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3호 박순애씨
53.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3호 박순애씨
  • 마스터
  • 승인 2010.09.0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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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면 떳떳하니까 자신감이 생깁니다”

송강 처가인 담양문화유씨 6대종손 맏며느리
신혼초 서울생활 접고 창평의 시가에 정착
벼·딸기농사 하다가 1994년 한과만들기 시작
가내부업 가정경제 보탬,

1997년 정부로부터 전통식품으로 지정받은 (주)담양한과 명진식품은 최근에 ‘아루화’라는 브랜드로 탈바꿈을 했다. 아루화는 ‘꽃처럼 아름다운 우리 한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임금께 바치는 궁중요리를 만들 듯,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들 듯’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과를 만들어 온 대한민국 식품명인 박순애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난 박순애씨는 담양 창평 태생의 총각과 결혼을 했다. 신혼초에는 서울에서 살았다. 그런데 곧바로 서울생활을 접고 창평의 시가(媤家)로 내려오게 되었다. 남편이 11남매의 맏이였기 때문이었다. 박씨의 시가는 송강 정철의 처가인 담양 문화유(柳)이고, 남편은 6대 종손이었다.

“종부(宗婦)로서 문중을 지켜야 한다지만 내려오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죽기보다 더 싫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겁니다. 시골로 내려가느니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혼이 쉬운 일입니까? 그리고 우리 나이는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대들 아닙니까? 하는 수 없이 창평으로 내려왔습니다.”

시가에는 시조부모와 홀로 된 시어머니, 그리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시동생들이 있었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살아가는 것도 힘이 들었고, 농촌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쌀농사가 주업이었기 때문에 소득도 변변치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논산의 친정 부모가 딸기 묘를 보내주었다.

“쌀농사로는 힘드니까 특용작물을 해보라며 딸기 묘를 보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소득이 나아질까 싶어 딸기농사를 했습니다. 첫해에 400평을 했습니다. 담양의 딸기는 우리 집이 원조입니다. 월산이나 봉산의 딸기들도 우리 집에서 묘를 가져다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논산의 딸기가 저와 함께 담양으로 시집을 온 겁니다. 1천800평까지 지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일을 잘 못하다보니 인건비 같은 것이 많이 들어 별로 재미를 못 봤습니다.”

그러자 박씨는 딸기농사를 하면서 가내 부업으로 한과를 만들었다. 시조모(媤祖母)에게서 한과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한과 만들기 가내 부업은 1994년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문을 받아 한 되, 두 되 아주 적은 양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입소문이 나고, 주문량도 늘었다.

“한과 판매가 가정경제에 적잖은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왕 시작한 일 좀 더 범위를 넓혀 보자는 생각이 들어 광주에 살고 있는 광주무형문화재 17호 최영자씨를 찾아가 폐백(幣帛) 음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최영자 선생님으로부터 30년 넘게 사사를 받았습니다.”

최영자씨는 고인이 된 이연채의 제자이다. 이연채씨는 ‘남도음식의례장(南道飮食儀禮匠)’이며 ‘남도음식문화재’이다. 굳이 계보를 따져본다면 최영자씨는 남도음식문화재 이연채씨의 계승자이고, 박순애씨는 전수자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주)담양한과 명진식품은 농림부 전통식품 개발 지원업체로 선정되어 창평면 삼천리에 공장을 설립했다. 첫해에는 주문생산으로 배달만 했다. 그리고 이듬해 1998년에 광주의 송원마트와 빅마트 등 대형마트에 납품을 하면서 본격적인 유통업을 시작했다. 그 후 6~7년동안 사업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현대와 롯데 등 유명 백화점에도 진출했다. 이 동안 담양한과는 우편판매 전국 1위를 달렸다. 2002년, 담양한과는 ISO2001 인증을 획득했고, 이어서 2008년, 한국전통식품품질인증을 획득했다. 그리고 2008년, 박씨는 대한민국 식품 명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박씨가 명인 인증을 받은 것은 콩으로 만든 ‘엿강정’ 분야이다. 전통식품 명인으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몇가지의 조건이 따른다. 먼저 그 분야에 20년 이상 종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통식품이 1800년도 이전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야 한다. 다음으로 그 사람만의 독특한 비법이 있어야 한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마른 고추를 넣어 식혜를 넣어 만들었습니다. 그 알싸한 매운 맛이 있는 그 식혜는 식품이면서도 감기를 치료하는 약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콩은 덕장에서 북어를 말리는 방법을 응용했습니다. 덕장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마른 북어는 아주 부드러운 식감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콩을 볶기 전에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랬더니 씹는 느낌이 부드럽고, 고소한 맛도 더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른 고추를 넣은 식혜를 고아 만든 엿이기 때문에 약간 강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나만의 비법을 높게 평가해 준 것 같습니다.”

담양한과는 삼천리의 제1공장에 이어, 2004년에는 창평리에 제2공장을 지었다. 이 공장에서는 시제(時祭)나 제사(祭祀)의 상차림 음식도 만들어내고 있다. 만들어내는 제품들이 다양해졌고 상근 직원들도 30여명이나 된다. 설이나 추석 명절 같은 때는 주문량이 폭주해 광주 등지에서 일용직 인부들을 불러와야 한다. 이 무렵 하루 평균 일용직 인부는 100여명이 넘는다. 이 많은 사람들이 밤 세워 일을 해야 주문량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2009년의 매출액은 70억여원이나 된다.

“매일 아침 직원 조회를 갖습니다. 직원 조회 때마다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정직입니다. 정직해야 자신이 하는 일에 떳떳해집니다. 그리고 떳떳해야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사업은 자연이 잘 되게 되는 것입니다.”

박씨는 정직한 원료를 특히 강조한다.

“수입 원료를 써가지고는 한과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담양한과의 원료는 담양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외지에서 들여오지만 담양에서 나는 것은 창평농협을 통해 100% 매입하고 있습니다. 한과에 들어가는 쌀은 대덕면 시목리 농민들과 유기농쌀 계약 재배를 통해 확보하고 있습니다.”

박씨의 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박씨는 요즘 새로운 일을 추진하고 있다. 담양한과를 관광과 연계하는 것이다. 박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과만들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삼천리 제1공장 뒤편에 ‘한과 체험 학습장’ 2동을 지었다. 건물의 형태는 전통한옥이다. 이 한옥에서는 체험뿐만 아니라 민박도 할 수 있다. ‘HACCP’ 공장도 금년 말이면 준공을 보게 된다. HACCP은 ‘유해요소 중점 관리기준 적용’을 뜻한다. HACCP 공장과 한과 체험 학습장, 그리고 슬로시티 창평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재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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