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한이직 기념 도서관’ 관장 한신원씨
70. ‘한이직 기념 도서관’ 관장 한신원씨
  • 마스터
  • 승인 2011.03.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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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면서 살아가면 행복해집니다”

담양 수북면 대방리 병풍산 자락에 터 잡아
2002년, 선친 이름을 딴 도서관 건립 꿈 실현
3층 공간에 장서 6만권, 영화음반 3천편 등 빼곡

조손·한부모 자녀 대상 ‘

수북면 대방리 성암야영장으로 오르는 길목에 ‘한이직 기념도서관’이라는 현판이 붙은 3층 건물이 있다. 이 도서관에 실명이 드러나 있는 ‘한이직’씨는 1907년 평남 공덕면 간리에서 태어났는데 평양숭실 영문과를 졸업했다. 재학중에는 춘원 이광수의 추천을 받아 주요한, 모윤숙 등과 함께 시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이직씨는 숭실을 졸업한 후 목포여중고, 송정여중고, 담양중고등학교 등에서 재직했는데 1972년 별세했다. 한이직씨를 기념하는 이 도서관의 관장은 한신원씨인데 한씨는 한이직씨의 둘째 아들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는 120살을 살았는데 40살을 기점으로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40살까지는 궁중에서 격식있는 교육을 받고 영화를 누리며 살았고, 그 후 40년은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0년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키는 이른바 ‘출애굽’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저는 감히 모세의 삶을 흉내낼 수는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늘 그 분의 삶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때부터 나중에 도서관을 만들고 농장에서 일하며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살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한씨는 40살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 40살까지 능력있는 회사원으로, 걸스카웃 지도자로, 등산 안내자로 열심히 살았다. 등산 안내자로 활동할 때는 1년에 100일 이상 산에서 자기도 했다. 사표를 내자 회사에서는 유능한 사원을 놓치지 않으려고 일년동안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지만 한씨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 둔 한씨는 1992년에 ‘동그라미 책마을’이라는 서점을 열었다. 별도로 ‘동그라미 책마을’이라는 도서관도 운영했다. 이 ‘동그라미 책마을’ 서점과 도서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아동전문 서점이자 도서관이었다.


그러나 한씨의 이상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도서관에서는 무료로 책을 대여했는데 아이들이 과외공부에 시간을 빼앗겨 이용을 하지 않아 1년만에 문을 닫았다. 서점 역시 6~7년 후 문을 닫았다.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책을 멀리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그라미 책마을을 정리한 1998년에 전남대학교 부근으로 자리를 옮겨 문화공간 ‘선한 이웃’이라는 서점을 열었습니다. 이곳을 찾은 대학생들은 클래식 음악도 감상하고 자유롭게 토론도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생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강의를 하는 교수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접어들면서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급격히 변하면서 문화공간 ‘선한 이웃’을 찾는 대학생들의 발길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한씨는 ‘한이직 기념 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화순, 장성, 곡성, 담양 등 광주 인근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담양 수북면 대방리 병풍산 자락에 터를 잡고 그 꿈을 실현하기로 했다.
“현재 도서관이 자리잡은 곳은 호수, 실개천, 오솔길, 그리고 작은 새가 깃을 접는 곳입니다.

담양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오염되지 않은 곳입니다. 담양에 터를 잡게 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담양에서 보냈던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간직하고 살아왔던 겁니다.”


한씨는 초등학교 2~3학년 때 담양동초등학교에 다녔다. 동초등학교 51회 졸업생이 한씨와 동기생들이다. 당시, 아버지는 담양농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한씨는 지금도 담양농고 키 큰 포플러나무 울타리를 기억하고 있다. 관방천의 푸른 그늘, 물가에 하얀 자갈들이 깔려 있는 백진강에서 멱 감던 일, 숲아래 물가의 금모래와 바닥까지 훤히 드러나 보이는 물속에서 떼지어 몰려다니던 피리(민물고기)도 기억하고 있다.

2002년, ‘한이직 기념 도서관’ 3층 건물이 완공되었다. 한씨는 이 건물의 외양과 내부 구조를 직접 설계했다. 3층의 공간에는 서고, 세미나실, 공연장, 영화음반실, 토론실, 갤러리 등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그 공간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료들은 아주 다양하고 수량은 엄청나다. 장서는 6만권인데 대학의 도서관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 서적들도 많다. 영화음반은 3천편이 넘는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서가를 직접 만들고 책을 옮기는 일도 거의 혼자서 했는데 책을 옮기는데만 1년반 넘게 걸렸다.

도서관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한이직 기념 도서관’ 이라는 이름 외에 ‘캠프 한’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명명하고 병풍산 독서교실, 오뚝이들의 독서교실을 열었다. 병풍산 독서교실의 대상은 조손가정의 아이들이었고, 오뚝이들의 독서교실의 대상은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캠프 한’이 시작되자 주위의 지인들이 운영을 걱정했다. 경비도 만만하지 않게 들텐데 그걸 어떻게 마련하느냐며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받을 궁리를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캠프를 시작하면서 지원은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지원을 받게 되면 이 예산을 집행하고 결산하는데 필요한 인력을 고용해야 하고 직간접적인 간섭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도 획일화 될 수 밖에 없고 내용도 제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캠프 한’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캠프 외에도 사회적 사업도 병행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행복씨앗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인근의 홀로 사는 노인들과 함께 매주 한 번 텃밭 가꾸기를 해오고 있다.

여기에서 수확되는 농산물은 참여한 사람들이 나누어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사회적 사업은 ‘오뚝이 교육농장’이다. 이 오뚝이 교육농장에서는 한부모나 조부모에게서 자라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정서적 도움을 위해 독서교실과 함께 병행하고 있는데, 자연을 통한 인성교육이 목적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나누어 갖는다. 이렇듯 자연과 연계한 교육활동의 결과 캠프 한은 2007년, 전라남도에서 19번째로 팜스테이 마을로 지정받게 되었다. 또 2009년에는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 교육 농장’으로 지정받았다.


캠프 한에서는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등에서 이주해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우리 말과 우리 문화 교육도 하고 있다. 한씨가 관심을 갖는 대상들은 홀로 사는 노인, 조손가정 아이들, 한부모 가정 아이들, 소년소녀 가장, 미혼모, 외국이주 여성, 지적 장애인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이다. 지금까지 캠프 한을 거쳐 간 사람은 4~5만 명에 이르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앙인인 한씨의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한씨는 새벽기도를 할 때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게으름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한다. 교회에 다녀오면 ‘행복씨앗 농장’에서 일하고, 사람이 모이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필자는 한씨에게 생이 다 해 세상을 떠난 다음에 ‘한이직 기념 도서관’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한씨는 그 다음의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설재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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