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담양 ‘엮걸이’ 어물장사 최정식씨
56. 담양 ‘엮걸이’ 어물장사 최정식씨
  • 마스터
  • 승인 2010.10.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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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엮걸이는 영광 굴비와 다릅니다”

같은 생조기로 영광에서 만들어지면 ‘굴비’
다른 내륙지역 ‘간조기’, 담양에선 ‘엮걸이’

소금 절인 생조기 4~5시간 그늘에 말리면 엮걸이
20일 정도 덕장에서 말린 영광굴비…가격 비싸

재래시장은 지역 문화이자 지역경제 원동력
재래시장은 반드시 살려내야 합니다

담양장 규모 줄어들어도 엮걸이 장사 늘어나
담양 먹을거리, 명물로 거듭나고 있다는 반증

서민들의 식탁에 주로 오르는 어물(魚物) 반찬은 조기, 고등어, 갈치 등이다. 그 중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어물은 생조기를 소금에 절여 적당히 말린 간조기일 것이다. 고등어나 갈치는 체질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조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고등어나 갈치는 제사상에 오르지 못하지만 조기는 제사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어물이기도 하다.
조기가 한창 잡히는 3~4월, 때맞추어 나오는 생고사리를 곁들여 끓여내는 생조기탕의 상큼한 맛이야말로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는 없다. 조기는 10월 초부터 잡히기 시작해 이듬해 4월에 끝난다. 나머지 시기에는 소금에 절인 후 말린 간조기를 먹을 수 밖에 없다.
예전 호남지역에서 조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은 영광 칠산 앞바다였다. 그런데 지역마다 간조기를 부르는 명칭이 제각각이다. 같은 바다에서 잡힌 생조기를 소금간을 한 다음 말렸어도 영광에서 만들어지면 굴비라고 했고, 다른 내륙지역에서는 간조기라고 했다. 그런데 담양에서만큼은 ‘엮걸이’라고 했다. 엮걸이라는 명칭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어원(語源)은 알 수 없다. ‘엮어서 걸어 놓고 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왔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뿐이다.

최정식씨가 엮걸이를 만들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30년이 넘었다. 최씨는 그 동안 순창, 장성, 곡성, 옥과, 구례 등 장날을 찾아다니며 엮걸이 장사를 했다. 최씨는 젊은 시절 청과물 장사를 했다. 그런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의 권유로 엮걸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젓갈 등 어물(魚物) 장사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엮걸이는 소금맛이 좌우를 합니다. 천일염은 3년 정도 묵힌 것을 씁니다. 3년 정도 묵히면 바닷물(간수)이 빠지면서 달보롬한(달착지근한) 단맛이 납니다. 그리고 소금의 양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집니다. 소금과 소금의 양이 바로 노하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엮걸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생조기를 7~8시간 소금에 절인 후 적당히 씻어낸다. 그리고 4~5시간 통풍이 잘 되는 그늘진 곳에서 말리면 된다. 말리는 과정이 영광 굴비와는 다르다. 영광 굴비는 덕장에서 20일 정도 말리는데 담양 엮걸이는 그늘진 곳에서 4~5시간만 말린다.
“여러 날 덕장에서 말리게 되면 직사광선에 오랫동안 노출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기의 육질이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담양 엮걸이는 그늘진 곳에서 짧은 시간에 말리기 때문에 조기의 독특한 맛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맛의 차이가 나지 않나 싶습니다. 맛 말고도 가격면에서도 담양 엮걸이는 영광 굴비에 비해 경쟁력이 있습니다. 영광 굴비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납품을 하기 때문에 대량 생산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료부터 대량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원가상승의 요인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소비자가격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도의에 저촉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값도 거의 절반밖에 안 되면서 맛이 좋은 담양 엮걸이를 알게 되면 백화점에서 파는 굴비 안 먹을 것입니다.”
최씨의 엮걸이는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등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고 있다. 특별한 홍보를 한 적은 없다.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엮걸이 어물장사 최씨의 연간매출은 얼마정도나 될까? 최씨는 영업비밀이므로 밝힐 수는 없으나 밥을 먹고 살 만큼은 되고, 이제는 사회에 대한 봉사에도 눈길을 돌릴 정도는 되었다고 말한다.
최씨는 소리없이 사회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20년째 법무부 범죄예방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법무부 범죄예방 갱생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던 만성리 김성수씨(작고)의 권유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새담양라이온스 회장도 2년간 맡았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집이 곤란해 학교에도 많이 다니지 못했고, 젊은 시절에는 방황하며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김성수씨가 이제 밥 먹고 살 만큼 됐으니까 지역에 봉사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범죄예방위원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번영회 간사도 오래 했습니다. 번영회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꼈습니다.”
담양읍 관어공원의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의 기념비를 세울 때 최씨는 번영회의 중책을 맡아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송진우 선생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 일을 했다는 보람보다도 그 일로 해서 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더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 일과 관련해서 내 체면이 섰던 일이 있습니다.”
최씨의 딸은 경상도로 시집을 갔다. 시가가 교육자 집안이었다. 이른바 식자층(識者) 집안이었다. 사돈끼리 자리를 같이 했는데, 최씨가 담양에서 왔다니까 그 중 한 사람이 고하 송진우와 의병장 녹천(鹿川) 고광순(高光洵)에 대해 물었다.
“내가 만약 번영회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걸 어떻게 답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일로 해서 지역을 아는 일은 지역을 사랑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담양특유의 먹을거리 ‘엮걸이’ 장사를 30년 넘게 해 오고 있는 어물장사 최정식씨는 6년째 담양시장 상인회 회장을 맡고 있다.
“시장이라고는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 즉 재래시장밖에 없던 시절, 장날이면 장터는 이른 새벽부터 해질 무렵 파장이 될 때까지 사람으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대형마트가 등장하고, 시골 인구가 줄어드는 바람에 모든 지역의 재래시장 규모가 많이 작아졌습니다. 그 시절의 장날은 물건을 팔고 사는 장소이기 이전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시집 장가를 가서 떨어져 사는 아들딸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사돈도 만났습니다. 만나면 비록 장터국수 한 그릇이지만 서로 나누면서 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대형마트는 대형마트대로 역할이 있고, 재래시장은 재래시장대로 역할이 있습니다. 재래시장을 없어져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재래시장은 그냥 물건을 사고파는 그런 마당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이며, 비록 규모는 작지만 지역경제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재래시장은 반드시 살려내야 합니다.”

최 씨가 엮걸이 장사를 시작하던 때, 동업 상인은 두세명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홉명으로 늘어났다. 담양장의 규모가 날로 왜소해지고 있는데 엮걸이 장사의 수는 많이 늘었다.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엮걸이가 담양 특유의 먹을거리, 담양의 명물로 거듭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설재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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