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고 놓는’ 주판 셈
‘털고 놓는’ 주판 셈
  • 마스터
  • 승인 2008.12.2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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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재록 소설가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약간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잘못된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미적거리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내 삶의 계산이 틀렸다면 이제라도 과감하게 털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시점이라고 했다.

전자계산기가 없었던 예전에는 어린 학생들이 주판 셈, 즉 주산공부를 많이 했다. 그 때는 주산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사설학원도 많았다.

주산에는 급수가 있고 단도 있다. 그리고 고단자는 은행에 특채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주산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는데 최근에는 다시 초등학생들에게 주산을 가르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주산을 가르치면 아이들의 수리능력이 발달한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털고 놓기’라는 말로 신호를 한 다음, 이어서 숫자를 불러주던 선생님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털고 놓는다는 것은 주산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주판을 털어서 주판알을 나란히 해야 계산을 할 수 있다. 그러다가 틀리면 다시 털고 놓아야 한다. 계산이 틀렸는데도 털고 놓는 것을 미적거린다면 그만큼 시간적 손해가 따르게 된다. 틀리면 과감히 털고 다시 놓아야 한다.

그런데 털고 놓는다는 것이 주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네 인생사에서도 ‘털고 놓기’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 꼬였을 때 망설이지 않고 그 실수를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바로 주산에 있어서 ‘털고 놓기’와 같은 것이다. 털고 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명쾌하게 인정하는 동시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새로운 출발점인 것이다.

그렇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 선뜻 털고 놓기를 하지 못한다. 미련과 아집 때문이다.

그 실수가 번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일은 더욱 꼬이게 된다.

최근에 전직 대통령의 친형이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 사건 역시도 검찰의 수사 초반에는 당사자는 오리발을 내 놓으며 ‘털고 놓기’를 거부했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사람들은 언제든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보통사람들도 그렇고, 사회지도층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은 사안이면서도 사회지도층의 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보다도 그 사회에 끼치는 파장이 크다.

그리고 조직의 최고 지도자의 실수는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 전 아무개라는 세무서 수장이 끝까지 범법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털고 놓기’를 미룬 일이 있었다. 당시 어느 세무공무원은 부끄러워 낯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한 조직의 최고 지도자가 실수를 하면 그 조직원들의 부끄러움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직의 최고 지도자일수록 그 문제에 대한 결말을 빨리 매듭지어 주어야 한다. 그가 명쾌하게 ‘털고 놓기’를 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는 가운데 조직은 균열되고, 조직의 동력은 떨어지고, 타 조직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설령 자신의 실수가 아니고 조직원의 실수라 해도 그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최고 지도자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 최고 지도자는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커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의 어느 부처에서 잘못이 생기면 장관이 옷을 벗는데, 그것은 권한과 책임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조직의 책임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조직원의 실수는 내 탓이 아니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지도자들이 많다. 한 술 더 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지도자들도 있다. 그래서 힘없는 서민들은 답답하고 서글플 뿐이다.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지도층일수록 ‘털고 놓는’ 일에 과감해야 한다.

털고 놓는 일은 실패와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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