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사)담양창평슬로시티위원회 위원장 송희용씨

“슬로시티는 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자는 운동입니다” 담양, 신안, 완도, 장흥 등 네 지역 위원회가 모여 2009년 사단법인 전남슬로시티위원회 협의회 창립 창평 위원장인 내가 전남 협의회 초대 회장도

2011-07-19     마스터

창평에는 용수천, 창평천, 유천천 등 세 개의 하천이 흐른다. 이 세 개를 ‘삼지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삼지내에 감싸여 있는 마을을 ‘삼지내 마을’이라고 하는데 장화리, 삼천리, 용수리, 유천리, 외동리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삼지내 마을이 2007년 12월 1일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슬로시티에 대해 세세히 알지 못한다.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될 거라고 막연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농촌 생태체험 마을의 일종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 역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농촌 생태체험은 회색빛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의 정서와 생태를 일시적으로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슬로시티는 하나의 도시 전체가 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한 목표 아래 재구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슬로시티는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가장 인간다운 삶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기 때문에 매우 철학적이면서 체계적인 정신운동입니다.”
사단법인 담양창평슬로시티위원회 위원장 송희용씨의 말이다.

1999년,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에 사는 주민들은 이곳에 들어오려고 하는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브랜드 맥도널드를 막아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느리게’ 바꾸기 시작했다. 당시 시장으로 재직하던 파올로 사투르니니씨도 주민들과 세상을 향해 ‘느리게 살자’는 호소를 했다. 이것이 슬로시티의 발단이 되었다. 슬로시티는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의 연장선에 있었는데 ‘먹을거리야말로 인간 삶의 총체적 부분’이라는 판단에서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찾고 도시의 문화를 바꾸자는 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후 이 도시에서는 백화점, 자동차, 대형 할인마트 등이 사라졌다.


“현재 전 세계 17개국의 123개 도시가 그레베 인 키안티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슬로시티라고 하면 단순히 옛날의 정취를 되살려낸다 거나, 모든 변화를 멈추고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질은 그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통해서 느리지만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자연환경과 고유음식, 전통문화 등을 지키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슬로시티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지내 마을은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입니다.

2002년도에 일본 어느 도시가 슬로시티 지정을 받기 위해 신청을 했는데 요건을 갖추지 못해 반려된 적이 있습니다. 한 번 반려된 도시는 10년 안에 다시 신청할 수 없습니다. 슬로시티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52개의 항목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새마을운동이 물질적인 면에서 풍요롭게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었다면 슬로시티운동은 정신적인 행복을 느끼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볼거리를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가는 것이 슬로시티 운동입니다.”


송씨는 슬로시티 요건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슬로시티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인구가 5만명 이하여야 하고 문화와 역사가 현존해야 한다. 또, 슬로푸드가 생산되고 있어야 하는데 창평에서는 쌀엿, 한과, 장류(된장이나 간장) 등이 있으므로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패스트푸드 가게도 없어야 하고, 대형 할인 마트도 없어야 한다. 네온불빛도 없어야 한다. 이런 조건 때문에 삼지내 마을은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이다. 전라남도에는 담양 창평을 비롯하여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장흥 유치 등 네 곳의 슬로시티가 있다.

2009년에 들어서서 전라남도는 관주도의 슬로시티위원회를 민간주도로 바꾸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그렇게 되자 슬로시티 추진위원회가 다시 구성되었고 송씨는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추진위원회 첫 모임을 가졌는데 사단법인 형태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대부분 동의를 했습니다. 사단법인을 만들려면 얼마 정도의 자본금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위원 14명이 설립 자본금 840만원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송씨는 사단법인 담양창평슬로시티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신안, 완도, 장흥에서도 우리와 같은 형태로 지역의 슬로시티위원회를 다시 만들었고, 네 지역의 위원회가 모여 2009년 9월 22일 사단법인 전라남도슬로시티위원회 협의회를 창립했다. 송씨는 그 협의회의 초대 회장도 겸하게 되었다.


“민간주도 사단법인 담양창평슬로시티위원회를 창립한 뒤 우리 위원회는 삼지내 마을의 돌담길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슬로시티는 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운동이기 때문에 굳이 방문객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삼지내 마을이 그래서 슬로시티구나 하고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게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대상이 바로 100년이 넘는 돌담길이었던 겁니다.”


담장은 외담과 내담이 있다. 외담은 고샅길에 접해 있는 담장이고 내담은 중문을 세우거나 사랑채와 본채를 구분하기 위해 쌓은 담을 말한다. 삼지내 마을 외담 3.6㎞는 2006년 6월 30일 ‘대한민국 등록 문화재 265호’로 등재되었다.


“삼지내 마을 돌담길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때 공무원들이 창평면장으로 부임하는 것을 꺼려했다고 합니다. 돌담 때문에 번번이 징계를 먹기 때문입니다. 구불구불한 고샅길을 반듯하게 정비하고 돌담을 시멘트 담장으로 바꾸는 것이 새마을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삼지내 마을의 돌담에는 손을 못 대고 있으니까 징계를 먹게 된 겁니다. 그 이면에는 창평 고씨들의 당당한 위세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굽어져 돌아가는 이 돌담길은 방문객들이 가장 보고 싶고 거닐어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이 돌담길은 옛 기와집들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을 연출한다. 삼지내 마을에는 ‘고재선 가옥’ ‘고재환 가옥’ ‘고정주 가옥’ ‘장전 이씨 고택’ ‘유종현 가옥‘ 등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들이 많다.

삼지내 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되자 사람들은 마을이 갑자기 크게 변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이내 실망했다. 그래서 슬로시티 첫해는 주민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슬로시티로 지정되고 나서 삼지내 마을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주말이면 고샅길이 비좁아질 정도로 방문객의 숫자가 많다. 송씨는 이 점에서 대해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방문객들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창평슬로시티가 발전해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방문객들은 담장 안을 넘겨보거나 남의 집과 밭에도 함부로 들어갑니다. 고샅에서 만난 어르신들을 보고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지의 주민들은 슬로시티가 소득을 올리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방문객들은 슬로시티는 관광지가 아니라는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슬로시티는 비록 느리지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일 뿐입니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