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창근 전 국회의원
한미 FTA도 문제지만 한-EU FTA 역시 문제다. 세계시장 속에서 경쟁력 우위의 품목이 그리 많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보면 무턱대고 한미FTA나 한-EU FTA의 체결을 서두르는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비준을 앞둔 한-EU FTA의 체결을 미뤄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 축산과 낙농업의 직접적인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취약한 유통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의 다양한 낙농유제품들이 우리의 시장을 잠식할 것이며, 유럽연합(EU)의 유통자본이 아무런 규제없이 한국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우리의 축산업은 그 파고를 넘기 어려울 것이며 법으로부터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대기업의 교활한 시장잠식에 의해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한-EU FTA마저 체결되면 더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비단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유통법과 상생법이 통과됐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통시장이나 전국 39개 전통상점가의 경계로부터 500미터 이내를 전통상업보존구역을 지정하여 이 구역 내에는 대형마트나 직영점 SSM에 대해 등록을 제한하거나 조건을 붙여 등록을 받아준다는 정도여서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더욱이 영업품목, 영업시간 제한 등과 같은 영업행위 조정에 대한 규제내용이 포함되지 않은데다 3년 동안만 적용되는 한시법이라는 것이다. 이마저도 3년 이후에는 전통상업보존구역과 같은 규정들이 폐지되어 대기업으로부터 중소상인들을 보호할 제도는 아예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EU FTA마저 올 7월 체결된다면 농·축산업 그리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붕괴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물론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교역국간의 무역협정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세한 농·축산업 그리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한-EU FTA를 서두른다면 농·축산업과 서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뿐이다.
따라서 정부는 한-EU FTA의 비준보다는 탄탄한 농·축산 기반구축을 위해 자본과 시설 등에 충분히 지원을 한 후, 유명무실한 유통법과 상생법을 더 보완하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함으로써 서민경제가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우선 돼야할 것이다. 지금은 가능한 한-EU FTA의 비준은 늦추고 농·축산인과 서민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다시한번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