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사동씨- 담양 죽산매구 살아있는 전설
1. 정사동씨- 담양 죽산매구 살아있는 전설
  • 마스터
  • 승인 2009.02.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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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구는 웃는 낯으로 두들겨야 좋은 소리가 나는 거여”


“어르신의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죽산매구 주장맥이굿, 죽산들소리, 상여소리 같은 것도
정리해 복원을 해야 하는데…”
정사동씨의 건강이 날



정사동씨가 본격적으로 풍물공부를 시작한 것은 열다섯살 때부터다. 그로부터 68년이 흘러 정사동씨는 올해 여든세살이 되었다.


그보다 훨씬 전 아직은 철부지였던 일곱살 때부터 그는 풍물 흉내를 내며 놀곤 했다. 풍물패의 뒤를 따라다니며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꽹과리 치는 흉내를 냈다. 그때부터 정사동씨의 풍물인생을 이야기한다면 76년이 된다. 그야말로 죽산매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정씨는 요 몇 년 사이 위암 수술과 담낭 제거수술을 받고나서 건강이 아주 나빠졌다. 말하기도 힘들어졌다. 특히 청력이 극도로 쇠약해져 보청기를 사용해도 큰소리를 해야만 알아듣는다. 그래서 젊은 풍물꾼 김종혁씨의 도움을 받아 죽산매구의 살아있는 전설 정사동씨의 삶을 들여다봤다.

정사동씨가 아직 개구쟁이 시절이었던 당시 설이나 정월대보름, 그리고 추석 등 명절이 되면 죽산마을에서는 농악판(풍물판)이 벌어졌다. 그때는 마을 인구가 많았으므로 자연풍물패의 규모도 컸다.


“요즘은 서른명 모이기도 힘이 들지만 그 때는 죽산매구 풍물패가 백이십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규모면 쇠, 즉 꽹과리를 치는 사람만 해도 대여섯명이 됩니다. 제일 우두머리를 상쇠라고 하고, 그 다음을 종쇠 또는 부쇠라고 하고, 차차로 삼쇠, 사쇠, 오쇠, 그런 식으로 부릅니다. 이중에 공병만씨라고 하는 상쇠가 있었습니다. 정사동씨의 외삼촌이 되는 분입니다. 그런데 당시 일곱살이었던 어린 정사동씨는 마을에서 풍물판이 벌어지면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쇠 두드리는 흉내를 냈다고 합니다.”


젊은 풍물꾼 김종혁씨의 말이다.


외삼촌 공병만씨는 어린 외조카의 행동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던지 정사동씨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본격적인 풍물공부를 시킨다. 이때는 풍물이 귀한 때라 정씨는 대나무로 꽹과리 모양을 만들어 옆구리에 차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두드렸다고 한다. 이로부터 정사동씨의 풍물인생의 삶이 시작되게 된다.




그럼 여기서 잠깐 죽산매구의 계보를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죽산매구의 출발은 최복초씨, 공병만씨 두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은 당시 용면 장찬리에 살고 있던 송보효씨에게서 풍물공부를 했다.

그러므로 죽산매구의 뿌리는 용면 장찬리의 송보효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분들은 모두 작고했다. 그러므로 죽산매구의 역사가 몇년이나 되었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정사동씨가 이미 열다섯 살에 최복초씨와 공병만씨에게서 풍물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니까 적어도 100여년 이상의 역사는 갖고 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서른세살이 되면서부터는 정사동씨의 쇠 두드리는 솜씨는 근동에 소문이 난다.

그때부터 정 씨는 광주, 순창 등지로 돌아다니면 쇠를 두드린다. 이런 경우를 ‘팔려 다녔다’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서른다섯살때 전라남도 민속경연대회에 담양군 대표로 참가한다. 그 뒤 정씨는 내리 12년동안 이 일에 참여한다.


이 무렵 대한민국은 이른바 근대화의 기치를 내세운 새마을운동이 전개된다. 정사동씨 역시 이 운동으로 할 일이 많아진다.

마을길도 넓혀야 하고, 지붕도 개량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농촌의 젊은이들이 하나둘 대도시로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정사동씨가 쇠를 두드리는 일도 적어진다.


쉰 살을 바라보며 쇠(꽹과리)를 놓았다.

그러다가 1997년 다시 쇠를 두드리게 되었다. 젊은 풍물꾼 김종혁씨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이른바 ‘죽산매구보존회’를 만들겠다며 정사동씨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97년 죽산매구굿 채록이 시작되었고, 2000년에는 죽산매구굿 가락보가 완성된다. 그리고 2001년에 정식으로 ‘담양 죽산매구굿 보존회’가 결성되고, 그 해 담양죽향축제에서 발표회를 갖는다.

죽산매구굿 이야기가 점점 무르익자 정사동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미소짓는 정씨의 얼굴이 천진무구 그대로다.


“매구는 웃는 낯으로 두들겨야 좋은 소리가 나는 거여.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쇠도 갈라지고 요상한 소리를 내게 되는 거여.”


그런데 죽산매구는 좌도농악도 아니고 우도농악도 아닌 독특한 가락을 갖고 있다.

좌도농악은 곡성, 구례, 순창, 남원, 임실 등 산악지대의 농악을 말하는데 잔가락이 없고 힘이 있다. 한마디로 남성적이다.

반대로 우도농악은 광주, 무안, 함평, 영광, 고창, 정읍 등 평야지대의 농악을 말하는데 기교가 많아 가락이 화려하며 여성스럽다. 이 두가락을 아우른 가락이 죽산매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이 뒤따라 주지 않아 죽산매구의 뛰어난 풍물꾼들이 다른 지역으로 가서 그 지역의 무형문화재가 된 경우도 있다.

정사동씨보다 네살 연상인 김회열씨라는 걸출한 상쇠가 있었다. 그는 죽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죽산매구를 쳤다. 그러나 결국 고향을 떠나 광주 광산농악 설장구 기능 보유자인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현재 죽산매구는 담양군 향토문화재 1호로 등록이 되어 있는 실정인데 그 지원은 턱없이 미약하다고 김종혁씨는 말한다. 이런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젊은 풍물꾼 김종혁씨는 죽산매구를 집대성한 책자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새 봄이 되면 정사동씨가 다시 쇠(꽹과리)를 두드리게 될지 현재로선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냥 전설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김종혁씨는 그것이 못내 아쉽다.


“어르신의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죽산매구 주장맥이굿과 죽산들소리, 상여소리 같은 것도 정리해 복원을 해야 하는데 여건이 어려워 그냥 마음만 바쁩니다. 그런 일은 정사동 어르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김종혁씨는 정사동씨의 건강이 날로 나빠지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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