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회색 도시를 넘어, 초록의 소명으로- ‘2027 남도정원 비엔날레'가 여는 시대 -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도시는 눈부신 기술과 자본의 성취를 자랑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서 인간의 영혼은 조금씩 메말라간다. 고층 빌딩과 아스팔트, 끝없이 이어지는 속도의 경쟁 속에서 현대인은 깊은 실존적 피로를 호소한다. 이 거대하고 차가운 회색의 숲에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찾아 헤매는 구원의 처방은 다름 아닌 초록의 생명력, 곧 자연이다.
이제 정원은 식물을 가꾸고 완상하는 사적인 여가의 영역을 넘어섰다. 기후 위기와 탄소 중립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 앞에서, 정원은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생태적 보루이자 문화적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각국이 저마다의 철학과 미학을 담은 정원 도시를 앞다투어 내놓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의 길목에서, 전라남도와 담양이 함께 준비하는 '2027 남도정원 비엔날레'는 각별한 무게를 지닌다. 이는 지역 축제 하나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한국 정원문화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이를 세계 무대로 확장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비움과 조화, 남도 별서정원이 건네는 지혜
왜 하필 남도이며, 왜 담양인가. 비엔날레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지녀온 전통 공간의 가치부터 되짚어야 한다. 서양의 정원이 인간의 이성과 기하학적 척도로 자연을 길들인 인위의 건축이었다면, 남도의 정원은 그 결을 완전히 달리한다. 담양을 비롯한 남도 일대에 산재한 소쇄원, 명옥헌 원림, 식영정으로 대표되는 전통 별서정원(別墅庭園)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의 극치를 보여준다. 산비탈 하나, 계곡의 물길 하나, 본디 그 자리에 있던 노송 한 그루까지 함부로 베어내거나 바꾸지 않고 그 품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비움과 조화의 미학이 거기 있다. 담장은 최소한의 경계일 뿐, 정자 마루에 앉으면 사방의 산천이 곧 나의 정원이 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이 그렇게 구현되어 있다.
'정원의 경계를 넘어서(Beyond the Garden) — 시간과 공간의 향연 속으로'라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바로 이 철학적 토대 위에서 출발한다.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생태적 위기와 예술적 상상력 속에서 얼마든지 살아 숨 쉬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둘째. 죽녹원에서 전남 22개 시·군으로, 경계를 허무는 정원
이번 비엔날레가 지닌 또 하나의 혁신은 그 확장성에 있다. 기존의 정원 관련 행사가 특정 구역의 일회성 전시에 머물렀다면, 2027 남도정원 비엔날레는 공간과 장르의 한계를 과감히 허물고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행사의 주무대가 될 담양의 죽녹원과 관방제림, 그리고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별서정원 일원은 살아 있는 거대한 야외 전시장이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남 도내 22개 시·군이 유기적으로 손을 잡아 저마다의 생태 자원과 정원 문화를 동시에 선보인다. 전남 전역이 하나의 커다란 정원 네트워크로 묶이는 셈이다. 여기에 미술, 음악, 문학, 인문학이 정원이라는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국립정원문화원과의 긴밀한 협업을 비롯해 국내외 전문가와 예술가가 함께하는 학술 심포지엄, 생태 예술 설치전, 시민 참여형 가든 페스티벌이 입체적으로 어우러질 예정이다. 정원이 인문학적 사유와 예술적 영감이 교차하는 한 차원 높은 문화 플랫폼으로 격상되는 순간이다.
셋째. 소멸의 위기를 넘어서는 담대한 성장 동력
2027 남도정원 비엔날레는 문화적 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지방자치단체가 마주한 가장 준엄한 현실은 지방 소멸의 위기다. 정원문화와 생태관광을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해답을, 이 비엔날레는 품고 있어야 한다. 담양군을 비롯한 전라남도는 이번 비엔날레를 계기로 단순한 관람객 유치를 넘어 체류형 관광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방문객이 하루 이틀 머물며 남도의 맛과 멋, 그리고 깊은 숲의 치유를 온전히 누리도록 기반을 정비하고, 지역 주민이 정원을 가꾸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체로 나서 일자리를 얻고 소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자연환경이 곧 최고의 자산이자 자원인 남도에게, 정원 산업은 앞으로 백 년을 이끌어갈 가장 확실하고 친환경적인 블루오션이다. 비엔날레를 통해 세워진 정원 인프라와 네트워크는 행사가 끝난 뒤에도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세계적인 생태 관광 도시로 도약하는 튼튼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넷째. 세계인이 찾아오는 정원문화의 메카를 꿈꾸며
역사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고, 미래는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 2027년 5월부터 6월까지, 전남의 들판과 숲은 온통 초록빛 거대한 예술품으로 피어날 것이다. 선조들이 자연을 경외하고 아끼던 그 마음이 오늘의 예술적 감각과 만나 세계인을 매료시킬 채비를 하고 있다.
정원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꾸고 돌보아야 하는 진행형의 공간이다. 2027 남도정원 비엔날레의 성공 역시 행정기관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전남 도민의 자발적 열정과 문화예술계의 창의적 상상력,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이 하나로 모여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담양군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관심이 모여 이 거대한 초록의 서사를 완성하는 첫 문장이 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 남도의 숲속 정원에서 인류가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고, 한국의 정원문화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장관을 목격하길 소망한다. 2027년,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어 시공간의 향연으로 펼쳐질 ‘남도정원 비엔날레’의 성공적인 항해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