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유기농 포도 농사꾼 박일주씨
62. 유기농 포도 농사꾼 박일주씨
  • 마스터
  • 승인 2010.12.1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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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기 위해 친환경농업을 합니다”

1998년, 쉰다섯 살에 늦깍이 포도 농사 시작
처음엔 일반 농가처럼 농약·화학비료 사용하다가
2004년, 한-칠레 FTA가 체결되자 유기농 다짐
저농약, 무농약을 거쳐

고서면 분향리 용대마을에 사는 포도 농사꾼 박일주씨는 쉰다섯 살에 포도농사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에는 건축일을 10년 동안 했다. 정미소도 10년간 운영했고, 젖소도 10년 가까이 길렀다. 그러다가 1998년 쉰다섯살에 포도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일반 포도농가처럼 농약도 사용하고, 퇴비 대신 화학비료를 사용하여 포도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2004년, 한-칠레 FTA가 체결되던 날 유기농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2004년, 한-칠레 FTA가 체결되었습니다. 체결이 되던 날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 기자가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을 이겨나갈 거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칠레를 이기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한 말이 신문에 나갔으니 이제는 국민과의 약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기농을 계속하고 하고 있습니다.”


박씨의 포도밭 앞에는 ‘아침이슬 포도원’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박씨는 아침이슬처럼 영롱하고 깨끗한 포도를 생산하겠다는 다짐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

박씨는 저농약(2004년), 무농약(2005년)을 거쳐 2008년에 유기농 인정을 받았다.
“유기농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저농약 때만 해도 농산물 공판장에서 거래가 되었지만, 무농약을 하면서는 판로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공판장에 출하를 했는데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농약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들은 드물었고, 이른바 친환경농산물을 취급하는 판매업체들은 헐값에 가져가려고 했다. 4년 동안은 적자에 허덕였다. 공판장 출하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박씨는 길가에 판매장을 만들고 무농약 포도를 홍보하며 직거래를 시작했다.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공판장 출하보다 판매 기간이 길어지고, 남는 양이 많았다. 박씨는 담양군 기술센터와 의논한 끝에 생즙가공을 하기로 했다. 그런 다음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공장을 찾아가 견학을 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시설을 한 연후에 2005년에 가동을 시작했다. 이어서 2006년에 전남대학교 친환경 과수반에 입학하여 친환경 과수재배와 가공에 대한 공부를 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그때 실감했습니다.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점차로 입소문이 나고, 우리 아침이슬포도원의 생즙을 찾는 소비자들도 날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생즙은 전량 주문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생즙 3톤을 생산했습니다. 생즙 주문량은 그보다 훨씬 많았지만 과일로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생즙을 짜고 나면 35% 정도의 찌꺼기가 나온다. 박씨는 이 찌꺼기를 이용해 와인을 만들 생각을 했다.
“대개의 사람들은 와인용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야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무농약 포도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와인 전문가인 김월수 교수님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곧바로 생즙 찌꺼기 20%와 포도 80%를 섞어 발효를 했는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와인을 발효시킨 다음 나오는 마지막 찌꺼기는 유기질비료가 되어 포도밭에 뿌려집니다. 그야말로 친환경농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씨는 2008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장·핵과류 생산가공반에 입학하여 와인 제조 공부를 했다. 2007년에 와인이 만들어졌다. 여러 사람들에게 시음하게 했는데 한결같이 반응이 좋았다.


“국산 와인 중에도 이런 맛을 내는 와인이 있었느냐고 극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기농 포도를 사러 온 어느 독일사람은 한국에서도 이런 와인이 생산되고 있었느냐고 하면서 몇 가지 조언도 해 주었습니다. 용기를 얻어 숙성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박 씨의 집 한쪽에는 지하 20평, 지상 10평 규모의 와인공장이 있다. 지상은 발효실이고 지하는 숙성실이다. 현재 숙성되고 있는 와인은 2011년부터 시판에 들어간다.


“우리 농산물도 1차산업에서 끝날것이 아니라, 2차, 3차 복합적인 영농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유기농도 공인기관의 인증을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인증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을 위해 친환경농업 하지 않고, 나를 위해 했습니다. 우리 아침이슬포도원의 포도가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데는 4~5년이 걸렸습니다.”


2010년 말 현재, 전라남도에서 유기농 포도를 생산하는 농가는 고서면의 박일주씨를 비롯해 세 농가 뿐이다. 이 가운데서 박씨가 가장 선도적인 농민으로 꼽히고 있다. 포도는 8월초부터 생산되는데 아침이슬포도원에는 6월부터 전화주문이 시작된다.

박씨는 완벽한 유기질비료(퇴비)를 확보하기 위해 소 15마리를 기르고 있다. 소의 주 먹이인 볏짚도 무농약단지에서 나오는 볏짚만을 쓰고 있다.


“화학비료는 인스턴트식품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지력이 좋아지고, 지력이 좋으면 병도 없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유기농을 한다면서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티가 나지않게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검사 기계로도 판별이 안 됩니다. 그러나 중환자들에게 먹여 보면 금방 탄로가 납니다. 우리 아침이슬포도는 중환자가 있는 가정에서 많이 가져갑니다. 유기농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소득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선뜻 시작을 못합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유기농만이 농민이 살 수 있는 길입니다.”


고서면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농가는 100여호 이다. 이 가운데서 유기농을 하는 사람은 박씨 한사람 뿐이다. 박씨는 최근에 ‘고서자연포도연구회’를 조직했다. 박씨를 비롯해 10농가가 참여했는데 이들 농가는 2011년부터 무농약 농업을 하고 3년 뒤부터는 유기농으로 전환하게 된다.

인터뷰 도중에 박씨는 여담으로 좋은 포도 고르는 법을 가르쳐 준다. 포도송이는 달걀 모양보다 탁구공 모양이 좋다. 포도 한송이에 알이 200개 정도가 맺히는데 알솎기를 해서 80알 정도로 줄여야 한다. 알솎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달걀 모양으로 1000g 가까이 되는데, 알솎기를 하면 탁구공 모양으로 400g 정도가 된다. 탁구공 모양의 400g 포도송이는 듬성듬성해 보기에는 안좋지만 알맹이 하나하나가 햇빛을 골고루 받아 당도도 훨씬 높다.


유기농 포도 농사꾼 박일주씨의 논리는 아주 간명하다.
“내가 살기 위해 친환경농업 해야 합니다. 돈 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살기 위해 친환경농업 하면 자연스럽게 돈은 벌립니다. 후손 위해 좋은 땅 물려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 땅을 살리면 자연스럽게 후손에게 좋은 땅 물려주게 됩니다.”

/설재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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