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면 출신 고영태의 ‘비극적 가족사’

2017-01-02     담양군민신문


5·18때 부친 암매장…모친은 망월묘역관리소 잡부
고은 ‘만인보’에 슬픈 사연…최순실 국정농단 조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폭로한 고영태씨의 비극적 가족사가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 소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만인보는 고은 시인이 1986년부터 2010년까지 4천1편의 시를 30권으로 엮은 연작시이다.
고향사람들을 추억하는 내용으로 시작해 신라시대 불승들의 행적,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인물까지 5천600여명을 다룬 대작이다.
고영태씨의 아버지는 고규석씨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시내에 일을 보러갔다가 교도소 옆 도로에서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37세였던 고규석씨는 광주와 가까운 담양군 대덕면에서 아내 이숙자씨와 함께 고영태씨를 비롯한 5명의 자녀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고규석씨와 희생자들은 숨진 지 열흘이 지나서야 광주교도소 안에서 암매장된 상태로 발견됐다. 고영태씨의 나이는 5세였다.
고씨는 광주 5·18 희생자 유족인 것이다. 
고은 시인은 고씨 아버지 고규석씨의 사망과 시신 수습 과정을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하필이면/ 5월 21일/ 광주에 볼일 보러 가/ 영 돌아올 줄 몰랐지/ 마누라 이숙자가/ 아들딸 다섯 놔두고/ 찾으러 나섰지/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 그렇게 열흘을/ 넋 나간 채/ 넋 잃은 채/ 헤집고 다녔지/ 이윽고/ 광주교도소 암매장터/ 그 흙구덩이 속에서/ 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 (…)/ 다섯 아이 어쩌라고/ 이렇게 누워만 있소 속 없는 양반”
‘만인보’에는 이숙자씨가 자녀들을 어렵게 키우며 막내아들 고영태씨를 펜싱 선수로 키워낸 과정도 묘사돼 있다.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 (…)/ 광주 변두리에/ 방 한 칸 얻었다/ 여섯 가구가/ 수도꼭지 하나로/ 물 받는 집/ 방 한 칸 얻었다/ 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 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 막내놈 그놈은/ 펜싱 선수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 늙어버린 가슴에 남편 얼굴/ 희끄무레 새겨져 해가 저물었다”
고영태씨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사태 당시 아버지가 군인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면서 "며칠 동안 어머니가 찾아다닌 끝에  광주교도소 안에 버려져 있던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고씨는 최순실 사건을 털어놓은 배경에 대해, 옷과 가방 만드는 과정에서 최순실씨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억누르고 있었던 게 폭발한 것 같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한편 고영태씨는 전남공고와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1996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펜싱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