을 했고, 재작년에도 우승을 했으며, 그 이전 훨씬 오래 전부터 떼 놓은 당상처럼 해마다 우승을 했다. 그렇게 29년 동안 연속적으로 우승을 해왔다. 이렇듯 놀라운 성과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 가운데서 한 사람을 꼬집어 말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담양군사격연맹 회장 조상용씨의 이름 석자를 거명해야 할 것이다.
조씨는 1972년 전남대학교 재학시절 대학 대표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전국 국립대 체육대회에 출전하여 1973년 동메달, 1974년 은메달, 1975년 금메달을 획득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다가 중간에 입대를 한 뒤 1979년에 복학을 했다.
“복학을 하던 해 여러가지 사정으로 중단되었던 전남도민체전이 부활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당시 전라남도사격연맹 전무이사를 맡고 있던 임노덕씨가 다짜고짜로 전남도민체전에 출전하라면서 관련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미 담양군 사격선수 명단이 보고되어 있었는데, 전무이사인 임노덕씨가 그 명단에 당연히 올라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 이름이 빠진 걸 알고 전화를 했던 겁니다.”
이미 보고가 완료된 상황이었는데 임노덕씨의 직권으로 담양군 사격팀 선수가 조상용씨를 주축으로 해서 통째로 교체가 된 것이다. 결과는 우승이었다. 첫 출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1981년 담양군사격연맹을 창립했다. 초대회장은 국홍근씨가 맡았다. 그 뒤 임병채, 국희송, 임철홍, 장현옥, 최정호씨 등이 역대 회장을 지내면서 담양군 사격발전에 많은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1999년에 조상용씨가 회장을 맡은 후 지금까지 담양군사격연맹을 이끌어 오고 있다. 조씨는 현재 전라남도사격연맹 부회장도 맡고 있다.
“11년 동안 회장을 맡고 있으니까 장기집권도 엄청난 장기집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 단계에서 볼 때 회장을 맡아줄 분들이 없다는 것이 큰 고민입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하면 참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사실 현재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울며 겨자 먹기라는 이 말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지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기 저기 들여다봐야 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동참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면 더러 욕을 얻어먹기도 한다. ‘무사무책(無事無責)’이라는 말이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살다보면 더러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그들의 고생에 대한 평가는 정당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조상용씨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일을 만들어내는 특징을 갖고 있다.
1986년 담양고등학교 사격부가 탄생한다. 담양고등학교 사격부 탄생에도 조씨의 역할이 아주 컸다.
“담양고 사격부를 만들려고 한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어서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고향 출신 사격선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올바른 진로를 개척해 주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도민체전에서 연승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항구적인 선수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담양중 사격선수들이 졸업을 하면 광주고등학교나 체육고로 진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관리소홀로 인해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폐해를 막고 담양군의 사격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86년에 담양고 사격부가 창단을 보게 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창단된 담양고 사격부는 창단 8년만인 1994년과 그 이듬해인 1995년 연속으로 전국대회를 석권하게 된다. 전국대회가 아닌 지역단위 대회에서의 우승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담양고 사격부는 서철민, 김선호, 남산호, 전동주, 조준호 등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했다.
“현재 전국대회가 연 15회 정도 열립니다. 그러나 예산 때문에 모든 대회에 참가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사격은 개인종목이면서도 돈이 많이 드는 운동입니다. 훈련을 많이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당연지삽니다. 그런데 사격은 훈련을 많이 하면 그만큼 돈이 많이 듭니다. 실탄은 재활용이 안 되니까요. 양궁에서는 화살을 다시 쓰고, 축구도 공을 다시 쓸 수 있지만 실탄은 총구를 떠나면 그것으로 소모품이 되어 버리니까 돈이 많이 듭니다.”
2010년, 담양군 사격팀은 전남도민체전에서 예상했던대로 또다시 우승을 했다. 29년 연속 우승이다. 한 종목이 같은 대회에서 29년을 연속으로 우승한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없는 일이다. 아마도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쉽게 나오지 않을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 될 것이다.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일이다.
“처음 우승했을 때 경사가 났다고 담양이 떠들썩했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 우승을 하니까 조금은 놀라운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넘고 20년이 넘으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반응이 시들해졌습니다.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동안의 고생을 우승하는 그 순간에 모두 잊어버립니다. 물질적인 큰 보상 같은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로패 하나라도 받게 되면 그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고 또다시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범부(凡夫)이기 때문에 그런 것마저 없을 때는 조금은 섭섭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도민체전이 열리면 다른 시군의 연맹회장들은 시합이 열리기도 전에 조씨를 찾아와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이번에는 한 번만 양보해 달라며 노골적으로 타협을 해 오는 시군의 연맹회장도 있다고 한다.
“경기에는 양보나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유혹에 흔들릴 수도 있지만 경기에 임하게 되면 애향심이 생겨서인지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만 듭니다. 내년에는 30년 연속 우승을 꼭 달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담양의 상황으로 볼 때 제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암군 대불대학에서 사격부를 창설해 올해 2위를 했고, 내년에는 여수시청에서 실업팀 창단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담양군 사격팀의 연승 가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질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한다. 담양출신 선수층이 두텁고 그들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류역사상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중 하나인 이집트의 피라밋을 ‘금자탑(金子塔)’이라고도 한다. 담양군 사격팀의 위업 역시도 금자탑이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