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시간에 봉사하겠다면 죽을 때까지 못할 겁니다”
2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전헌혈(全獻血)만 53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목표 100회 공개 약속
제가 하나 못하나 감시해 달라는 부탁의 의미
헌혈하

김신석씨는 담양우체국 집배원이다. 매일매일 우편물을 배달하는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주위의 시선들은 남다르다. 그가 단순히 우편물만을 배달하는 집배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을 배달하는 집배원’이라고 부른다. 사랑을 배달하는 집배원 김신석씨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십대 젊은 날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방황하며 부끄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한없는 사랑으로 저를 보듬어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마음을 잡고 집배원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그야말로 평범한 공무원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봉사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애초부터 누군가를 돕고, 사회에 대한 봉사같은 걸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저와 제 가족만 생각했었지요. 매스컴을 통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어서 별로 감동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봉사가 어떤 것이며 봉사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남체신청과 담양우체국 직원들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 있다. 김씨는 직장 분위기상 가입하지 않을 수도 없어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참가했다. 매주 복지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목욕도 시켜주고, 청소나 빨래같은 봉사활동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일에 대해 제 자신이 감동을 해버린 겁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정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무렵 그는 우정사업본부에서 실시한 ‘두리하나 정기적금’ 사은행사에서 으뜸상인 ‘우정상’을 받는다. 부상은 대형냉장고였다. 그는 부상으로 받은 냉장고를 복지시설 ‘빛고을공동체’에 기증한다.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냉장고가 있기 때문에 당장 필요치 않아 선뜻 기증을 했습니다. 그 작은 일이 주위로부터 그렇게 많이 칭찬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칭찬을 받고 나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물질적인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 아내도 처음에는 사은품으로 받은 냉장고를 기증한다는데 선뜻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겠다니까 자의반타의반으로 응했던 것입니다. 그러데 이제는 저와 생각이 같아졌습니다.”
김씨의 아내도 남편과 함께 동반 헌혈을 3회나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녀들이 어려 외부 활동을 맘대로 할 수 없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처녀 때부터 익혀온 미용기술로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남편과 다짐을 했다.

최근 들어 김씨는 헌혈유공자로 이름이 더 알려졌다.
“사실은 제 친구가 받아야 할 찬사를 제가 대신 받게 되어 부끄럽기도 합니다. 친구의 헌혈에 비하면 저는 너무도 미미합니다. 제게 헌혈에 관심을 갖게 해준 친구에 대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김씨가 말하는 친구 A씨는 현재 담양에서 죽제품 판매업을 하고 있다. 김씨가 첫 헌혈을 한 것은 1998년이다.
“친구는 오래 전부터 광주에 나가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헌혈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선뜻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뭔가 모르게 두렵기도 하고, 담양에는 헌혈하는 곳이 없어서 광주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에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는 공무원이라서 주말을 이용해 광주로 나가야 하는데 주말이면 이런 저런 일이 생겨 차일피일 미뤘던 겁니다. 그런데 그건 핑계일 뿐이고 진짜 봉사심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요. 자기 하고 싶은 일 다하고 여유시간을 이용해 봉사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실천하지 못할 겁니다. 제가 그런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헌혈할 기회를 잃고 만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제쳐놓고 헌혈을 일순위로 삼고 주말을 이용해 친구를 따라 광주로 나갔습니다.”
첫 헌혈을 조선대학교 헌혈의 집에서 했다. 그 뒤로 그는 이곳에서 2009년 10월 현재 53회의 헌혈을 했다.
“친구를 따라 다니며 10회의 헌혈을 하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그때까지 수십 회, 또는 100회 헌혈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끔 들었는데 10회 한다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
헌혈은 붉은 피를 헌혈하는 ‘전헌혈(全獻血)’과 ‘성분헌혈(成分獻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헌혈은 수술을 받는 환자에게 수혈하기 위한 붉은 피를 뽑는 것이고, 성분헌혈은 제약회사의 원료로 쓰기 위해 혈액 속의 특수한 성분만을 뽑는 것이다. 그리고 성분헌혈은 채취 기간에 대해 구애를 받지 않고 보름 간격으로도 뽑을 수 있지만 전헌혈을 하기 위해서는 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김신석씨는 지금까지 전헌혈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처음 2년 동안 10회를 했다는 것은 그가 헌혈 기회를 거의 거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헌혈이 53회가 되었다. 헌혈자에게는 매번 헌혈할 때마다 헌혈증서인 ‘헌혈유공장’이라는 것이 발급된다. 그리고 30회가 넘으면 은장을 받고, 50회가 넘은 금장을 받는다. 일반인들도 이 헌혈증서가 본인이 사고를 당해 수혈이 필요할 때 증서로 활용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물론 나중에 보상받기 위해 헌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씨는 이 헌혈증서를 주위 사람들에게 기증했다.
김씨는 헌혈 목표를 100회로 삼고 있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10년 정도가 걸린다.
“100회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려 약이라도 먹게 되면 헌혈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100회를 채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매사에 조심하고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지요. 그리고 제가 100회를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것은 주위 분들이 제가 그렇게 하나 못하나 감시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회가 있을때 헌혈에 대해 홍보를 좀 하겠습니다. 제가 40회 헌혈을 했을 때 지역신문에 보도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걸 보고 어머니가 찾아와 노발대발 화를 내셨습니다. 아까운 피를 왜 뽑느냐고 화를 내시며 말리셨는데 헌혈하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헌혈을 마음먹은 분들은 두려워하지도 마시고 망설이지도 마십시오. 헌혈을 하게 되면 그만큼 몸 안에서 새로운 피가 만들어지게 되므로 결코 건강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헌혈 때마다 자기 건강을 면밀하게 진단하게 되므로 안 좋은 질병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도 됩니다. 헌혈 많이 하면 건강이 좋아지고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집니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