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무월 달빛 행복마을 이장 송일근씨

“주민이 행복을 느껴야 진정한 행복마을입니다” 이장을 맡아 동네를 도는 2㎞의 돌담을 쌓고 달빛문화관을 건립하고 고샅에 이름표도 달고… ‘중뜸샘’ 정비하니까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하고 채소도 씻

2011-07-08     마스터

무월마을은 대덕면 금산리 1구이고, 2구는 시목마을이다. 마을의 이름은 아주 운치 있는 느낌을 준다. 마을 뒤편에 자리 잡은 금산(錦山)이 달을 안고 있는 형국이어서 무월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무월(撫月)’의 무는 ‘어루만질 무(撫)’이다. 굳이 뜻을 풀어본다면 ‘달을 어루만지다’이다. 이 마을의 동편에 ‘월망봉(月望峰)’이 있다. 월망봉에서 보면 무월마을은 산에 둘러싸인 우묵한 분지(盆地) 형국이다. 달이 뜨는 날이면 달빛이 무월마을을 어루만지게 된다. 반대로 마을사람들이 수북하게 내려앉는 달빛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참으로 기막히게 잘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내가 이장을 맡기 전인 2008년에 우리 마을이 행복마을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행복마을 사업은 낙후되어 있는 농촌마을을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어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과 후손들이 정착하도록 하고 도시민들이 돌아와 살게 하기 위해 마을을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물론 소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옥민박, 농촌프로그램, 지역 특산물을 소득화하여 온라인 판매 같은 것도 해야 되겠지요. 이와 연계해서 녹색농촌사업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 결과 일차적으로 마을의 겉모습이 달라진 겁니다. 그런데 행정당국으로부터의 지원만으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울력을 많이 했습니다. 울력 때문에 마을에서 안 살고 싶다, 얼마나 살지도 모르는 노인네들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마을정비를 하느냐, 이런 저런 불만이 많았습니다.”


2009년 중반부터 시작해서 2010년 말까지 동네 한 바퀴를 도는 2km의 돌담을 쌓았다. 목탁바위 옆에 돌로 쌓아올린 2개의 소망탑을 만들었다. 무월 달빛 문화관을 건립했다. 방치되고 있던 ‘중뜸샘’도 정비했다.


“중뜸샘은 마을이 생긴 이래로 한 번도 마르지 않은 마을 공동우물이었는데 각 가정에서 각자 우물을 만들어 쓰는 바람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정비해 놓으니까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도 하고, 채소도 씻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마을 소통(疏通)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하드웨어가 만들어졌으니까 이제부터는 이에 걸맞는 소프트웨어 정비를 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 정비 사업 일환으로 마을과 관련한 옛 이름을 정리하고 고샅에는 길목 이름표도 달았다. 큰굴, 작은굴, 정거묘등, 산실등, 조동굴, 젯등, 밭등길, 저수지길, 아랫뜸 가는 길, 윗뜸 가는 길, 중뜸샘, 수남이들, 촌전, 원장굴, 깊은굴, 삿갓바우 등 무월마을 곳곳이 옛 이름을 찾았다.

2011년에는 전라남도 경관우수시범 사업에 선정되어 마을 생태연못을 만들고, 마을 뒤편 금산에 달맞이 산책로와 달맞이 전망대를 만들었다.


“이장을 맡은 뒤 마을이 달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장을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장을 맡으면서 여러 가지 지원 사업이 생겨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마을에서 돌담을 쌓고 마을 고샅길을 넓이고, 건물이나 부대시설을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 마을이 행복해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도구일 뿐 그것 자체가 행복의 완성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들이 어느 정도 완성되고 나면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해야 합니다. 어쨌든 일련의 사업들이 진행되면서 인구수가 늘어났는데 그것이 행복으로 가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 스스로 위안을 해보기도 합니다.”


송씨가 이장을 맡을 때 마을 가구수는 29호였는데 39호로 늘었다. 전입 세대까지 포함시키면 50여호가 된다. 늘어난 10호의 연령층은 3~40대이다. 전입세대까지 포함시키면 50여 호가 된다. 해마다 신생아도 출산되고 있다. 인구수도 86명에서 107명으로 늘어났다. 현재에도 택지문제만 해결되면 들어와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택지조성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마을 사람들은 인위적인 택지조성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마을 고유의 모습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무월마을은 2011년 ‘루럴(Rural)-20 프로젝트’사업 마을에 선정되어 또 한 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농림수산식품부가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리 농어촌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홍보하고자 기획한 프로젝트이다.


“루럴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우리 무월마을을 자연과 예술과 농촌이 어우러진 명소로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의식전환이 필요합니다. 이 사업이 완성되어 우리 마을이 더욱 널리 알려져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처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 이야기를 마치고 ‘허허공방(虛虛工房)’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셨다. 허허공방의 주인 송씨는 토우(土偶) 작가이다.


“스물여덟 살에 1년 동안 입원할 정도로 많이 아팠습니다. 그 뒤 직장도 그만 두고 노모가 계시는 무월마을로 돌아와서 도예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욕심없이 허허 웃으면서 살겠다는 뜻으로 허허공방이라고 했습니다.”


송씨가 도예공부를 시작한 것은 1986년이다. 처음에는 분청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차츰 분을 발라 화장을 한 그릇들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내가 농사짓고 있는 내 논의 흙으로 그릇을 만들면 어떨까 싶어졌다.


“흙을 만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우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어느 해 대규모 농민시위에 참여해 그들의 절규를 보았습니다. 그 뒤부터 시위 현장에 나가는 대신 농민의 아우성을 흙으로 빚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우리 농민들은 농자천하대지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군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우성치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입이 커졌고 해학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송씨의 작업실에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 아주 조금의 손을 쓰라. 그릇을 손으로 만들지 말라. 가슴으로 만들어라’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그 옆에 토우들이 유난히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다. 송씨가 빚어놓은 토우들은 어쩌면 송씨 자신의 일상모습인지도 모른다.

무월마을의 돌담은 고압적이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다. 인위적으로 쌓았으되 단아한 자연스러움이 있다.
“하기는 하되 티(테)가 나지 않도록 해야 깊은 아름다움이 베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돌담을 쌓으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힘들다며 불만이 많았습니다. 육체적 노동보다 정신적 노동이 사람을 더 혹사시키는 겁니다. 좋은 공기 마시면서 가끔씩 하는 노동은 휴식이지요.”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