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해와 달이 숨 쉬고 있구나!”
“나랏돈으로 반듯한 길을 낸다는데…”
위기의 가로수길 우여골절 끝에 살려내
가로수길은 담양군민 운동 승리의 표상
앞으로 천년만년 지키는
너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 해와 달이 숨 쉬고 있구나!
바다를 건너온 너의 조상들로부터 /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보물 / 고이 간직해서 지구는 푸르구나!
너의 낯선 모습도 /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 우리 곁에서 다정하구나!
화창한 봄날 / 남도의 푸른 나무들과 / 어깨동무하는 너의 눈동자는 / 가장 순결한 보금자리구나!
-박성애의 시 ‘메타세쿼이아’ 전문
박성애의 시 한 구절처럼 메타세쿼이아는 담양의 보물이다. 대나무 공원 ‘죽녹원’과 ‘관방제림’ 그리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이어지는 푸른 공간은 이제 담양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이 가운데서 외지의 관광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고, 또 걸어보고 싶어하는 곳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그런데 이 가로수길이 한때 하마터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담양의 군민들은 한 마음이 되어 이를 지켜냈다. 때문에 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주민운동 승리’라는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이 주민운동 승리의 주역들이 바로 ‘가로수사랑군민연대’이다. 물론 군민연대라는 이름으로 가로수길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담양군민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졌기 때문에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가로수길을 지켜낸 것은 담양군민 모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쓰면서 굳이 그 공로자들이 누구누구라고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취재의 편의상 그때의 일을 비교적 소상이 기억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그때의 자료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 누구인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가 만나게 된 사람은 당시 담양예술인협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국근섭씨다.
2000년 5월 개통을 목표로 담양읍에서 금성면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확포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담양군에서는 이 공사와 관련하여 가로수를 벌목할 계획을 세우고 곧바로 추진하기로 한다. 도로의 선형을 직선으로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가로수를 벌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담양예술인협회, 농민회, 담양JC, 담양을 아끼는 사람들 등 사회단체가 연대하여 이른바 ‘가로수사랑군민연대’를 결성한다.
처음에는 5~6개 단체가 참여했는데 곧바로 담양군자연보호협의회, 개신교담양교회협의회, 천주교담양교회 사목협의회, 담양불교사암연합회, 원불교담양교당, 대나무연구회 등 20여개 단체가 동참하게 된다. 사회계층과 종파의 구분없이 그야말로 모두 모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이 전개되면서 광주와 전남,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시민단체들도 이에 동참하여 가로수사랑군민연대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가로수사랑군민연대가 정식으로 출범한 2000년 5월, 담양군과 군민연대는 팽팽한 대립 속에서 묘안 찾기에 고심한다. 담양군(당시 문경규 군수)은 나랏돈 가져다가 반듯한 길을 낸다는데 왜 반대하느냐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공사 시행청인 익산국토관리청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답변만 반복한다.
이에 대해 군민연대는 직선도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소의 선형 변경을 하더라도 가로수를 살려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당시 지역 여론은 군민연대를 지지하는 여론이 훨씬 우세했다.
담양군과 타협점을 찾지 못한 군민연대는 군민들을 상대로 가로수 살리기 서명운동을 전개했는데 서명에 참여한 군민은 3천명이 넘었다. 한편 익산청을 방문해 선형 변경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본래의 계획을 고집하던 익산청에서도 군민연대의 촉구를 받아들여 담양에서 공청회를 갖자는데 동의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를 살려내게 된다.
“군민 모두의 승리였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합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걸 새삼 절감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 일을 우리 담양군민 모두가 이루어낸 쾌거라고 생각하고 모든 분들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가로수 178그루 가운데서 64그루만 벌목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2000년 7월, 가로수사랑군민연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가로수 사랑 한여름밤의 콘서트’를 갖는다.
“콘서트를 여는데 자금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콘서트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니까 담양군 관계자가 예산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를 거절했습니다. 군민의 힘으로 지켜낸 가로수이니까 콘서트도 군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해보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십시일반으로 모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출연자들도 개런티를 받지 않고 공연을 해 주었습니다. 또 한 가지 가로수사랑군민연대의 의도가 순수한 것이었으므로 출연자들도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도 정했습니다..”
지금까지 콘서트에 출연한 가수들은 안치환, 신형원, 김원중, 박문옥, 김홍철(요들송 가수) 등이다. 이렇게 해서 제1회 콘서트가 탄생하게 된다. 애당초 가로수 콘서트는 지속적으로 열 계획은 없었다. 따라서 이듬해인 2001년에는 콘서트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로수연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주도하여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열린다.
회를 거듭하게 되자 담양군에서도 상당한 예산 지원을 한다. 그러던 중 2007년에는 담양군 예산이 갑자기 없어져 콘서트가 중단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러자 또다시 가로수연대는 십시일반 자금을 모으고, 우리지역 출신의 뜻있는 가수들을 중심으로 한 무료공연으로 가까스로 명맥을 있게 된다.
하지만 2008년에 ‘가로수사랑 한여름 밤의 콘서트’는 열리지 않는다. 해마다 담양군에서 지원해 주던 예산이 없어지고, 번번이 출연자들의 무료공연을 부탁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국씨는 가로수사랑콘서트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로수를 지키기 위해 뜨겁고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던 2000년의 봄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담양의 보물이며 담양군민운동 승리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 길이 갖고 있는 가치는 영원불변해야 한다. 중단됐던 콘서트는 꼭 부활되어야 한다.
그리고 담양군민 모두가 마음을 합쳐 살려낸 길이기 때문에 천년만년 그 길을 지키는 것도 군민의 의무이다. 또한 그 길로 인해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득의 최대 수혜자도 당연히 담양군민이어야 한다.
담양 천년의 역사 속에 가로수사랑군민연대의 위대한 업적이 있었다는 것을 참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과장된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가로수를 지켜낸 군민연대의 운동은 한말 의병운동이나 진배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