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파란 눈의 이방인, 꿀초(蜜蠟醋) 공예가 빈도림씨
22.파란 눈의 이방인, 꿀초(蜜蠟醋) 공예가 빈도림씨
  • 마스터
  • 승인 2009.09.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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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담양사람들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1984년 독일 대학교서 한국어학 박사 학위
여유로운 삶, 정겨운 시골 풍경, 대나무 등
슬로라이프에 매료 2002년 담양에 정착

국내서 꿀초를 만드는 곳 빈씨 공방 한 곳뿐
전남도 관광품 공모전 입상 ‘공예가’ 인정받아
담양빈씨 시조…주민등록증 소유 “담양사람”


꿀초는 밀랍(蜜蠟)으로 만든 초(醋)를 말한다. 밀랍은 꿀벌이 꿀을 보관하고 알과 애벌레를 키우기 위해 벌통 안에 짓는 육각형 벌집의 주재료다. 밀랍은 자연에서 채취되는 물질이 아니다. 꿀벌의 체내에서 생산되는데 밀랍 1㎏을 생산하기 위해 꿀을 6㎏ 먹어야 한다. 빈도림씨는 이 밀랍으로 초를 만들고 ‘빈도림꿀초’라고 이름 붙였다.
“대개의 사람들은 빈도림꿀초를 양초(洋醋)라는 부르는데 아주 잘 못된 겁니다. 꿀초는 자연 그대로의 초이고, 양초는 석유에서 추출한 파라핀이므로 인체에 유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초의 준말이 양초입니다. 요즘 시중의 대부분 양초는 중국산인데 심지에 납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심지에 촛농이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런 겁니다. 그러나 우리 꿀초는 한지(韓紙)로 심지를 만듭니다.”
최근 들어 빈도림꿀초 공방이 자리잡은 대덕면 문학리 48번지도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빈도림꿀초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는 대덕면 문학리를 찾아와 취재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성씨(姓氏)가 있다. 그 중에서 빈씨(賓氏)는 희성(稀姓)이다. 그런데 빈도림(賓道林) 씨는 자기가 담양 빈씨(賓氏)의 시조(始祖)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빈도림이라는 이름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재직하고 있던 독일역사 전공 교수가 지어준 것이다.
빈씨의 고향은 독일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디르크 휜들링그(Dirk Fundling)'이다. 그는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동양학을 공부했다.
“대학에 다니던 70년대 초만 해도 한국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습니다. 6·25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동양학은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미지의 세계인 한국에 대해 끌리게 되어 동양학 중에서도 한국 중심의 공부를 했습니다. 자료가 변변치 않아 어려움이 많았지요.”


그러다가 빈씨는 1974년 대한민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게 된다. 1977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한 다음, 곧바로 1977년부터 1984년까지 독일 보훔 루어 대학교 동양학과에서 중국문학과 한국어학 박사 과정을 이수한다. 그리고 1984년 ‘한국어 의성의태어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한국어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보훔 루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효성여자대학교에서 8년 동안 독문학 교수로 재임한다. 그 뒤 2000년부터 주한독일대사관에서 일하게 된다.
빈씨가 담양에 정착하게 된 것은 2002년부터다. 빈씨에게 담양을 소개한 사람은 최문호 화가다. 최씨는 담양 대덕면 출생인데 독일에 유학을 했었고 그 때 빈씨와 교우를 했는데 두 사람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최씨의 소개로 빈씨는 1995년 현재의 거주지에 집을 지어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2002년 정착을 한다.
“처음 담양읍 시가지를 거닐었을 때 색다른 느낌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이 아주 느릿느릿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요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슬로라이프였던 겁니다. 구불구불하고 포장이 안 된 곳도 많았는데 그것도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물건은 본적이 있지만 살아 있는 대나무를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의 모습, 정겨운 시골 풍경, 대나무 등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제 마음을 끌어 담양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빈씨는 담양의 집이 완성되자 주한독일대사관 근무를 그만 두고 번역(飜譯)일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차린다. 주로 불교 관련 서적을 번역했다. 그리고 아예 담양으로 이사를 한다.
“나는 담양사람입니다. 독일에 가서 노년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담양에서 살다가 담양에 뼈를 묻어야지요. 살아가는데 불편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형님 동생들이나 친구들도 많습니다. 결혼식 하객으로도 참석하고 초상집 문상도 자주 다닙니다. 결혼식에 갈 때는 봉투도 만들고, 초상집에서는 막걸리와 삼합도 먹습니다. 가리는 음식이 없어요. 창평 국밥집에도 자주 갑니다.”
삼합(三合)까지 먹는다니 전라도, 그리고 담양사람이 다 되었다. 삼합은 묵은 김치, 삶은 돼지고기, 홍어회를 함께 먹는 전라도 특유의 음식이다. 대한민국 사람 가운데도 홍어의 독특한 맛에 코를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에게 홍어 맛의 느낌을 물었다.
“텃밭에 여러가지 채소를 심어 자급자족을 합니다. 청양고추도 잘 먹는데 솔직히 말씀 드려 홍어는 아직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 독특한 맛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홍어를 제대로 먹어야 진짜 담양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요즘 빈씨에게는 창평을 자주 찾는 일이 생겼다. 베를린 대학교 은사였던 ‘자세’ 교수가 창평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세 교수는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로 문화인류학을 강의하고 있다. 은사가 한양대학교 교수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빈씨가 찾아가 담양을 소개했다.
“4년째 원불교 관련 서적을 독일말로 번역하고 있는데 사람에게는 운명(運命)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담양사람이 된 것도 그렇고, 은사님이 제 이웃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 모두 전생의 업보(業報)인 것 같아요.”
자세 교수는 강의가 없는 날은 창평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최근에 빈도림씨의 집 옆에 부지를 매입에 집터를 닦았다. 새봄이 되면 집을 짓고 빈씨와 자세 교수는 다정한 이웃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빈씨는 한국어문학 박사보다는 꿀초(밀랍초) 공예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한봉(韓蜂)의 벌집을 주재료해서 취미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헌(文獻)을 뒤져 꿀초에 대한 지식을 쌓고, 이중솥 등 꿀초 제조에 따른 기구나 기계도 만들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빈도림꿀초’라는 브랜드가 탄생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꿀초를 만드는 곳은 빈씨의 공방 단 한 곳뿐이고, 한봉에서 나오는 모든 밀랍을 빈씨가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8년 전라남도 관광기념품 공모전에 응모해 상을 받았다. 공예가로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담양에 거주하는 다른 분야의 공예가들과 함께 ‘담양공예인협회’를 만들었다.

인터뷰를 마쳤는데 그는 자기가 당당한 담양사람이라며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였다. 그의 주민등록번호는 <530101-???????>이었다.

/ 설재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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