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무정면 방울토마토 농사꾼 최병언씨
55. 무정면 방울토마토 농사꾼 최병언씨
  • 마스터
  • 승인 2010.10.0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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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야 공생(共生)할 수 있습니다”

04년 방울토마토연합사업단 태동 산파역
정책사업도 풍년도 ‘다같이’ 신념으로 농사

무정은 일교차 크고 일조량 넉넉한 中山間 지역
타 지역 방울토마토보다 단

“대개의 사람들은 우리 무정면을 관내 타 면에 비해 가난한 면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선 경작지가 넓지 않은 중산간(中山間) 지역이고, 특별한 산물도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만 해도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은 후계 농민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후계 농민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농업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20여년째 방울토마토 농사를 지어 오고 있는 최병언씨의 말이다.

2004년, ‘담양군방울토마토연합사업단(단장 엄정균)’이 발족되었다. 이 사업단에는 수북면 7농가, 월산면 2농가, 금성면 1농가, 무정면 58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1991년, ‘무정방울토마토영농조합법인’이 발족되던 당시는 7농가였는데 68농가로 늘었다. 그리고 재배면적도 8만평으로 대폭 늘어났다. 담양군방울토마토연합사업단의 모태가 된 무정방울토마토영농조합법인은 1994년에 ‘무정춘하추동연합회’로 변화를 모색했고, 그 뒤 1996년에 ‘무정농협산지유통전문조직’으로 다시 바뀌었다.


이렇게 조직이 바뀌는 동안 최씨는 꾸준히 동참했고, 중추적인 역할도 했다. 주요 직책을 맡을 때는 철저히 금주(禁酒)를 실천하기도 했다. 농자재, 유통, 행정업무 처리 등으로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최씨는 6년째 무정면 동강리 1구 이장을 맡고 있다.

현재 담양군방울토마토연합사업단에서 출하하고 있는 방울토마토(무정방울토마토)는 가락시장 등 수도권 도매시장, 경기도 고양, 성남, 수원 등 농협물류센터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그 첫번째 까닭이 중도매인들이 원하는 물량을 언제든지 공급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정방울토마토는 수도권 도매시장 경매인들에게 가격을 예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도매시장 경매인들이 가격을 좌지우지하지만 무정방울토마토만큼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가 예시하는 경매가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사업단에서 꾸준한 물량을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무정방울토마토는 친환경농자재와 무농약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무농약에 대해서 반신반의를 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간에 신뢰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무농약 농산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 공인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한다. 생산된 농산물은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샘플조사를 받는다. 출하할 때는 소비자단체들의 조사도 따른다. 비료, 천적(天敵) 등 농자재도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한 예로 방울토마토에는 온실가루나 잎굴파리 같은 병충해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 농약 대신에 천적을 이용한다. 뿐만 아니라 수시로 소비자를 초청해 재배상황을 직접 보게 한다. 최씨는 무정방울토마토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보다 맛이 좋다는 자랑도 덧붙인다.


“무정면은 중산간(中山間) 지역이면서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도 넉넉해 우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방울토마토는 아주 맛이 좋습니다. 첫째 경도(단단하기)가 좋고, 경도가 좋기 때문에 식감(씹는 맛)도 좋습니다. 그리고 열매의 맛은 처음에는 달았다가 뒤끝에서는 신 맛이 나야 하는데 우리 무정방울토마토는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정방울토마토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여러차례 고비도 있었다. 1994년에 발족한 무정방울토마토영농조합법인 시절에는 개별판매를 했다. 개별판매를 했기 때문에 시장교섭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어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거기에다 가격이 폭락해 5㎏ 한 상자에 500원을 받기도 했다.


“이 때, 같이 가야 같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정관서의 지원사업, 즉 정책사업도 특정인이 독식해서는 안 되고, 풍년이 들어도 같이 들어야 하고, 젊은층이 나이 든 사람보다 더 많이 경작해야 공생(共生)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사는 결코 퇴조하는 산업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식정보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최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스물네살부터 고향에서 벼농사와 축산을 했다. 농민회에 참여하여 대정부 투쟁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서른살이 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우리 농민회의 주장과 정부의 정책과는 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로간에 결론없는 주장만 되풀이하면서 평행선을 달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 소득을 올리는 것도 또 하나의 농민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던 사람이 거리를 두니까 농민회에서는 변절자로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거리를 두었지만 농민회의 하는 일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농민회의 시위 때는 열심히 동참합니다.”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세계경제질서에 대해서도 최씨는 자기의 생각을 갖고 있다.
“90년대초 우루과이협정이 발효되고 WTO(세계무역기구)의 관세자유화때 우리 농민들이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농민들은 그런 문제를 잘 대처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FTA(자유무역협정)가 시작되니까 모두들 지레 겁을 먹고 있습니다. 농민이 몰락할 거라고 걱정을 하는데 저는 이 문제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자가 조직화 되고, 작목을 전환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유통을 체계화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씨는 농업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30~40대는 과감히 농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대이고, 60~70대 이후는 농업에서 은퇴해도 되는 세대이지만 50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 때문에 농업에서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최씨의 생각이다. 하면 된다는 것이 최씨의 신념이다. 그런 신념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최씨는 2009년에 2천평(비닐하우스 20동)에 방울토마토 농사를 지어 1억여원의 소득을 올렸다.

농사로 연간 소득 1억여원을 올린다는 것은 적지 않은 소득이다. 명절때 귀성한 젊은 후배들 중에는 최씨에게 귀향해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다.
“도시 근로자로 생활하는 후배들의 연간소득이 평균 3천만원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에 비하면 저는 고소득이죠. 그래서 귀향하여 농사를 짓고 싶은 생각이 드나 봅니다. 그런 후배들에게 돈 벌겠다고 귀향해서는 안된다고 충고를 합니다.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으로 와서 하다 보면 자연히 잘 살게 된다고 말을 해 줍니다.”

/설재록 작가, 사진-설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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