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지도>97.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 고경석 회장
“입양은 나도 살고 남도 사는 고차원적인 가치입니다”
광주에서 자동차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담양중앙교회 고경석(59) 장로의 또 다른 직함은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 회장이다. 고씨는 사업체 대표, 교회 장로, 단체의 회장, 한 가정의 가장 등 1인 4역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일들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조금은 부산할 수밖에 없다.
“우리 한국입양홍보회는 1999년에 설립이 되었는데 입양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정들의 모임입니다. 회원 수는 1천여명이 넘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우리 모임의 첫 번째 목적은 국내입양을 장려해서 해외로 입양되는 사례를 줄여 보자는 것입니다. 아울러 입양아동과 그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입양아동들을 건강하게 양육함으로써 그 아이들의 복지와 권리 향상에도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6·25로 인해 많은 전쟁고아들이 발생했지 않습니까? 이때 우리 아이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로 입양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인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입양보다 해외입양의 비율이 높았다. 예를 들면 국내입양이 1천명이면 해외입양이 1천500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입양특례법’이 발효되면서 국내입양 1천500과 해외입양 1천명으로 바뀌었다.
고씨 부부는 결혼해서 내리 아들 둘을 낳았다. 그 후 둘째 아들과 여섯살 터울인 딸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큰딸과 여섯살 터울인 딸 하나가 더 생겼다. 두 딸은 가슴으로 낳은 딸들인 것이다.
“어느날 아내가 딸 하나를 입양하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일언지하에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이 당시의 사회분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만 있는 것보다 딸이 하나 있으면 집안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라며 아내의 의견에 동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더이상 논의의 진전은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난 1997년, 고씨는 큰딸을 입양하게 된다. 입양을 할 당시 큰딸은 생후 15개월이었다. 입양을 하게 되는 아이들은 미혼모에 의해서 출생한 아이들이 많은데 입양을 하게 된 아이는 정상적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 아이가 버려진 것은 선천적인 기형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보육시설에 가서 아이와 첫 대면을 했습니다. 코 밑에는 구순구개열 수술자국이 있었습니다. 머리카락 숱도 적었고 예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를 한번 안아 보았는데, 시설 관계자가 다른 아이를 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맘에 안 들면 다른 아이를 골라보라는 것이었죠. 그 자리에서 그 아이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는 스물세살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도 자기가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점에 대해서 방황하거나 번민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입양에는 비밀입양과 공개입양이 있는데 나는 공개입양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OECD 가입국이라는 자부심도 갖고 있습니다. 국민소득이 몇 만 불이네 선진국임을 자처합니다. 그러면서도 입양문제에 대해서는 쉬쉬하면서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점에 대해서는 후진이죠.”
비밀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이의 혈액형부터 따진다고 한다. 유전적으로 부부의 혈액과 상관관계가 없으면 아이가 커서 의심을 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얼굴도 서로 닮은 데가 있나 없나 살핀다고 한다. 자기 가족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씨는 입양한 딸이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때가 되자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입양가족들 모임에도 데리고 나가고, 입양과 관련한 책도 사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를 데리고 온 자식이냐고 물었을 때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자기를 낳아 준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면서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씨는 수소문을 해 생모를 찾아냈다. 그때 아이를 버린 까닭이 선천적으로 구순구개열 때문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생모는 아이를 버리고 나서 단 하룻밤도 발 뻗고 잠을 자본 적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아이의 태도가 너무도 태연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생모의 품에 안기기도 하고, 이런저런 다정한 이야기도 나누더니 반시간 정도가 지나니까 시들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니까 아예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십수년이 지나도록 생모의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고 하는데 그걸 절감했습니다. 그때 생모가 건강하게 잘 컸구나 하기에 앞으로 더욱 잘 키울 테니까 다 잊고 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둘째 딸은 생후 6개월이 된 영아 때 데려왔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였는데 기독교 집안이면서 교회의 장로를 원했다면서 보육원에서 연락이 왔다. 큰딸에게 자매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입양을 했다. 그 아이도 어느새 열일곱 살의 여고생이 되었다.
“둘째딸을 입양할 때는 집안사정이 좀 복잡했습니다.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었거든요. 보육원에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당분간 맡아 줄 테니까 사정이 허락할 때 입양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타계하고 나서 데려왔습니다. 2020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4강에 들어가 7월1일 임시공휴일이 되었는데 그날 데려왔습니다.”
고씨는 입양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그릇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특히 입양(入養)과 분양(分讓)을 혼돈하여 쓰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요즘 반려동물을 입양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인간 경시의 풍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은 분양하는 것이지 입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송국에서도 반려동물을 입양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입양홍보회에서는 수차례 시정을 촉구했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입양특례법이라는 것도 사실은 악법입니다. 미혼모들의 출산은 대개가 원하지 않은 출산이고 숨기고 싶은 비밀입니다. 그런데 입양특례법에서는 미혼모 밑에 호적을 올리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입양의 조건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미혼모들은 들통일 날까 두려워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특례법은 영아들을 죽이는 악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회나 관계부처에 청원을 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고씨는 입양은 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막연하게 인생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것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입양해 다음 세대들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입양은 나도 살고 남도 사는 고차원적인 가치입니다. 그리고 어른세대에게 큰 축복이고 선물인 아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버려져서는 안 됩니다.”
고씨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현재 담양중앙교회 신도 가운데는 고씨와 함께 고차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다섯 가족이 있다.
*이 글은 2017년 5월 25일 현재 이야기입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