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축구대회는 또 하나의 담양의 저력입니다”
선후배 축구대회 모태는 ‘동남전(東南戰)’ 축구 경기
동초교와 남초교 친선 OB축구 경기 서너차례 치러
과열 양상으로 중단됐다가 78년 선후배축구 태

2011년 4월 16일과 17일 양일간에 걸쳐 백진강변과 추성경기장에서 24개 동우회와 51세이상 연합팀인 OB클럽 등 선후배 회원들과 가족 등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제33회 담양군 선후배 축구대회가 열렸다. 이번 축구대회는 가로수동우회(대회장 송진원, 준비위원장 진수현)가 ‘담양의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주최하였다. 기록으로 나와 있는 선후배 축구대회 연혁을 보면 1978년 제1회(주최 홍일팀, 대회장 박항래), 1979년 제2회(주최 친구들팀, 대회장 국희송), 1980년 제3회(주최 꽃순이팀, 대회장 박영일)로 되어 있다.
박씨는 담양동초등학교 37회와 추성중학교 1회 졸업생으로 올해 나이가 일흔아홉살이다. “해마다 선후배 축구대회가 열릴 때면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설레고 심장이 뜁니다. 나도 함께 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은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박씨는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박씨는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군대에 가서도 부대 대표선수 생활을 했다.
군대를 제대한 박씨는 고향에 돌아와 재봉틀가게를 운영했다. 모 일간지의 지국장 일도 하고, 당시 국회의원 지구당 조직부장을 맡아 정당활동도 했다. 그리고 축협에 근무하기도 했다. 고향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조기축구회에 나가 열심히 공을 찼다. 요즘도 축구경기 중계를 빼놓지 않고 시청하면서 젊은 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박씨가 가장 좋아는 선수는 박지성이다.
그런데 정기적으로 선후배 축구대회가 열리기 이전에 담양읍에서는 매년 ‘동남전(東南戰)’이라고 하는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동남전은 담양읍 소재의 동초등학교와 남초등학교의 OB 축구경기였다. 이 동남전은 서너차례 경기를 치른후 중단되었다. 지역에서 열심히 체육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조씨(담양읍 지침리 거주)는 동남전(東南戰)과 관련한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아무리 친선을 도모한다고 하지만 경기란 거듭하다 보면 과열되기 마련입니다. 동남전도 해를 거듭하면서 과열되고 이것이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져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동남전이 중단되고 나서 얼마후 지역의 선후배들간 친선경기를 갖자는 의견들이 나왔던 것으로 압니다. 그렇게 의견들이 오가다가 1978년에 ‘제1회 담양군 선후배 친선 축구대회’가 열리게 된 겁니다.”
김정조씨는 제1회 대회 때에 출전했던 ‘홍일팀’과 ‘꽃순이팀’의 몇몇 선수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홍일팀 멤버는 박항래, 배기술, 홍두기, 최남형, 조규선 등이었고, 꽃순이팀은 송동팔, 김용철, 김덕성, 홍명신 등이었다고 한다. 이들 멤버들 중에는 이미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있다.

선후배 축구대회와 관련하여 담양의 ‘동우회(同友會)’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현재 담양에는 마흔개에 가까운 동우회가 결성되어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뜻과 취미가 서로 같은 벗’을 ‘동우(同友)’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담양에 결성되어 있는 동우회는 국어사전에서 밝힌 뜻과는 차이가 있다.
특정학교 출신 선후배들의 결성체를 동문회라고 하는데, 담양의 동우회는 모든 학교를 망라하여 같은 해에 졸업한 사람들로 결성되어 있다. 광역의 동창회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모임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담양만의 독특한 결성체로 지역의 독특한 문화이며 전통이다.
선후배 축구대회가 열리던 초창기 참가팀들의 이름은 ‘홍일팀’ ‘친구들’ ‘꽃순이’ ‘담풀회’ 등이었는데 제5회 대회를 주최한 팀이 ‘동우회(대회장 양승남)’였다. 이때 처음으로 동우회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 뒤 ‘형제회’ ‘청죽회’ ‘51회’ ‘담죽회’ ‘청우회’ ‘죽마교우회’ ‘관어회’ 등으로 이어지다가 1990년 제13회 대회를 ‘추성동우회’가 주최하게 되는데 이 대회 때는 윤영선이 대회장을, 박석순이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선후배 축구대회는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된다.
동우회라는 명칭도 ‘무슨 무슨 동우회’라고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무슨 무슨 동우회’가 연차적으로 탄생하면서 선후배 축구대회는 담양의 역사적인 일로 자리를 잡아 갔다. 이 내용은 지역의 중요한 사료(史料)이므로 다음과 같이 그 낱낱을 밝히고자 한다.
●제14회(1991년) 청죽골동우회(대회장 윤재욱, 준비위원장 이정기) ●제15회(1993년) 추남동우회(대회장 이병석, 준비위원장 허승업) ●제16회(1994년) 백천동우회(대회장 조영준, 준비위원장 최용만) ●제17회(1995년) 담양크린동우회(대회장 강종문, 준비위원장 최재훈) ●제18회(1996년) 죽향동우회(대회장 한봉섭, 준비위원장 홍정민) ●제19회(1997년) 21세기동우회(대회장 노영록) ●제20회(1998년) 죽풍동우회(대회장 최성균, 준비위원장 송혁면) ●제21회(1999년) 삼일동우회(대회장 김행복, 준비위원장 박래암) ●제22회(2000년) 터울동우회(대회장 송경태, 준비위원장 설동봉) ●제23회(2001년) 청담동우회(대회장 조승채, 준비위원장 신동문) ●제24회(2002년) 백마동우회(대회장 정종대, 준비위원장 김광연) ●제25회(2003년) 어깨동무동우회(대회장 장현동, 준비위원장 박수형) ●제26회(2004년) 삼육동우회(대회장 오홍곤, 준비위원장 이영수) ●제27회(2005년) 한두레동우회(대회장 노길수, 준비위원장 박장수) ●제28회(2006년) 그루터기동우회(대회장 남찬우, 준비위원장 서영준) ●제29회(2007년) 백호동우회(대회장 정윤석, 준비위원장 유성록) ●제30회(2008년) 열린동우회(대회장 국승경, 준비위원장 이상진) ●제31회(2009년) 만우동우회(대회장 김형균, 준비위원장 김태호) ●제32회(2010년) 새천년동우회(대회장 조희범, 준비위원장 윤성호) ●제33회(2011년) 가로수동우회(대회장 송진원, 준비위원장 진수현), 그리고 2012년 제34회 대회는 어울림동우회(회장 한상훈)가 주최하기로 되어 있다.
선후배 축구대회의 연혁을 보면 이 대회가 담양의 전통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제14회 대회를 주최한 동우회와 제33회를 주최한 동우회를 비교해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고 있다. 대를 이어 대회를 주최하고 있는 이 대회가 머지않아 손자로 대가 이어지게 될 것이다.
박씨는 올해 열린 제33회 선후배 축구대회에서 오늘이 있도록 초석을 놓은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패를 받았다.
“처음 대회를 가질 때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33회가 되었으면 100회, 200회로 이어지겠지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통을 이어가는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이런 후배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선후배 축구대회는 그냥 단순한 운동경기 대회가 아닙니다. 담양의 저력이고, 담양의 원동력입니다.”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