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정희 변호사-기쁨을 가지고 물러가라
(기고) 이정희 변호사-기쁨을 가지고 물러가라
  • 마스터
  • 승인 2011.03.0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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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이 정희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장기 독재자가 축출되었다. 리비아는 내전 상태다. 모두 물러갈 때를 모른 탓이다. 박수칠 때 떠나면 좋을 것을. 국내에서는 저 유명한 소망교회 목사들이 주도권을 다투다 폭력사태까지 야기되었다. 며칠 전에는 길상사의 주지가 법정스님 1주기를 앞두고 돌연 사퇴하면서 많은 억측이 뒤따랐다.

인간은 어느 시대나, 어떠한 신분을 가진 자나, 부질없는 욕망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죽음은 무엇인가. 후배 법조인이 말했다. “형은 무언가에 몰입하는 성격이니까 신학대학에 가는 것도 좋겠다”고.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그것도 주위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최근 담낭절제수술을 받았다.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말기라는 보도가 나오고 소설가 박완서씨가 담낭암으로 별세한 터이다. 처음 담낭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아내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술을 그렇게 마시더니 드디어 왔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의사의 답변은 “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팔자소관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었다. 19층 병실에 입원하여 신촌의 밤거리를 내려다보면서 온갖 상념이 떠올랐다. 하느님께서 경고를 주신 것인가.

입원할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瞑想錄)을 가지고 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갔는데, 그날 밤부터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오현제의 마지막인 철인(哲人)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내면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기록으로 남겼다. 에드워드 기번은 그의 치세를 ‘백성의 행복만을 통치의 목적으로 삼았던 역사상 유일한 기간’이라고 평했다. 그가 쓴 명상록은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을 빌리면, ‘고대인의 윤리를 드러낸 최상의 발로’이며 ‘고귀한 영혼의 진지한 외침’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인류는 아직도 ‘축의 시대’(기원전 900-200년)의 통찰을 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기원 2세기의 명상록이 지금도 불후의 명저인 이유일까.

아쉽게도 그의 아내 파우스티나는 불륜행각으로 동시대인의 비난을 받았고, 그의 아들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폭군으로 나오는 콤모두스로, 그때부터 로마제국의 쇠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종래의 역사관이다. 하지만 그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그토록 성실하고 부드럽고 검소한 아내를 내려주신 신에게 감사한다.”

무한한 물상(物象) 가운데 네가 향수(享受)한 부분이 어떻게 작고, 무한한 시간 가운데 네게 허여(許與)된 시간이 어떻게 짧고, 운명 앞에 네 존재가 어떻게 미소(微小)한 것인가를 생각하라.

너를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부정한 판관(判官)이나 폭군이 아니요, 너를 여기 데려온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그를 고용한 감독이 명령하는 대로 무대를 나가듯이. 아직 5막을 다 끝내지 못하였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3막으로 극 전체가 다 끝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작자(作者)의 상관할 일이요,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기쁨을 가지고 물러가라. 너를 물러가게 하는 것도 혹은 선의에서 나오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얼마 전 서울의 모 정수기 업체가 신문 전면에 광고를 내면서 제품소개 대신 ‘페이터의 산문’을 그대로 실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월터 페이터가 명상록을 발췌하여 가미한 글이다. 결과는 성공했던 모양이다. 어느 의사는 아들에게 하루 5번씩 읽도록 명령했다는 것이고, 한 교수로부터는 학습교재로 사용하겠다고 격려 전화가 왔다는 것이니.

사람은 언젠가 떨어지는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욕망을 좇다보면 단순한 자연의 이법(理法)을 잊기 쉽다. 그나마 잠시 병상(病床)에서라도 명상록을 펼쳐, 철인 황제의 ‘고귀한 영혼의 외침’을 듣고, ‘페이터의 산문’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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