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담양의 명품 음식 대통밥 만들어낸 한상근씨
24.담양의 명품 음식 대통밥 만들어낸 한상근씨
  • 마스터
  • 승인 2009.10.19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상 대나무와 함께 살라는 팔자인가 봅니다”

‘한상근 대통밥’ 분위기 대나무박물관 연상
식당 바닥, 벽, 천정, 갓등, 칸막이 소재는 대나무
심지어 재떨이까지… 모두 한씨가 손수 만든 것

대나무통은 한 번만 사용해야 합니다
두번째부터는 죽여·죽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맹족죽만을 사용해야 진짜 대통밥이지요

대통밥이 담양의 식당 메뉴에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처음에는 대통밥에 대한 선호도가 별로 높지 않았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현재 대통밥은 담양의 명품식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외지인들에게 입소문이 많이 나 관광차 담양을 찾는 관광객들은 대통밥 먹는 것을 관광의 필수코스로 잡을 정도가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담양에는 대통밥을 파는 식당들이 20여곳으로 늘어났다. 뿐만아니라 서울 등 대도시 여러 곳에도 담양대통밥집이 생겼다. 그런데 한상근씨는 ‘대통밥은 역시 담양에 와서 먹어야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한상근씨가 바로 담양 최초로 대통밥을 만들어 판 사람이다.

한상근씨는 원래 대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입에 신물이 날 정도로 대바구니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일이 너무도 지겨워 집을 뛰쳐나가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기도 했다.
“우리 집은 농토도 별로 없는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때부터 대바구니를 만들어 연명했는데 저 역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부모님을 도와 대바구니를 만들었습니다. 중학교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8남매의 맏이였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너무 오래 한 일이라 입에서 신물이 났습니다. 결국 대바구니 만드는 일도 지겨워 미곡상을 하는 친척집으로 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 뒤 친척집을 그만 둔 그는 서울로 올라가 가전제품인 트랜지스터 라디오 외판원 생활을 했다. 3년간 외판원 생활을 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못 본 그는 광주로 내려와 쌍촌동에 살면서 다시 대나무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직접 만든 죽제품을 리어커에 싣고 광주 골목골목을 누비고, 송정리 장터도 찾아다니며 장사를 했습니다. 리어커에 트랜지스터 녹음기를 달아 노래를 틀고 다녔는데 아주 즐거웠습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날도 노래를 듣고 다니니까 기분이 좋았지요.”
그런데 이 장사도 별 재미를 못 보고 고향 담양으로 귀향을 했다.
“담양읍 백동리 삼거리에서 미리산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노인당의 방 한 칸을 얻어 이사를 했는데 수중에는 단돈 3천원 뿐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대칼·대톱 같은 연장을 사고, 대나무는 외상으로 가져다가 죽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밤잠을 줄여가며 오로지 그 일만 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니까 목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월산면 바심재 옆 용흥사 입구 계곡으로 들어가 닭요리를 파는 장사를 했습니다.”
용흥사로 통하는 계곡에는 닭요리를 파는 식당이 여러 곳이 있다. 한여름에는 기다렸다가 먹어야 할 정도다.
“운 좋게도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서도 죽제품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대나무로 의자, 침대, 평상, 전화받침대, 텔레비전받침대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닭요리 장사가 주업이었고 취미 삼아 죽제품을 만들었던 겁니다. 그때 자투리로 대나무통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루는 그 대나무통에다 달걀찜을 해봤는데 색다른 맛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통에다 밥을 하면 어떨까 궁리를 했습니다. 나중에 아주 오랜 옛날에도 건강식으로 대통밥을 해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제가 궁리한 방식대로 대통밥을 만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대통밥은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루 50그릇을 쪄내면 20그릇도 팔리지 않았다. 남은 밥은 닭모이로 주었다. 주위에서는 모두 미쳤다고 했다. 관광객들에게 공짜로 대통밥을 나눠주며 홍보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모 방송국의 PD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피디가 별난 음식이고, 맛도 괜찮으며, 건강식으로도 좋으니까 취재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담양 한상근 대통밥’이 텔레비전 전국방송을 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시쳇말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대통밥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오고 특히 전국 각처에서 식당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대통밥 만드는 일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사진도 찍어가고 조리법을 메모도 해갔습니다. 대통밥은 대나통에 쌀, 흑미, 은행, 잣, 대추, 밤 등을 넣고 한지(韓紙)로 덮어 솥에 찝니다. 열이 가해지면서 대통 안의 얇은 막(죽여), 대나무 진액(죽력) 등이 밥에 섞이게 됩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죽여와 죽력은 사람의 몸을 이롭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통 대나무를 사용한 대통은 한 번만 사용해야 합니다. 두 번째부터는 죽여나 죽력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진짜 대통밥이라고 할 수 없지요. 저는 대나무 중에서 맹종죽만을 사용합니다. 흔히 일본대라고 하는데 마디가 짧고 나무 결이 두껍기 때문에 두 번 사용해도 됩니다. 분죽은 성질이 강해 밥을 찔 때 벌어지고, 왕대는 대나무 특유의 향이 나지 않습니다.”

대통밥이 호황을 이루고 난 뒤 한씨는 대나무밭 1만8천평을 매입해 맹종죽을 심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도 3동을 경작하고 있다. 한씨의 식당에서 쓰는 고추, 상추, 양파 등 부대 식재료는 모두 이 비닐하우스에서 조달하고 있다.
“손님들이 먼저 압니다. 질이 떨어지거나 농약을 많이 친 식재료를 쓰면 손님들이 먼저 알고 안 옵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이웃들과 나눠 먹습니다. 농사 지어 먹고 남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인심이 노적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한씨는 지금도 학교에 못 가고, 잠 못 자면서 바구니 만들었던 옛일의 기억들이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못 넘어간다고도 말한다.
“우리 사장님은 식당에 물건 팔러오는 장사들은 그냥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물건 한 가지라도 사주고, 그것도 아니면 밥이라도 먹여서 보냅니다.”
오랜 동안 한상근 대통밥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의 귀뜸이다.

한상근 대통밥은 여느 식당들과 비교해 분위기부터 다르다. 식당의 바닥, 벽, 천정, 갓등, 칸막이 등 모든 것이 대나무로 만든 것들이다. 심지어는 재떨이도 대나무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 대부분이 한씨가 손수 만든 것들이다.


“아마 저도 한 우물만 팠더라면 장인으로 지정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인들을 보면 지정받고 나면 그때부터 죽제품 만드는 일에 게을러지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도 열심히 만들고 그 기술을 전수해서 담양의 죽제품 명성을 이어나가야 할 텐데 그러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대나무로 살아갈 팔자이니까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만들 것입니다.”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대나무 인테리어다. 주위에서 모두 미쳤다고 하던 대통밥에 손을 댄 한상근씨다. 대나무 인테리어 사업도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기대된다.

/설재록 작가


  • 전남 담양군 담양읍 추성로 1379번지
  • 대표전화 : 061-381-1580
  • 기사제보 : 061-382-4321
  • 인쇄물,기념품,광고문의 : 061-381-3883
  • 팩스 : 061-383-211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재근
  • 법인명 : 담양군민신문
  • 제호 : 담양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232호
  • 등록일 : 2006-9-14
  • 발행일 : 2006-9-14
  • 발행인/편집인 : 최광원
  • 담양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담양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dy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