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월산합동주조장 인수해 죽향도가 문열어
2004년 원료에 댓잎가루 첨가한 ‘죽엽탁주’ 출시
순천만 간척지 유기농쌀로 대대포막걸리 빚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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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都家)’란 동업하는 장사꾼들이 모여서 계(契)나 장사 따위에 관한 의논을 하는 집, 또는 어떤 물건을 만들어 도매로 파는 집을 말한다. 그리고 술을 만들어 도매로 파는 집은 ‘술도가’라고 한다.
담양읍 삼다리 초입에 ‘죽향도가(竹鄕都家)’라는 상호로 오로지 막걸리만 만드는 술도가가 있다. 이 술도가의 대표가 권재헌씨다. 집안 내력으로 볼 때 권씨는 3대째 대를 이어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구례읍에 가면 일제 때부터 막걸리를 만들어오고 있는 ‘구례주조장’이 있다. 권씨는 이 주조장 창업주의 손자이다. 그런 권씨가 담양에 와서 ‘죽향도가’라는 이름의 주조장을 연 것은 12년 전이다.
1999년 겨울, 권씨는 현재의 자리에 있던 ‘월산합동주조장’을 인수했다. 인수하면서 상호를 죽향도가로 바꾸었다.
“전국적으로 막걸리 소비도 매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기에는 여러 가지로 상황이 안 좋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막걸리가 다시 부활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사업가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규모가 큰 사업을 한다고 해도 비전이 없으면 장사치에 불과한 겁니다.”
1999년 겨울에 인수하고 나서 주조장 설비를 정비한 다음, 2004년 4월에 첫 술 ‘죽엽탁주’를 출시했다. 죽향도가의 첫 술 죽엽탁주는 원료에 댓잎가루를 첨가하여 만든 막걸리다.
“술에 대한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술에서 향기가 난다고 칭찬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우리 막걸리에서 왜 특이한 향기가 나는 것인가는 명확히 설명을 못하겠습니다. 좋은 술을 만드는 원칙은 있습니다. 좋은 원료에 정성을 들이면 좋은 술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권씨는 담양으로 오기 전, 구례주조장에 근무하면서 이미 막걸리에서 나는 특이한 향의 노하우를 터득했던 것이다. 1990년대 말에 ‘살균막걸리’가 등장했다. 쉽게 말해서 끓인 막걸리이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살균막걸리가 등장하자 생막걸리의 소비는 급격히 감소했다.
“막걸리 속에는 여러 가지 살아있는 균이 들어 있습니다. 막걸리 한 병(700∼800㎖)에 700억∼800억 개의 유산균이 함유돼 일반 요구르트(65㎖) 100∼120병 정도와 맞먹을 정도로 건강에 좋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살균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닙니다. 너도나도 살균막걸리를 만들었지만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생막걸리를 고급화하여 살균막걸리를 이겨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원료의 혼합비율을 달리해 보고, 물도 바꿔가면서 술맛을 비교하면서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2년이 흘렀는데 어느 날 주조장 폐수를 모아놓은 곳에서 향기가 났다. 그렇지만 그 까닭을 규명하기 어려웠다. 권씨는 자기가 해왔던 일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까닭을 찾아보았지만 규명해내지는 못했다. 규명은 못했지만 지금도 그동안 경험으로 원료를 배합하고 있다.

“구례주조장에서 2년 동안 관찰하고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담양에 왔던 겁니다. 살균막걸리와 차별되는 생막걸리의 고급화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은 살아 있는 맛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죽향도가는 아주 기분 좋은 첫걸음을 내딛었다. 판매량도 쑥쑥 늘었다. 그런데 1년 반이 지난 시점에 권씨는 술도가 일손을 놓고 말았다. 권씨는 이에 대해 노코멘트라고 한다. 원래의 소유주들과의 계약상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만 말한다. 그러다가 다시 2004년 1월 통째로 인수하여 재창업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죽향생막걸리’라는 브랜드를 내놓았다.
이어서 2009년 11월 권씨는 ‘대대포막걸리’를 출시했다. 대대포막걸리는 순천만 갈대밭에 인근한 대대포구의 간척지 유기농 쌀을 원료로 한 생막걸리이다. 이 대대포막걸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6강 막걸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는 전국 시·도 예선을 통해 선정된 지역별 대표 막걸리 32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축구 16강 진출기원 막걸리 선발대회를 가졌다. 이때 대대포막걸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막걸리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순천만 유기농 쌀을 원료로 했기 때문에 대대포막걸리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왕대포, 담양 대나무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담양에서 유기농 쌀을 구하기가 어려워 순천만의 쌀을 사용했습니다. 가능하다면 원료는 담양에서 생산되는 것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현재는 연간 담양쌀 10톤 정도를 소비하고 있는데 점차 늘려나갈 겁니다.”
죽향생막걸리와 대대포막걸리는 사각형의 검정색 용기에 담았다. 막걸리의 용기는 하얀색의 원통형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전국적으로 검정색 용기를 사용하는 것은 죽향도가가 유일하다.
죽향도가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봉하막걸리’는 특이한 사연을 담고 있다. 봉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이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척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막걸리를 아주 좋아하셨는데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에 내려가 사시면서 근처의 상동주조장의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가 그 막걸리를 마셔봤는데 별로였습니다. 그 무렵 노 전 대통령께서 여러 지역의 막걸리를 시식하셨는데 우리 죽향도가의 막걸리를 지목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죽향도가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보내야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술 이름은 ‘애담’으로 했습니다. 사랑을 담는다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습니다. 용기도 만들고,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권씨는 술 원료와 용기를 폐기해 버렸다. 그렇지만 애담을 만들어 보내지는 못하지만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아 다른 방안을 찾아냈다. 원료는 봉하마을에서 생산되는 쌀로 하고 막걸리는 죽향도가에서 빚기로 한 것이다. 원료와 기술의 만남이고 영호남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봉하막걸리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권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소매점에 배달을 시작한다. 대개의 일과는 오전 중에 끝나기 때문에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이웃사람들과 술을 마시기도 한다.
“운동은 다 좋아합니다. 패러글라이더, 스쿠버다이빙, 사냥 등 두루 좋아하는데 골프는 어쩐지 부르주아 냄새가 나서 안 합니다. 술은 아주 좋아합니다. 양으로도 누구한테 져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은 하루 막걸리 2병정도 마십니다.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막걸리보다 더 좋은 술은 없지요. 막걸리를 농주(農酒)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설재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