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담양군 명예 환경감시원 황판철씨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도 나는 떳떳합니다” 환경감시 활동을 10년 가까이 해 오고 있는데 하루라도 안 나가면 좀이 쑤십니다 어쩌다 못 나가는 날은 별별 걱정이 다 됩니다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하

2011-12-07     마스터

담양읍 학동리에 거주하고 있는, 담양군 명예 환경 감시원 황판철씨의 하루 일과는 새벽 다섯시에 시작된다. 아홉시까지 집안일을 하고 나면 지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환경감시 활동을 한다. 농사철에는 이 시간을 철저히 지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씨는 논 3,200평과 밭 800평을 경작하고 있다. 황씨 부부는 거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이 논과 밭을 경작하고 있다.


“농사철에는 새벽 다섯시부터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환경감시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환경감시 활동을 10년 가까이 해 오고 있는데 하루라도 안 나가면 좀이 쑤십니다. 어쩌다 못 나가는 날은 별별 걱정이 다 됩니다.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하지 않았나, 축산 오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하지 않았나, 걱정 때문에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끝내면 쓰레기 수거, 습지 순시, 축산 오폐수 무단 방류 감시 등의 활동을 한다. 점심은 매끼 밖에서 사 먹는다. 주위 사람 중에는 이런 황씨를 정상이 아니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다. 돈도 생기지 않은 일에 미쳐 산다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황씨는 명예 환경 감시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적인 지원도 없다. 민선 3기 때 명예 환경감시원 제도가 생겼다. 그때 상당수의 사람들이 위촉을 받았다. 그런데 현재 지속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황씨뿐이다.

고서면에서 태어난 황씨는 세살때 금성면 외추리로 와서 6·25때 학동마을로 이사해 정착했다. 결혼 전에는 부산의 관광회사 안내원으로 일했고, 그 뒤 죽피(竹皮) 자동차시트를 개발해 각처를 돌아다니며 행상을 했다. 8년 동안 자동차시트와 대나무의자 행상을 통해 재미를 보기도 했다.
황씨가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담양의 명소 메타세쿼이아 숲길 때문이다.


“우리 학동마을에 가려면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가게 됩니다. 이 숲길이 새로운 명소가 되면서 관광객이 아주 많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립니다. 숲길 옆의 논 하나는 아예 쓰레기 매립장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쓰레기는 한 사람이 버리면 다른 사람도 따라서 버리기 때문에 금방 산더미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어떤 관광객은 생태도시 담양이 이름에 안 어울리게 너무 지저분하다고 비아냥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논은 아니지만 내가 깨끗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했습니다.”


황씨는 자비를 들여 그 쓰레기를 3주 동안 걸쳐 치웠다. 주말이면 자녀들도 찾아와 그 일을 거들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도우면서도 불만이었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상을 받는 일도 아닌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것이었다.


“여름철이라서 무엇보다도 악취가 심했습니다. 일을 끝내고 목욕을 해도 몸에서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도 끝장을 봐야 하기 때문에 했습니다. 쓰레기를 다 치우고 나서는 새 흙을 넣어 논을 제대로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논이었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나타나 고맙다며 임차료 없이 한 해 경작을 하라고 했습니다.”


황씨는 환경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서 2004년 담양군에서 개설한 제1기 환경대학을 수료했다. 이어서 2006년과 2008년에도 똑 같은 과정을 공부했다. 그 뒤부터는 집을 나설 때면 오토바이에 오물집개와 종량제봉투를 싣고 다녔다. 어디서든 쓰레기가 눈에 띠면 가던 길을 멈추고 주워 담았다. 마을 사람들은 공연한 짓을 하고 다닌다며 비웃기도 했다.


“종량제봉투를 갖고 다니는 것이 번거로워 메타세쿼이아 숲길에 쓰레기통을 설치하려고 했더니 군청 직원이 만류를 했습니다. 설치해 놓으면 일반 가정에서도 몰래 투기를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황씨는 요즘도 변함없이 오토바이에 종량제봉투와 오물집개를 싣고 다닌다.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서귀포읍의 어느 관광지를 갔는데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황씨는 114에 읍사무소 전화번호를 물어 담당공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담당공무원이 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가 그걸 다 치우고 나서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가족들의 불만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만류하던 자식들도 내 뜻을 알고 협조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은 나이가 적지 않은 아버지의 활동에 대해 걱정이 많다. 특히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가 사고라도 생길까 걱정을 많이 한다. 그래서 자녀들은 택시로 다니라며 매월 일정액을 송금해 주고 있다.


“뜻은 고맙지만 택시를 타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습지 같은 데를 찾아가려면 길이 좁아 택시로는 못 다닙니다. 오토바이를 타야 구석구석 다니면서 감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겨울에도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겨울 내내 감기약을 품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담양에는 세계적인 습지가 있다. 2004년 7월에 지정된 담양습지는 30여만 평이나 된다. 황씨는 매월 2회씩 이 습지를 찾아가 감시활동을 한다. 지금까지 이 습지에서 쓰레기 불법 투기, 자연 훼손 등 20여 차례의 적발을 했다. 그렇지만 고발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씨는 고발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습지가 많이 훼손되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저절로 애향심도 생깁니다.”
황씨를 아는 사람들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느 곳에서든 지역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고 한다.


담양읍내에 있는 모 종합병원과 관련한 이야기다. 지인의 병문안을 갔던 황씨는 그 병원에서 담양쌀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쌀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장 병원장을 찾아갔다.


“나는 12개 읍면을 다니면서 이 병원이 좋다고 홍보를 하는데 다른 지역의 쌀을 쓰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담양쌀이 포대 당 3,000원 비싸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병원을 나와서 곧바로 군수님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아주 좋아하며 농협과 상의해서 3,000원을 깎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00% 우리 담양쌀을 쓰고 있습니다.”

황씨는 명예 환경감시원 말고도 영산강 용소(龍沼) 지킴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그래서 한 달이면 몇 번씩 가마골에도 간다.


“환경문제는 행정관서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들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