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동초교 배구팀 창단 코치-이듬해 감독
동초교 배구와 인연 맺은 18년간 수많은 제자 양성
강동진·최성범·전수민 등 국가대표·프로배구 주전급
각종

담양동초등학교 배구 감독 이영덕씨는 담양동초등학교 51회 졸업생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체격 조건이 좋았던 이씨는 축구 꿈나무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졸업 후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조대부중)로 진학을 했다. 이른바 축구장학생이었다. 그런데 조대부중 축구부가 없어지자 2학년 때 배구로 운동을 바꾸어 배구장학생이 되었다. 당시 이씨의 키는 175㎝로 대형 선수의 탄생을 예견했다. 대회에 나가면 선수 이영덕의 체격은 단연 돋보였고, 장신에서 뿜어 나오는 위력은 상대팀의 기를 꺾어 놓았다. 매 대회마다 그는 MVP 대접을 받았다.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고, 눈독을 들이는 고등학교도 여러 곳이었다. 그러나 그 키는 더이상 자라지 않았다. 현재의 키는 175㎝다.
“당시 어려운 시골살림에서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행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를 욕심내는 학교가 많았다. 그래서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며 배구를 했다. 조대부중을 졸업한 후 조대부고로 진학했다가 서울 인창고등학교 배구부로 옮겼다가 다시 조대공전에서 서울 남산공전으로, 그리고 졸업은 조대공전에서 했다.
조대공전을 졸업하고 나서는 군에 입대했는데 군대에서도 배구를 했다. 그가 군대 생활을 하던 당시 광주 31사단에 배구팀이 있었다. 31사단 배구팀은 전국체전 때 전라남도 대표로 참가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 목포 청호중학교에서 10년 동안 코치생활을 했다.
“좋아하는 것이 운동이었고, 또 배구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청호중 코치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차츰 들어가니까 뭔가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호중 코치생활을 청산하고 건축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배구를 떠나 2~3년 동안 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담양의 선배, 동기 등 배구를 했던 사람들이 찾아와 동초등학교 코치를 제의했습니다.”
당시 동초교 배구팀의 탄생을 위해 애를 썼던 사람들은 임종순, 김정조, 국승철, 오오근, 정금연, 서창선, 윤영선씨 등이었다고 한다.

1993년, 이영덕씨가 코치로 부임하면서 담양동초등학교 남자 배구팀이 만들어졌다. 이듬해 그는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이 해, 동초교 배구팀은 제3회 무등기 쟁탈 배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창단 1년 만의 쾌거였다. 그 후 전국소년체전 등 각종 전국대회에서 상위 입상을 하면서 동초교는 배구명문학교로 이름을 날렸다.
이씨는 감독직을 수행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선수 확보라고 말한다.
“훈련시키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선수를 찾아내는 일이 정말 어렵습니다. 운동을 시키겠다는 부모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무조건 공부시키겠다고 하는데 소질이 있는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가 부임하던 초창기 때는 해마다 스무명 가까이 선수를 확보해 대회에 A, B 두 팀이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는 엔트리 숫자도 다 못 채우고 있다. 엔트리 숫자는 12명인데 현재 동초교 선수는 그에 못 미치고 있다.
숫자를 못 채우는 것도 걱정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이른바 배구 유학(留學)을 온 아이들의 관리 문제도 어려움이 많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합숙(合宿)을 했다. 그러나 요즘은 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지역에서 온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때가 되면 밥도 해 먹인다.
이씨가 배구를 시작한 지가 50여년이 다 되었다. 그리고 담양동초등학교 배구와 인연을 맺은 지도 18년이 되었다. 18년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그 가운데는 강동진, 최성범 등 청소년 국가대표도 들어 있다. 강동진은 현재 국가대표로 대한항공 프로배구팀 주전 선수로 뛰고 있다. 전수민은 삼성화재 프로배구팀 주전 선수로 뛰었는데 어깨 부상으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강동진이는 봉산초등학교에 다녔는데 4학년때 동초교 배구팀으로 스카우트 해 왔습니다. 내가 봤을 때 장래가 촉망되는 재목이었고, 부모 역시도 나에게 모든 걸 일임하고 기대를 했는데 정작 본인이 크게 흥미를 못 느껴 갈등을 했습니다. 달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면서 가르치니까 마음을 잡고 훈련에 열심히 임하면서 잠재력을 발휘하게 되더군요. 배구에서는 특히 인성교육이 중요합니다. 배구의 관건은 조직력이므로 인화단결, 즉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량을 키우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지요. 실제로 배구선수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유순하고 신사적입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운동이니까 직접 부딪쳐 몸싸움할 일이 없어서 유순하고 신사적인 모양입니다.”
주위 사람들 역시 이씨에 대해 유순하고 신사적이라고 평하고 있다.
흔히들 축구, 야구, 농구, 배구를 인기종목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이왕 자녀에게 운동을 시키겠다는 마음을 먹은 학부모가 있으면 배구를 권하고 싶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스포츠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축구와 야구는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아주 큽니다. 모든 학교가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학교가 학부모들이 돈을 내서 훈련도 하고, 코치나 감독의 월급도 주며, 대회 경비 같은 것도 조달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고등학교 선수층이 넓다 보니까 대학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배구는 대학문이 아주 넓습니다. 배구는 선수기용에 있어서 잡음이 없습니다. 선수의 기량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으므로 감독이 어느 선수에게 특혜를 줄 수 없고 실력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배구는 환갑이 넘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배구로 대학을 나오면 무슨 일을 하든 제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구를 하게 되면 신사적으로 인성이 바뀝니다.”
이씨의 배구인생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현재 5학년 선수들이 아주 기대됩니다. 그러니까 2011년도에 전국소년체전에서 꼭 한 번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여러 대회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봤지만 소년체전에서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는 걸로 봐서는 이 아이들이 내년 6학년이 되면 반드시 큰 일을 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조용히 살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배구와 완전히 인연을 끊기야 하겠습니까?”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