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전통정원과 글로벌 교육이 만나는 곳: ‘머무르는 인문학 도시’ 담양의 미래
인구가 약 4만 4,000여 명에 불과한 전남 담양군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지붕 없는 박물관’이자 ‘인문학의 보고(寶庫)’다.
죽녹원과 관방제림의 푸른 숨결을 따라 걷다 보면, 양곡창고를 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한 담빛예술창고와 대담미술관, 보임쉔, 남촌미술관 등 예술적 감성이 넘치는 미술관 6곳과 박물관 4곳이 방문객을 반긴다. 어디 그뿐인가. 무등산 자락의 887번 지방도를 지나며 마주하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명옥헌 원림 등 유서 깊은 누정과 정원들은 한국 민간 정원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러한 독보적인 인문·생태적 자산을 바탕으로 담양군은 2016년 전국 최초로 ‘인문학 교육 특구’로 지정된 데 이어, 지역 내 산재한 전통정원을 보존·활성화하기 위한 ‘한국 전통정원 특구’ 지정까지 추진하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명실상부한 인문학 생태도시로의 도약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담양의 관광 reality(실체)를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담양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대부분 몇 시간 동안 죽녹원이나 관방제림을 둘러보고 식사 한 끼를 마친 뒤 떠나버리는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지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인권과 학문,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로 지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쳐 지나가는 발길을 ‘머무르는 발길’로 전환하는 일대 용단이 필요하다.
그 결정적인 해법의 단초를 우리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제주영어교육도시’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1차 산업 중심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던 대정읍은 NLCS 제주(영국계), BHS(캐나다), SFA, KIS (미국계) 등 세계적 수준의 외국 교육기관 및 국제학교가 들어서면서 단숨에 국제적 교육 거점으로 변모했다.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정주 인구가 유입되었고, 정주형 교육 인프라는 지역 상권 활성화와 문화적 다양성 확충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학교라는 건물만 들어선 것이 아니라, ‘교육’을 매개로 사람이 머물고 생활하는 살아있는 도시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담양 역시 이러한 글로벌 교육 인프라 유치를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담양이 지닌 인문학적 고결함과 전통정원의 고즈넉한 환경은 학문과 인성 교육을 펼치기에 세계 어느 곳보다 뛰어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외 유수 대학의 한국 캠퍼스나 국제 중·고등학교, 혹은 인문학 특화 외국 교육기관을 담양에 유치한다면 어떨까.
외국 명문 교육기관의 유치는 단순히 학생들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직원과 학부모, 국내외 연구자들이 담양에 상주하며 장기 정주형 인프라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 담양이 이미 보유한 ‘인문학 아카데미’, ‘21세기 담양포럼’, ‘풍류 남도 나들이’와 같은 고품격 교양·체험 프로그램이 결합한다면,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의 전통 가사문화와 선비정신을 배우고 체험하는 독창적인 교육 환경이 완성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교육 자산과 인문학 자원은 담양만의 특화된 체류형 관광 상품인 ‘담양 달빛여행’과 결합하여 커다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낮 동안 소쇄원과 명옥헌의 차경(借景)을 감상하고 대나무 숲길을 걸었다면, 밤에는 무등산 자락의 누정에서 은은한 달빛을 벗 삼아 거문고 소리를 듣고 가사문학을 논하는 ‘밤의 인문학 산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외국인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글로벌 방문객들은 이 달빛여행 코스를 통해 단순한 유흥이 아닌, 영혼의 휴식과 지적 충전을 경험하게 된다. 식영정과 환벽당에서 선비복을 입고 다도와 서화를 배우는 체험은 외국인들에게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고유한 세계적 문화 콘텐츠로 다가갈 것이다. 낮의 정원과 밤의 달빛, 그리고 글로벌 교육이 결합할 때, 담양은 비로소 ‘며칠씩 머무르며 삶을 되돌아보는 인문학 여행의 성지’로 거듭나게 된다.
인문학은 책 속에만 갇혀 있는 관념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각을 나누고, 자연 속에서 삶의 이리를 깨닫는 모든 과정이 곧 인문학이다. 전통정원의 아름다움을 지닌 담양에 글로벌 교육기관이라는 새로운 활력이 더해지고, 밤하늘을 수놓는 달빛 아래 인문학의 향기가 흘러넘칠 때, 담양은 단순한 지방 소도시를 넘어 세계인이 찾아와 배우고 머무르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제1의 인문학 도시’로 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