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도체 강국보다 먼저 ‘전력 강국’을 준비해야 한다
전정철 (전) 전남도의회의원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성공의 첫 번째 조건도 안정적인 전력이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다. AI 산업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반도체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전략산업으로 보고 대규모 투자와 산업기반 구축에 나서고 있다. 광주·전남에서도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필자는 전기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계획을 바라보며 기대만큼이나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과연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언제부터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가?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의 공통점은 막대한 전력을 365일 24시간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필요한 전력량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전압과 주파수 등 높은 수준의 전력품질과 공급 신뢰성이 중요하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수많은 서버와 냉각설비를 쉬지 않고 가동해야 한다.
결국 AI와 반도체 경쟁은 기술경쟁인 동시에 전력 경쟁이다.
우리는 그동안 반도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그러나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전력의 중요성은 그만큼 강조해 왔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AI 산업이 더욱 발전하면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증가하고 이에 따른 전력수요 역시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기업들이 투자지역을 결정할 때 세제혜택이나 땅값뿐 아니라 “필요한 대규모 전력을 제때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따질 것이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선제적으로 충분한 발전설비와 송·변전망을 갖추고 세계 기업들에게 “대한민국에 투자하면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준다면, 이것 자체가 강력한 투자유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기업을 찾아다니며 공장을 유치하는 것만이 투자유치는 아니다.
세계의 기업들이 안정적인 전력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오게 만드는 것,
이것이 AI 시대의 새로운 국가 산업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력은 필요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발전소를 건설하고 송전선로와 변전소를 구축하려면 부지 선정과 인허가, 주민수용성, 환경문제 등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계획부터 실제 전력공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가 들어온 뒤 전력이 부족하다고 발전소와 송전망을 건설하겠다고 나서면 이미 늦을 수 있다.
10년 뒤 필요한 전기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중국의 움직임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발전설비와 대규모 송전망 등 전력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확충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전력 인프라 구축 능력은 앞으로 AI·반도체·데이터센터 경쟁에서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가 걸린 첨단 산업의 핵심 전력 인프라에 대해서만큼은 장기적인 국가계획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정책 역시 이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광주·전남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처럼 365일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에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ESS, 충분한 송·변전설비, 안정적인 발전원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가스발전, ESS 등 각각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안정성·경제성·탄소감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현실적인 전원구성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원전의 역할도 미래 첨단산업의 막대한 전력수요를 고려 하여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산업경쟁력과 전력계통 안정성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발전소만 건설한다고 전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된 전력을 실제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까지 보내려면 충분한 송전선로와 변전소가 필요하다. 발전설비는 있는데 송전망이 없어 전기를 보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 여부도 결국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부지 확보와 기업 유치, 공업용수와 교통·통신망 구축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조건을 만들어도 안정적인 전력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면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기 분야에 몸담았던 경험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적지 않은 걱정이 앞선다.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때 필요한 전력은 얼마나 되는가. 그 전력은 어디에서 공급할 것인가. 기존 송전망으로 충분한가. 새로운 송전선로와 변전소가 필요하다면 언제까지 완공할 것인가. 예상보다 전력수요가 증가하면 추가 공급은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에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
정부와 광주·전남, 전력당국이 함께 참여하여 예상 전력수요와 발전원 확보, 송전선로와 변전소 확충, 계통 안정성과 비상시 대응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공급 특별대책’을 서둘러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호남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호남을 단순히 전기를 생산해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곳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에 안정적인 전원과 송·변전망, 공업용수까지 선제적으로 갖춘다면 광주·전남은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미래 첨단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호남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를 호남의 첨단산업과 일자리로 연결해야 한다.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와 관련 기업까지 연계 한다면 광주·전남의 산업구조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세계의 AI 경쟁은 기술경쟁이자 반도체 경쟁이며, 결국 안정적인 에너지를 누가 확보하느냐를 다투는 전력 경쟁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기업들로부터 “한국에 투자하면 전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미래산업이다.
그러나 반도체를 만드는 것도 전기이고, AI 데이터센터를 움직이는 것도 결국 전기다.
반도체가 국가전략산업이라면 전력은 그보다 먼저 준비해야 할 국가전략 인프라다.
대한민국은 이제 ‘반도체 강국’을 넘어 ‘전력 강국 대한민국’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준비는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전력은 부족해진 다음 준비해서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