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취미는 인생을 향기롭게 합니다”
실내 공기정화, 심신안정 효과, 유해전파 차단
건강 파수꾼이자 에너지 덩어리인 숯에 매료 40년
명실공히 숯공예 창시자, 숯 전도사 닉네임 얻어
숯각시·숯목베

담양읍 천변리 소재 ‘한국대나무박물관’ 단지 안에 ‘양정자 숯’이라는 간판을 내건 작은 가게가 있다. 얼핏 보기엔 숯을 재료로 한 생활제품 판매 가게이다. 그런데 이 가게가 대한민국이 공인(共認)한 숯공예 명인(名人)이며 신지식인 양정자씨의 연구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양씨는 대한민국 숯공예의 창시자(創始者)다.
“좋은 취미는 인생을 향기롭게 합니다. 그런데 취미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생산적인 취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취미가 직업이 된다면 즐거울 수 있고, 즐거워야 혼이 깃드는 것 아닐까요?”
양씨는 우리나라 최초로 숯공예를 시작한 사람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숯공예 명인이며 신지식인이다.
“처음에는 꽃을 닮고 싶어서 취미로 꽃꽂이를 시작했습니다. 꽃과 같은 인품, 성격, 외모를 닮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넓은 세계에서,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서 그때부터 서울을 오가면서 권위있는 전문가에게 꽃꽂이 공부를 했습니다.”
남편의 반대도 있었다. 매주 한번씩 새벽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공부를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3년간 했다.
“3년만에 꽃꽂이 사범 자격을 땄습니다. 꽃꽂이 선생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존경하는 분은 고하수 선생님입니다. 현재 연세가 83세인데 요즘도 아주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사범 자격을 따던 날 고하수 선생님께서 꽃으로 직업을 삼아도 되지만 장사는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장사를 하면 생활수단이 되니까 양심을 속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선생님의 당부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씀드립니다.”
40여년이 지나오는 동안 양씨는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사범으로 활동하는 제자들도 백여명이 넘는다. 제자들이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보약을 먹은 것처럼 심신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런 스승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은 양씨에게 정원(淨源)이라는 호(號)를 만들어 주었다. 현재 양씨는 사단법인 한국꽃예술작가협회 정원꽃예술중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여전히 꽃과 관련하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양씨를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양씨는 요즘도 왕성하게 강의(講義)활동도 하고 있다. 매주 전남대 평생교육원에서 숯공예, 광주남구청문화원에서 꽃꽂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양씨는 꽃꽂이보다 숯공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꽃꽂이 세월이 40년이고 숯공예 세월이 10년이다.
“숯은 건강의 파수꾼이며, 에너지 덩어리이며,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과학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득 꽃과 숯을 조화(造化)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숯공예 작품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숯공예라는 말도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이름을 붙여 본 겁니다. 숯에 대한 공부도 했습니다.”
양씨가 숯공예를 시작하던 때는 전국적으로 숯공장이 열일곱 곳이었다고 한다. 양씨는 좋은 숯을 구하기 위해 강원도 횡성군 산골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재료를 참나무숯이 아닌 대나무숯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나무숯보다 대나무숯이 공기청정이나 악취탈취의 효과가 더 높다는 연구보고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나무숯을 이용한 꽃바구니를 만들어 보았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양씨는 숯공예 전시회도 여러차례 가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더욱이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솣공예 작품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도 한다.
“작품을 만들어도 공간이 부족해 전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남도청에 많은 작품을 기증해 버렸습니다. 담양은 대나무 이미지를 지켜야 앞으로 경쟁력이 생기고 대나무숯의 우수성도 적극 홍보해야 합니다. 전시관이 생긴다면 지역에 보탬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숯공예 명인이며 신지식인 양씨는 최근 들어 아예 숯 전도사(傳道師)가 되어 버렸다.
“숯은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작용과 심신 안정에 효과가 있습니다. 실내에 숯을 놔두면 유해 전파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로를 풀어주며 숙면을 취하게 합니다. 땅에 숯가루를 뿌려주면 딸기, 토마토 등 작물의 당도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과일과 야채를 씻을 때 숯을 사용하면 농약성분을 중화시켜 줍니다. 솥에 밥을 넣어 지으면 윤기가 흐르면 밥맛이 좋아지고, 쌀통에 숯을 넣어두면 쌀벌레가 생기지 않습니다.”
양씨의 숯에 대한 찬양은 끝이 없다. 그는 집에서 숯으로 걸러낸 물을 음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양씨는 숯으로 정수한 물을 ‘살아 있는 물’이라고 말한다, 숯물로 차를 달이는 법도 개발했다. 그리고 숯각시, 숯목베개, 휴대용 숯베게, 실내용 숯주머니, 차량용 숯매듭 등 생활제품도 여러 가지 개발했다. 이렇듯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명인의 삶은 그리 넉넉지 않은 눈치다. 그런데 자기의 뒤를 잇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어 위안이 된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바로 양씨의 아들 이준석씨(38세)다.
이씨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졸업을 한 뒤 원예학과에 입학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 분야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에서 유학을 했다. 그리고 꽃꽂이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인 ‘마에스터’의 위치에 올랐다.
아들에게는 서양식 꽃꽂이 공부를 권했습니다. 현대인들이 서양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꽃꽂이라기보다는 설치미술 쪽에 가깝다. 양씨도 처음에는 한국식이었는데 중간에 서양식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한국식으로 바꾸었다.
“외형적으로 왜소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품이나 깊은 맛은 서양식이 한국식을 따라올 수 없지요. 나이가 들어서 작은 것은 아름답다는 것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큰 바닥에 나가 활동하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태어난 땅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내가 태어난 땅에 뼈를 묻는다는 걸 생각하면 행복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이 일은 꽃을 닮고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힘이 닿을 때까지 이 일을 하면서 꽃처럼 살고 싶습니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