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의 선택, 뿌리를 되찾는 길 위에서
― 2025년 담양 재보궐선거와 ‘옛 지명 복원 프로젝트’를 바라보며 ―
정치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가 정치 곁에 있는 순간은 많지 않다. 그 예외가 바로 ‘선거’다. 오는 4월 2일, 전국 23개 선거구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이는 2024년 3월 1일부터 2025년 2월 28일까지 발생한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의원 등의 궐위로 인해 실시되는 것으로, 기초단체장 5곳, 광역의원 8곳, 기초의원 9곳, 그리고 교육감 1곳에서 진행된다.
그중 담양군에서는 군수와 기초의원(라선거구)을 선출하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공석을 메우는 절차를 넘어, 담양의 정치·행정을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 비전을 그리는 군민들의 성찰의 장이며, 지역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다시 묻는 중요한 전환점이며,.
군민이 스스로 삶의 질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참여 민주주의’의 현장이기도 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간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이번 선거는 ‘누가 더 담양을 잘 아는가’라는 구도 이상의 질문, 즉 ‘누가 군민의 삶 가까이에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담양은 교통, 의료, 돌봄, 인구소멸 등 복합 현안에 직면해 있으며, 정치란 결국 ‘필요한 것’을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실천의 기술임을 우리는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2년여에 걸친 조사와 협의 끝에 결실을 맺은 ‘추성문화예술재단’의 ‘옛 지명 복원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조선 정조 대 『호구총수』에 기록된 전통 지명 ‘불로리(不老里)’가 금성면 ‘새덕굴길’의 새 이름으로 복원되고,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인 고하 송진우(1889~1945) 선생의 호를 딴 ‘고하길(古下길)’이 제정되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역의 역사와 인물, 기억과 가치를 복권(復權)하는 과정이자, 공동체가 자신을 다시 호명하는 문화적 행위이며, 길 위에서 만나는 역사교육의 장이자 자긍심의 상징이 된다.
주소는 단지 길을 찾기 위한 표식이 아니다. 그것은 곧 공동체의 기억이고 이야기이며 정체성의 지도다. 일제강점기 조세 수탈을 목적으로 도입된 지번주소 체계는 그 자체로 단절된 역사의 흔적이며, 이후 도입된 도로명주소 역시 역사성과 지역성을 담보하지 못할 경우 또 다른 단절이 된다. 박준호의 2014년 석사논문에서도 밝혀졌듯, 주소체계의 혼란은 물류와 재난 대응 등 현실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만큼, 이번 지명 복원은 문화와 행정, 역사와 미래가 교차하는 통합적 시도이자 행정 철학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도로명주소 제도 연혁]• 1996년: 대통령비서실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 지번주소 개선 기획• 1997년: 행정자치부 실무기획단 구성 및 시범사업 시행• 2006년: 「도로명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 제정·공포• 2009년: 전국 232개 시·군·구 대상 제도 정비• 2011년 7월 29일: 도로명주소 법적 효력 발생• 2012~2014년: 전면 시행 및 안내 시스템 구축 완료
2025년 대한민국의 봄, 을사년 입춘지절(乙巳年 立春之節). 새로운 한 해의 문턱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담양이 걸어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담양은 단지 아름다운 풍경의 고장만이 아니다. 조선시대 유학의 중심지였던 이곳에는 수남학구당, 지실초당, 찬평향교 같은 학문과 사유의 터전이 있었고, 그 속에서 지역 지식인들은 공동체를 위한 실천적 지혜를 나누며 공론의 문화를 일구었다. 지역 원로의 말처럼, “진짜 담양 사람은 흉중성죽(胸中成竹), 곧 가슴속에 이미 대나무를 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계획과 철학, 그리고 품격 있는 실천이 담양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것이 오늘날 담양 정치와 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얼마 전 수백 년 된 살구나무는 꽃을 피우고, 능수버들은 봄을 품은 새잎을 조용히 드리우고 있는 ‘우디미 시암’ 터가 있는 덕산원에서 지역 원로들과 나눈 대화의 시작도 그랬다. “한겨울 대밭에서 대통 터지는 소리를 기억하는가?”라는 질문 아래 피어난 이야기 속에는 영산강 시원의 용소, 황룡강과 백진강, 영산강 축제, 가사문학의 강호가도(江湖歌道), 남도소리의 본향으로서의 담양, 추월산 보리암의 드므((豆毛) 이야기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뿌리 깊은 정체성의 단서들이 곳곳에 녹아 있었다. 이 대화는 향후 ‘주성문화예술재단’에서 ‘담양미래학당’을 통해 ‘주제별 의제’로 이어갈 계획이다.
결국 담양은 자연과 사람,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남도의 보고(寶庫)이며, 이 풍부한 자산을 바탕으로 우리는 미래지향성·지속가능성·자치연대성·숙의공론성·세대공감성을 담은 새로운 민주적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한다. 선거는 단지 표를 던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가를 공동체적으로 선언하는 의식이자, 지역의 정체성과 철학을 집약해 내는 과정이다. 4월 2일, 군민이 선택한 그 길 위에서, 길을 고치고 이름을 되찾는 그 순간에서, 담양의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쓰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