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재기 기획국장의 ‘대나무에 얽힌 설화’
농경에서 산업화 되면서 사랑방문화 사라져
관광은 마음으로 볼 때 비로소 느낄 수 있어
담양에 대나무 설화 빈약 풀어 가야할 숙제
새로운 설화 만들기란 현

본지 설재기 기획국장이 지난 17일 담양문화원에서 운영하는 담양예술대학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대나무에 얽힌 설화’에 대해 강의했다.
본지는 설 국장의 강의 내용 가운데 걸죽, 죽취일, 만파식적, 죽부인, 맹종죽, 대나무 열매 등 대나무 관련 설화를 소개한데 이어 이번 호에서 대나무의 식물·사회·문학적 의미와 빈약한 담양대나무에 대한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편집자주
◇대나무는 무엇인가?
#식물학적 의미
대나무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로 열대식물이다.
대를 뜻하는 영어의 뱀부(bamboo)가 말레이 반도의 토속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어원은 열대림의 대밭이 불에 탈 때 나는 큰 폭음소리를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나무의 이미지는 물보다는 불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런 대나무는 대나무과에 속하는 식물을 총칭하는 것으로 땅위줄기와 땅속줄기로 이뤄졌다. 매년 5~6월경 땅속줄기에 붙어있는 눈수의 9% 정도가 죽순으로 돋아나며 하루 약 90㎝가 자라 기후에 따라 최대 3~20m까지 자란다.
#사회·문화적 의미
대나무가 여러 식물 중에서 사회적·문화적으로 특별히 취급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 생김새와 가히 폭발적인 성장 속도, 그리고 생활의 도구를 대나무에서 구한데서 기인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고산 윤선도가?'오우가' 에서 노래했듯이, 대나무는 나무도 풀도 아니면서 나무이기도 하고 풀이기도 한 이상한 식물이다.
이런 이유여서인지 한자말에는 나무와 풀을 표현할 때? '나무 목' 변이나 '풀 초' 변으로 구분하는데, 오직 대나무와 관련된 낱말에는 이 두 가지 가운데 아무것도 붙이지 않는다.
또 대나무로 만드는 연장도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사람들에게 긴요한 생활 도구가 되면서,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화살·죽창 따위의 무기로 변신하기도 한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산울타리 또는 주민들의 방호용으로 재배되기도 했고, 붓(筆〕의 붓대가 바로 대나무이며, 퉁소·피리·대금 등의 악기도 대나무로 만든다.
갓대나 조릿대로는 조리를 만들고, 이대로는 화살·담뱃대·낚싯대·부채 등을 만들며, 왕대나 솜대로는 건축자재 뿐 아니라 가구·어구·장대·의자·바구니·발·빗자루·완구 등 많은 일용품을 제조한다.
그리고 땅속줄기로는 단장이나 우산대를 만들며, 대의 잎이나 대껍질은 식료품의 포장용으로 쓰이는 등 대나무의 이용도는 참으로 다양하다. 보통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서 나오는 죽순은 향기가 좋아 밥·단자·죽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댓잎으로는 술을 빚기도 하였다.
약용으로는 왕대나 솜대의 줄기 내부에 있는 막상피(膜狀皮)는 죽여(竹茹)라 하여 치열(治熱)과 토혈(吐血)에 사용하며, 왕대나 솜대에서 뽑아낸 대기름은 죽력(竹瀝)이라 하여 고혈압에 쓰일 뿐 아니라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죽엽(竹葉)은 치열·이수(利水)·청심제(淸心劑)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나무는 소나무의 강직함과 갈대의 연약함을 아울러 품고 있고, 불 속에 들어가면 속의 공기가 팽창하여 폭발하는 기이함도 지녔다. 매우 단단해 보이지만, 바람에 흔들릴 만큼 약하고, 굳세어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한두 마디만 자르면 나머지는 쉽게 쪼개지고 만다. 따라서 대나무를 선비와 비교한다.
선비란 학식이 많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으며 인품이 고결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대나무는 곧고 굳음이 숭고한 학자를 상징하는 듯 하고 하늘높이 솟은 양은 예의바른 군자를 보는 듯하며 속이 빈 모습은 마음을 비운 도인인 듯하다. 한번에 쪼개지는 대쪽은 원칙을 지키는 장군이요, 사시 푸른 잎은 고결한 선비를 상징하는 듯하다.
죽순이 땅속에 숨어 있을 때는 마치 대나무가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한번 위로 올라오면 하루에 무려 1미터 가까이 자랄 만큼 빠르게 성장해 간다.
이처럼 대나무는 서로 다른 성질을 함께 지녔다. 하지만 대나무는 모순의 식물이 아니라 조화의 식물이다. 모순의 식물이었다면 이미 멸종해 버렸겠지만, 상반되는 성질을 동시에 받아들여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베풀었다.
이 때문에 대나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시간 정신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사랑을 받아 왔다.
◇빈약한 담양 설화
대나무 고장이라고 자부하는 담양에 대나무에 관한 설화가 너무도 빈약함은 이제 우리가 앞으로 풀어 가야할 또 다른 숙제다.
담양은 이제 명실공이 대한민국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매년 관광객 수가 늘어나고 있는 죽녹원은 웰빙관광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또한 소쇄원은 한국전통의 정원을 갖추고 있어 그저 눈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자연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주변경관의 아름다움에 그림자마저도 쉬어 갔다는 식영정에 오르면 금새라도 시 한수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느낌은 담양이 아닌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담양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어디 그 뿐인가. 수백의 세월동안 흐르는 세월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웅장한 관방제림. 용소에서 솟은 맑은 정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백진강. 이른 새벽 울창한 관방제림에서 묻어나는 상쾌함과 백진강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태고의 신비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담양의 관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볼 때 비로소 담양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느낌의 관광 담양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은 담양관광의 미래이고 우리의 숙제인 것이다. 지역의 설화의 발굴이나 스토리텔링의 개발 등도 그런 노력들 중 한 방편일 수 있다. 그 소재가 대나무든 또 다른 것이든 이는 의미있는 일인 것이다.
사회적 시대적 배경에 따라 설화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우선 사랑방 문화가 없어짐에 따라 입담꾼들도 사라졌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천하면서 놀이문화도 변했다. 한낮 일을 마치고 밤이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랑방문화가 산업사회로 변함에 따라 차츰 사라져 이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예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초자연적 현상들이 과학의 발달로 점차 해석되고 이로 인해 막연한 신비함을 잃어가면서 설화나 전설들이 흥미를 가져다주지 못한 것도 한 이유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설화를 만들어 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에 남아 있는 조그마한 이야기들일 지라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기록함으로서 우리 담양의 문화를 보다 깊고 폭 넓게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시인 김춘수는 관심과 의미를 이렇게 그의 시 ‘꽃’을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 담양의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 줄 때 비로소 우리 담양은 보고 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닌 문화의 산책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담양은 그 이름부터가 대나무와 통하는 바가 많다. ‘潭’은 물을 담은 못을 뜻한다.
즉 음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陽’은 햇볕을 뜻하는 양이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고장인 것이다. 여기에 서식하는 대나무는 물과 불의 성질을 지녔으며 강함과 유함을, 외벽의 단단함과 속의 비움을 함께 하고 있다. 이처럼 조화로운 성격을 지닌 대나무가 담양에 자라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늘 우리 곁에서 함께해온 대나무는 긴요한 생활도구가 되었고, 선비는 붓으로 세상을 깨우쳤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의병은 손쉽게 구하는 무기로 죽창을 선택했다. 뿐만 아니라 대나무는 서민들의 훌륭한 약재였다. 이런 다양한 성격을 지닌 대나무와 함께 담양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대나무는 단순한 열대식물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우리가 대나무와 얼마나 밀접하게 생활하고 있는 지를 칼럼니스트 이규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한국인은 대 속에서 여생을 산다. 댓가지로 엮은 울타리 틈 죽비(竹扉)를 열고 집 안에 들면 대갈퀴와 대빗자루로 깨끗이 쓴 마당에는 대로 엮은 덕가리에서 병아리들이 삐악거리고, 집 둘레 흙벽에는 대로 엮은 삼태기, 소쿠리, 채반, 키가 옹기종기 걸려 있다. 댓살로 짠 문짝을 열고 방 안에 들면 대발이 늘어져 있고, 방바닥에는 대자리가, 아랫목에는 대나무 횃대에 이불이 걸려 있고, 윗목에는 대나무 두 개로 걸친 대시렁에 대로 엮은 크고 작은 고리짝이 얹혀 있다.
대줄기로 엮은 토시와 등걸에 삼베 옷 걸쳐 입고 바람을 들여 더위를 식히고, 밤에 상전은 납량도구인 죽부인(竹夫人)을, 마님은 죽노(竹奴)를 끌어안고 죽침(竹枕)을 베고 잠에 든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상주들은 대지팡이 짚고 상여 뒤를 따르고, 그 죽장은 망인과의 교감 수단으로 제상 곁에 반드시 그 상죽상을 갖춰야 했다.
또한 평생 품고 살았다 하여 죽부인을 아들이 물려 써서는 안 되고, 역시 제상 곁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조상들은 정신민족이었다. 곧 죽부인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일본까지 전수되었지만 죽부인을 유교사상 차원까지 승화시킨 것은 한국에서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