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자
남도의 명산이라 이르던 무등산(無等山)은 남쪽에 화순군을 접하고, 남서쪽으로 광주광역시를, 서북쪽으로는 담양군을 접한 해발 1천187m의 웅산(雄山)이다. 무등산 자락에서 흐르는 원효계곡(元曉溪谷)은 광주의 충효리(忠孝里)를 지나 광주호에 이르고, 담양군 남면의 연천리(燕川里)에서 형성된 제비내(燕川)는 반석천(盤石川)을 거쳐 환벽계(環碧溪) 창계(蒼溪)와 합류하여 광주호에 이른다. 호수의 물은 다시 증암천(甑岩川)을 이루며 담양군 고서면(古西面) 원강리(院江里)의 송강(松江) 죽록천(竹綠川)을 거쳐 영산강(榮山江) 상류를 이룬다.
계류의 승지에 접한 구릉에는 선비들의 누정이 들어서면서 누정문화가 흥성하였고, 특히 타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명류들의 괄목할 작시 활동으로 많은 시가문학 유산이 남기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지역을 시가문화권(詩歌文化圈)이라 할 수 있다. 행정구역상 시가문화권은 담양군의 남면과 광주광역시의 충효리, 그리고 담양군의 고서면 지역이 주가 되고, 바로 이에 접한 봉산면(鳳山面)의 제월리(齊月里)까지를 동일한 문화권으로 간주한다.
여기에는 15ㆍ6세기부터 뜻있는 선비들의 은둔처로서, 지적 교유의 무대로서 많은 누정이 건립되어 왔다.
당시의 대표적 선비인 송순(宋純, 1493~1592)이 이르기를 “남쪽에는 승지도 많다. 가는 곳마다 숲 속의 정자로다.(維南多勝地 隧處有林亭)”라고 한 바는 일찍부터 이 지역이 누정명소로 알려졌음을 가리킨 말이다.
그는 또 대표적 승지로서 소쇄원(瀟灑園)과 식영정(息影亭), 그리고 환벽당(環碧堂)을 일동삼승‘一洞三勝’이라고까지 칭송함으로써 이곳은 명승지로서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되기도 하였다.
여러가지 전적의 기록에 의하면 이 지역에는 타지방과 달리 많은 누정이 건립되어 왔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대가 변하면서 그 유구마저 찾아볼 수 없도록 자취를 감춘 곳이 적지 않다. 이점을 감안하여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당국에서는 남아있는 문화유산의 보존 보호를 위해 문화재적 가치가 큰 누정 여덟 곳을 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여기서는 이를 두고 ‘시가문화권의 누정(樓亭) 8승(勝)’이라고 이른다.
정자 이름을 들면 담양군 남면의 독수정(獨守亭)ㆍ소쇄원ㆍ식영정과 고서면의 송강정(松江亭)ㆍ명옥헌(鳴玉軒), 봉산면의 면앙정(?仰亭), 그리고 광주시 북구의 환벽당ㆍ풍암정(楓巖亭) 등이다. 8승의 ‘승(勝)’은 경관이 뛰어난 승경이요, 명승일 뿐만 아니라, 승사(勝事)가 이루어지고, 뛰어난 권적(勝蹟)이 남게 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기준 중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담양과 같은 문화유산인 경우에는 ○인류의 중요한 가치가 교류된 것을 보여주는 건축이나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이나 조경설계의 발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거나 세계의 특정 문화권에서 일어난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다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 사건 또는 살아 있는 전통, 사상, 신앙, 예술ㆍ문학 작품과 직접적으로 또는 가시적으로 연계된 것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담양누정과 세계유산에 대한 논의는 누정의 정신사적 배경과 경관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누정 8승은 그 대부분이 옛 선비들이 시대에 대처하는 삶의 원리를 추구하던 현장이요, 시가문학의 산실이며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의미가 큰 이 지역의 문화유적일 뿐만 아니라,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써 국가적 자산이요, 가치 면에서는 우리 인류가 다함께 공유할 세계문화유산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