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명옥헌의 정신사적 배경과 경관
⑩ 명옥헌의 정신사적 배경과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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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2.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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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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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의 후산(後山)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후산마을은 원래 조선시대 인조(仁祖) 때의 선비인 명곡(明谷) 오희도(吳希道, 1583~1623)가 은둔하여 살던 곳인데, 그의 막내아들인 장계(藏溪) 오이정(吳以井)이 부친의 뜻을 좇아 여기에 은둔하면서 명옥헌을 조영하였다. 때문에 이를 달리 장계정이라고도 한다.


정자 위에는 고봉산(瓠峯山)이 있고, 그 밑에 형성된 큰 골짜기는 도장곡(道藏谷)이라 이른다. 그 계곡 아래 구릉 위에 정자가 세워져 있으므로 명옥헌을 또 도장정이라고도 한다. 정내에는 누정의 이름인 것처럼 삼고(‘三顧’)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조의 16대왕인 인조는 1620년경 반정하기 전 인재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은거하고 있는 오희도를 세번 찾아왔다는 데서 중국 제갈량(諸葛亮)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비유하여 이렇게 명명한 것이다.


명옥헌 뒤에는 그 지방 선비들의 제사를 지내던 도장사(道藏祠)가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그런데 정자에서 근거리인 후산마을 안에는 인조가 당시 말을 매어두었다는 은행나무 노거수가 있고, 이로 연유하여 그 은행나무를 계마행(繫馬杏)이라 한다. 거기에는 또 명곡 오희도가 지은 정자인 망재(忘齋) 혹은 행정(杏亭)이라 하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니, 이들은 명옥헌과 아울러 누정 유적의 역사성을 말하는 소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명옥헌이 창건되자 오희도와 절친했던 기옹 정홍명이 명옥헌기를 썼고, 훗날 중수하였을 때는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金在魯)가 명옥헌 중수기를 지었다. 그에 의하면 정자 옆으로 흐르는 골짜기의 물소리가 마치 옥이 부서져 굴러 내리는 듯하다 하여 정자 이름의 연유를 밝히고 있다. 한편으로 명옥헌의 다른 이름으로 장계정에 대해 오상순의 장계고동기가 있다. 뒷날 우암 송시열이 쓴 ‘명옥헌’이라 한 휘호가 그 골짜기의 바위 아래에 새겨있어 정자의 유서깊은 사연을 짐작케 한다.

명옥의 물소리를 연상시키는 계곡수는 정자 앞에 위치한 대소로 된 두 개의 상하지에 고여 널따란 네모꼴의 연못을 형성하고 연못 안에 둥그런 섬이 있다.


정자와 연못의 주변에는 300여년이 된 50여 그루의 목백일홍과 노송, 그리고 반송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그러나 수년전 태풍으로 목백일홍이 대부분 넘어지고 현재는 새로 심은 목백일홍이 그런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집단으로 군집해 있는 목백일홍이 만개한 7월에서 9월까지 100일간의 한여름철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장관을 이룬다. 식영정 앞 자미탄의 목백일홍과 함께 연못에 비치는 자미(목백일홍)의 맛은 신선의 세계가 따로 없다. 가히 환상적이다.


올 가을 명옥헌 입구에서부터 정자 주변에 밀집한 감나무들의 노랗게 익은 감들이 달려있는 모습은 가을철의 풍광을 더해주고 있었다.

수경(樹景)과 수경(水景)의 자연 풍광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도록 한 명옥헌의 누정 조영에 여러 가지 깊은 뜻이 있음을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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