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개 항아리에 된장 간장 숙성
한해에 국산 콩만 1천여가마 사용
많은 국산콩을 어떻게 구하느냐구요?
이제 이윤보다 전통식품 명인인 저는
이름 석자
창평면 유천리 ‘고려전통식품’의 대표 기순도씨는 5년 묵은 진장(陳醬)으로 한국 전통식품의 명인이 되었다. 이제, ‘기순도’는 ‘믿고 먹어도 좋을 식품’의 대명사가 되었다. 기순도씨를 만나 기순도 된장과 간장, 그리고 고추장과 청국장 이야기를 들어본다.
“보시(布施)하는 마음으로 된장·간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된장이나 고추장을 사 가시는 분들이 값을 치르면서도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된장이나 간장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나를 믿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정말 보시(布施)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된 기씨의 남편은 창평고씨인데 원래 승려가 되고 싶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실제로 승려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종갓집 장남이었던 그는 집안은 반대에 부딪쳐 결국 승려생활을 포기하고 기순도씨와 결혼을 한다. 파계(破戒)를 한 셈이다.
시집 온 기씨는 처음에 죽염(竹鹽)을 만들었다. 결혼 전 남편은 승려생활을 하면서 직접 죽염을 구워 사용했다. 시댁의 주변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대나무는 집 주위의 대나무를 사용했고, 천일염은 전라북도 부안 염전에서 가져다 썼다. 처음에는 가정에 쓸 것과 주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적은 양을 구웠다. 그런데 이 죽염의 입소문이 퍼져 달라는 사람이 많아졌다.
양을 늘렸다. 아홉 번 구워낸 죽염에 ‘영명죽염(永命竹鹽)’이라는 상표를 붙였다.
영명죽염을 찾는 사람이 날로 늘어났다. 이 무렵 기씨는 그 죽염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때도 사업으로 발전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죽염 된장과 간장의 인기도 좋았다.
기씨가 죽염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자 기씨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내던 된장과 간장을 좀 더 체계적인 방법으로 양도 늘려서 사업으로 발전시킬 구상을 한다. 그리고 1992년 ‘고려전통식품’을 설립한다.
기씨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전통식’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한다. 전통식을 지키는 ‘기순도 된장 간장’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메주는 동짓달 말날(음력 11월 12간지 중 소(丑)가 들어간 날)을 택해 쑨다. 쑨 메주는 짚에 묶어 메달아 한달 정도 발효시킨다. 한달 발효 후 또 말날을 받아 메주와 죽염수를 항아리에 넣고 발효시킨다.
그런 다음 잘 발효된 메주에 메주가루를 혼합해 항아리에 넣고 된장으로 숙성시킨다. 그리고 메주가 우러난 죽염수를 달여 항아리에 숙성시키면 간장이 된다. 그런데 기순도 된장과 간장이 다른 점은 죽염을 사용하는 것이다. 천일염 대신 죽염을 사용하고 간장을 많이 빼지 않아 된장이 맛있고, 간장도 진하다는 것이다.
회사 설립 후 준비과정을 거쳐 마침내 1996년 제품이 생산된다. 그리고 즉각 백화점과 대형마켓에 판로를 구축한다. 그런데 첫 출시 행사를 하던 그 날 불이 나 작업장과 매주 발효장 등이 모두 타버린다.
기씨는 철저히 전통식을 고집한다. 된장과 간장을 숙성시키는 용기도 옹기항아리를 쓴다.
그래서 처음에는 옹기항아리가 적어 메주를 콩 50가마 정도밖에 쑤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항아리가 500여개로 늘었고, 2008년도에는 콩 1,000여 가마를 썼다. 콩의 사용량으로 볼 때 20배가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천 가마니나 되는 국산 콩을 어떻게 구하느냐고 의심을 합니다. 수입 콩을 국산 콩으로 둔갑시킨다고 의심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전통식품 명인입니다. 그 이름을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제품은 해마다 연구기관에 의뢰해 검사를 받습니다. 유전자변형까지도 분석이 됩니다. 물론 사업의 최대 목표는 이윤창출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이윤을 따지는 일보다 제 이름 석 자 기순도를 지키는 일이 더 소중합니다.”
이러한 기씨의 바람대로 세 자녀들은 모두 식품과 관련한 공부를 했고, 현재에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막내아들 고봉국씨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식품가공을 연구하고 있다. 막내아들 봉국씨가 연구하는 분야는 ‘조선 간장’이다.
그 가운데서 ‘청장(맑은 장)’이다. 봉국씨는 박사과정을 마친 다음 장류산업 선진국인 일본으로의 유학도 계획하고 있다.
기씨는 청장에 대해서도 한마디 도움말을 해준다.
“주부들이 맑은 국 같은데 간을 맞출 때 소금을 많이 사용합니다. 맑은 국의 빛깔이 탁해지기 때문에 그러는데 청장을 사용하면 됩니다. 소금을 과다 섭취하면 고혈압 등 성인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장은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소금에 비해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순도 된장 간장’의 이름은 이제 백화점 진열장에서 명품으로 대접을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된장·간장·고추장·청국장·쌀조청 등 제품도 다양해졌다.
해마다 설날이 지나고 일주일 정도쯤이면 서울 유명 백화점에서는 기순도 메주 바자회가 연례행사로 열리고 있다. 이때 소모되는 콩은 대략 300가마니다.
기씨는 좋은 식품을 나누어 먹기 위해 ‘가족장독대’도 만들어 주고 있다.
가족장독대는 된장과 간장을 주문 생산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가족장독대는 가족단위로 된장·간장 담그기 체험도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장이 익는 것은 신의 조화라고 한다. 장맛은 콩·소금·물 등 기본적인 재료 외에 햇빛과 공기, 그리고 미생물 등 자연의 힘이 작용하여 결정된다. 기씨는 그 가운데서도 물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된장과 간장, 그리고 고추장 같은 것이 맛좋은 것은 무엇보다도 물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 집 물은 150m 암반수를 끌어올려 쓰고 있습니다. 된장이나 간장을 사러 오는 분들보다도 물을 가지러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순도 된장 간장’의 특별한 맛은 그 무엇보다도 ‘보시(布施)하는 마음으로 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