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재록 작가
-
이제 담양은 지나온 천 년을 뒤돌아보면서 그 장구한 세월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천년을 설계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최근 천년을 지내온 담양의 행정구역 변경에 대한 논의가 지역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었다. 그 논의는 한 마디로 ‘담양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나 역시도 논의가 시작되는 처음에는 그런 인식을 갖고 있었다.
천 년을 지나온 담양이 어느 날 갑자기 강제적으로 고창, 정읍 등지와 광역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담양의 존재는 어떻게 될까? 담양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닌가?
이런 저런 논리로 따져보기 전에 강제통합에 대한 반감이 앞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대구광역시 달성군처럼 ‘광주광역시 담양군’으로 편입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성적(理性的)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감성적(感性的)인 것이었다. 광주광역시 담양군이 되면 천년의 역사를 훼손하지 않고 지역경제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최선이 아닌 차선(次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른바 행정구역 변경 특별법이라는 것이 가닥이 잡히고 나서 내 생각은 달라졌다. 고창, 정읍 등지와 함께 묶는 광역화에 대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특별법에 따르면 담양군민이 원하지 않으면 강제적인 통합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른바 ‘통추위’의 주민운동은 활발히 전개되었다. 통추위는 담양군 행정당국이 통합에 대한 진정성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행정당국은 실현불가능한 일을 가지고 군정의 발목을 잡는다고 맞대응을 했다. 통추위는 군수가 걸림돌이라고 했고, 군수는 전라남도 담양군의 군수라는 위치에서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으며, 법적으로도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농민단체가 통합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이장단에서는 소모적인 논쟁을 자제해 달라는 호소를 했다. 급기야는 지역 언론사들이 김효석 국회의원에 대한 질의를 했다.
논의가 시작되던 처음에 김 의원은 개인적으로라도 국회에서 입법발의를 해 ‘광주광역시 담양군’으로의 편입에 대해 논의를 해보겠다고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제 담양군이 강제적인 통합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그럴 생각은 없다고 분명한 의사표명을 했다.
김 의원이 입법발의를 해보겠다고 했을 때 담양군민의 상당수가 ‘광주광역시 담양군’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군민 서명운동에 동참했었다. 그런데 모든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일을 굳이 싸움으로 보자면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이 서로간에 상처만 남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통추위와 행정당국은 이번 일을 ‘네 탓’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통추위는 분명 ‘애향(愛鄕)’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추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역의 미래를 ‘우려(憂慮)’하는 사람들마저도 반대자나 방관자로 몰아붙이며 귀를 막아 버린 우를 범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통합의 문제가 조직에 참여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한다. 반대자나 우려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애향의 발로였다는 것을 알았어야 한다.
찬성이면 충신이고 반대나 우려면 역적이라는 것은 이분법적 생각인 것이다. 행정당국은 통추위와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역발전의 걸림돌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 까닭은 한마디로 행정에 대한 ‘불신(不信)’이 아닌가 싶다. 제아무리 투명하고 공정한 군정을 펼친다 해도 군민들이 못 믿겠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행정당국은 잘 하는데 군민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민(爲民)’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군정의 신뢰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민들이 무조건 행정당국에 대해 비난한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비난도 결국은 ‘비판적 지지’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디고 시끄럽다. 담양군 행정구역 변경에 대한 논의는 사화산(死火山)이 아니라 휴화산(休火山)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논의가 더욱 시끄러워도 괜찮다. 다만 생각에는 찬성과 반대가 있지만 우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줄곧 진정으로 담양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그래서 가칭 ‘우담회(憂潭會)’라는 모임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처음 ‘광주광역시 담양군’이라는 행정구역 변경논의는 차선(次善)이었다는 것이다.
고창이나 정읍과 통합되느니 광주광역시로 붙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차선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최선(最善)을 생각해야 한다. 담양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지리적 특성을 살려 자체적인 성장을 꾀하는 것이 ‘광주광역시 담양군’이 되는 것보다 훨씬 쉽고 가능성이 있으며 경쟁력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쉬운 예로 ‘광주광역시 담양군’의 농산물과 ‘전라남도 담양군’의 농산물 둘 중 어떤 농산물이 소비자들에 대한 경쟁력이 있을까?
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리고 ‘광주광역시 담양군’이 되면 지역이 눈부신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될 수도 있다.
최선은 천년을 이어온 담양의 새로운 천년을 계획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