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인물지도> 92. 짜장면 한 그릇의 행복 전도사 조장옥씨
“남에게 욕만 안 얻어먹어도 성공한 것이지요”
“주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행사장에 나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도 많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 대접한다면서 사고라도 생기면 큰일 아닙니까? 그래서 한여름과 한겨울만 빼고 매월 한두 차례 이 행사를 갖습니다. 한여름에는 음식이 상하기 쉽고 한겨울에는 어르신들의 안전이 염려되기 때문에 중단합니다.”
조씨는 연중 열차례 이상 짜장면 봉사를 하고 있다. 올해로 열다섯 해가 된다. 이런 조씨에게 보건복지부에서는 2016년 ‘국민나눔대상 국민 포장’을 포상한다. 이 무렵 서울의 어느 일간지가 조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지금까지의 결과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2016년말 현재 조씨가 제공한 짜장면은 3만4천 그릇이고 돈으로 치면 1억2천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효사랑봉사단의 회원은 아홉 명입니다. 그런데 조장옥씨는 재능기부도 하면서 행사에 드는 금전적 부담도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일반회원들은 행사 당일 조력만 해주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자고 해도 조장옥씨가 극구 마다합니다. 행사장에 나와 도와주는 것만도 정말 고맙다고 합니다.”
봉사단 어느 회원 말이다. 조씨의 뜻을 좇아 회원들은 서비스나 음료, 과일 등을 책임지고 있다.
조씨의 고향은 해남이다. 아버지는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했다. 대책없이 마음만 푸짐한 아버지 때문에 살림은 늘 쪼들렸다. 그런 환경 때문에 조씨는 중학교 졸업으로 학업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도로 건너가 중화요리 식당에서 일을 했다. “잘 사는 것도 층층이고 못 사는 것도 층층입니다. 그때 가정형편이 나보다 더 어려운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중학교에도 못 가고 진도로 가서 식당에서 일을 했습니다. 진도로 가게 된 것은 그 친구 때문입니다. 식당에 가서 처음에는 배달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보다 일찍 일어나고 남보다 늦게 잤습니다.”
틈틈이 요리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유명한 식당에 가서 연수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스물두 살 때 해남에다 자기 소유의 한정식 식당을 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도의 중화요리 식당에 배달 일을 시작한지 오년만의 일이다.
이제 담양에서는 ‘금농반점(金農飯店)’이라는 중화요리 식당은 몰라도 ‘조장옥’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그 이름 앞에는 ‘사랑의 짜장면 봉사’라는 아름다운 수식이 붙게 되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요양원이나 복지시설 같은 데서의 요청도 많아졌다.
조씨가 운영하는 금농반점이 영업을 쉬는 날은 매주 수요일이다. 일주일 동안 식자재가 안 들어오는 날이 수요일이기 때문에 이 날 쉰다. 그리고 이날 사랑의 짜장면 봉사도 한다. 금농반점을 처음 시작할 때 조씨는 매월 첫째주 수요일 하루만 쉬었다.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로 휴일을 늘렸다. 사실 이 날이 조씨 부부에게는 휴일이 아니다. 짜장면 봉사를 하는 날이다.
필자도 우연한 기회에 봉산면 노인복지회관 마당에서 조씨가 만들어 준 짜장면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는 먹고 나서 고맙다는 인사만 건넸다. 그때는 그 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조씨의 많은 노고와 깊은 사랑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 조씨와 가까이 마주하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행사를 한 번 치르기 위해서는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밖에 나가 행사를 치르는 것은 식당을 옮기는 것과 같다. 준비해야 할 물목도 40여 가지가 넘는다. 우동조리기, 버너, 밀가루, 양념류, 해물, 그릇, 나무젓가락, 냅킨 등등 가지 수가 너무 많아 자칫 했다가는 빼먹기가 일쑤다.
“양념을 빠뜨리고 가서 다시 가져 오느라 어르신들을 기다리게 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볍게 우동 한 그릇, 짜장 한 그릇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날 초대받은 어르신들에게는 어쩌면 간절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면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져 사시는 분들은 짜장면 잡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나와서 사 잡수고 싶은데 교통편도 불편하고, 돈도 없으십니다. 짜장면 잡수시기 전에 열시 반부터 섹소폰 같은 연주도 들려 드립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도 박수를 안치십니다. 잠시 후 잡수실 음식만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처럼의 짜장면 식사를 하게 되는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가게에서 음식을 만들 때보다 더 신경을 씁니다. 기름도 돼지비계에서 직접 추출해서 씁니다. 고기도 많이 넣습니다. 그야말로 짜장 반, 고기 반입니다. 실제로 식당에 와서 짜장면을 잡수시고 나서 면사무소 마당에서 먹은 것 하고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행사 때나 모처럼 짜장면을 먹는 사람들을 위해 조씨는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해남에서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던 조씨가 담양으로 온 것은 1992년이다. 담양사람인 매형의 권유로 담양에 왔다. 어언 25년이 되었다. 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머릿속 한쪽에는 고향으로 가고픈 생각이 늘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완전한 담양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굳혔다.
“논도 한 단지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찮은 제가 군민의 상도 받고, 담양 때문에 보건복지부 군민포장도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욱 담양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담양에게 보답도 하겠습니다.”
조씨는 반듯한 자격증을 소지한 조리사다. 그렇다면 그의 장기 요리는 무엇일까? 짜장 빼는 사람이 우동은 못 빼겠느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조리사니까 무슨 요리든 다 잘 할 것이다. 그래도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
“제가 원래 오리 요리를 좀 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요즘은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꼭 추천하라고 하면 돼지고기를 재료로 하는 오향장육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리는 기술보다 정성입니다. 열 번 잘 하다가 한 번 잘못하면 욕먹는 것이 요리입니다.”
조씨는 고향 해남에 살고 있는 노부모를 생각하며 짜장면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차례, 두 차례 해나가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짜장면 잡수신 분들이 내 뒤꼭지에 대고 욕은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욕만 안 얻어먹어도 성공한 것 아닌가요?”
*이 글은 2017년 4월 5일 현재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