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에 둘러앉은 모습 보면 오집니다.”
아이 네다섯일때 시선 부담스러워 외출 자제
이제 아이 많으면 애국자 사회적 분위기로 떳떳
7남매 데리고 광주 놀이공원으로 즐겁게 봄나들이
누나나 형

저출산(底出産)으로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애국이라고 한다. 자녀 셋을 두면 애국자라고 하는데 일곱을 둔 사람은 어떤 칭호를 받아야 할까?
대덕면 금산리 시목마을 김영미(38)·라정채(42) 부부는 생후 3개월 된 딸아이를 두고 있다. 늦둥이가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태어난 일곱 번째 아이일 뿐이다. 필자는 이 일곱 번째 아이가 막내냐고 물었다.
“굳이 막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기면 낳아야지 어떻게 합니까? 이 세상에 오겠다고 잉태한 생명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남편 라정채씨의 말이다. 아내 김영미씨는 남편의 말에 별 대꾸가 없다. 그저 수줍은 미소만 짓는다.

이들 부부는 스물세 살과 스물일곱 살에 만났다. 결혼 후 곧바로 임신이 되었고, 첫딸 선들이가 태어났다. 선들이는 올해 열다섯 살이고 창평중학교 2학년생이다. 그 밑으로 줄줄이 아들 다섯을 낳았고, 석 달 전에 딸을 낳았다. 현재 두 딸에 아들 다섯이다. 아내 김씨는 아이들의 생일생시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편 라씨는 어떨까 궁금하여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남편은 중간에 아이들의 나이를 잠시 착각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는 이렇다.
라선들(딸·15·창평중학교 2학년), 라선열(아들·14·창평중학교 1학년), 라선진(아들·12·만덕초등학교 5학년), 라선일(아들·11·만덕초등학교 4학년), 라한일(아들·6·어린이집에 다님), 라선우(아들·3), 라한들(딸·생후 3개월).
아이들의 이름은 아버지 라정채 씨가 지었다. 한글 이름이다. ‘선들선들’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아직도 ‘한들한들’ 불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평화롭고 정겨운 풍경이 상상된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일곱 남매가 함께 살고 있는 가정을 생각하면 지레 머리 무거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요즘 젊은 부부들 대개는 하나 낳아 기르고 가르치기도 힘이 든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어른들 말씀에 제 먹을 양식은 갖고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양육비가 많이 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는 거의 자가생산한 것으로 충당이 됩니다. 분유값도 만만치 않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모두 엄마 젖으로 키웠기 때문에 그런 부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어떻게 시킬까 계획해 본 적도 없습니다. 미리 양육비나 교육비에 대해 계획을 하고 자녀를 낳으려고 했더라면 하나 낳아 기르는 것도 신중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공부 잘 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점수가 높으면 우선 그때는 기분이 좋겠지요. 아이들의 학교 성적과 장래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남편 라씨의 말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다. 아내 김씨 역시도 남편과 생각이 같다.
“스물셋에 시집을 왔으니까 뭘 알았겠어요. 억지로 잉태를 막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셋 낳고 나서 넷째를 임신했을 때 남편에게 또 임신한 것 같다고 했더니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겼으면 낳아야지 어떻게 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임신이 되면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7남매가 되었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많다 보니까 좀 난처한 때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네다섯일 때는 주위 시선이 부담스럽고 멋쩍기도 해서 다 데리고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의 출산 장려책이 나오고, 아이를 많이 낳으면 애국자로 보아주는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되어 떳떳해졌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얼마 전 7남매를 데리고 광주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입양을 해서 7남매가 된 걸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모든 분들이 대단하고 훌륭한 일을 했다고 격려를 해 주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쨌든 저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해지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들 부부는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른다고 표창도 받았다. 담양노인회와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로부터 ‘다복상’을 받았다.
그런데 시목마을은 가정마다 비교적 많은 아이를 두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 부부들 중에는 많이 낳으면 둘이고, 하나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부들이 많다. 그런데 시목마을의 가정들은 평균 셋이고 넷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라씨는 아이들을 두셋 키우는 것보다 일곱을 키우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고 말한다.
“첫아이, 둘째, 셋째 때는 더러 회초리를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많아지니까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들끼리 나름의 질서같은 것이 생기고, 스스로 누나나 형들을 보고 배우니까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지 않아도 잘 합니다. 우리 전라도말로 수말스럽습니다. 먹는 것도 여럿이 함께 먹어서 그런지 잘 먹고 건강합니다. 밥상머리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정말 오집니다. 또 어린 아이들이지만 가사 조력을 해 주어 부모가 아이들 덕을 보는 때도 많습니다. 특히 가을철 감 수확을 할 때는 아이들 일손 덕을 톡톡히 봅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아이들이 둘러 앉아 감 선별을 해 줍니다. 어떻게 보면 아동학대로 비쳐질 수 있지만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좋아해서 합니다.”
이들 부부는 부농(富農)에 해당한다. 한우 80두를 사육하고, 단감나무 밭이 3000평, 벼농사가 2000평이 된다. 부부가 7남매를 키우면서 꾸려나가기에는 조금은 벅차다고 할 수 있는 일감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 부부가 별 어려움 없이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은 아이돌보미 역할을 꼼꼼히 해 주는 시아버지의 도움도 크다.
남편 라씨는 모든 것이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내 김씨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없지는 않다고 말한다.
“남편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아이 다섯 낳을 때까지 안아 주는 것을 못 봤습니다. 지난번에 선우가 피부 알레르기로 병원엘 갔는데 데려다만 주고 이장회의가 있다면서 그냥 가버렸어요. 젖먹이 한들이까지 있는데 혼자 하려니 힘이 들었어요. 병원에 온 낯선 분들이 아이를 안아 주어서 선우 진료를 받았지요.”
고령화된 농촌에서 젊은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다망(多忙)한가는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아내의 불만 역시도 진정으로 토로하는 불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씨의 친정어머니는 7남매를 낳은 딸에게 고생했다고 격려했다. 김씨는 출산의 고통을 망각하기 때문에 아이를 여럿 낳게 되었다고 말한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