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풍암정의 조영 배경 및 경관
⑬ 풍암정의 조영 배경 및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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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2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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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 교수

광주광역시 충효리 금곡(金谷)마을의 풍암제 위 원효계곡(元曉溪谷) 언덕에 있는 정자이다. 기와산인(畸窩散人) 정홍명(鄭弘溟, 1592~1650)이 쓴 <풍암기>에 의하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의 아우 김덕진(金德普, 1571~?)가 구축하였고, 그 시기는 시문의 기록으로 미루어 이는 적어도 광해군(光海君) 6년(1614) 동짓달 이전에 이미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자에는 임진왜란 전에 시문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석천 임억령, 제봉 고경명 등의 풍암정 제영이 있다. 그로 미루어 이 누정 역시 이미 그 무렵부터 건립되어 있었지 않았을까 짐작되기도 하고, 또한 풍암산수의 수려한 풍광으로 연유하여 정자가 건립되기 전부터 당대의 이름난 시인묵객들의 탐방으로 위의 두 시인의 시도 이미 제작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떻든 김덕보는 장형인 김덕홍(金德弘)이 임란(壬亂) 때에 고경명, 안영(安瑛) 등과 금산(錦山)전투에서 순절하고, 중형인 김덕령마저 억울한 모함으로 옥사하게 되자 세상사를 원망하고 이곳에서 은둔생활을 함으로써 풍암정의 주인으로 알려지게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무등산 아래 원효사 앞을 지나 흐르는 맑고 깨끗한 청계수는 풍암정 앞에 이르러 기암괴석에 부딪치며, 단풍 물에 물들어 글자 그대로 수경(水景)과 암경, 그리고 수경(樹景)이 조화된 자연 풍광의 극치를 이룬다. 정자의 왼쪽 멀리 맞은편에는 사촌 김윤제의 제실(齋室) 귀후제(歸厚齋)가 있는 마수산(馬首山)이 바라보이고, 그 좌우에는 큰 선비봉과 작은 선비봉이 자리하고 있는 그 아래에 건물이 세워져 있어 김덕보가 산자수명한 이 승지에서 풍암정을 조영한 또 하나의 이유를 상상케 한다.

정홍명의 <풍암기>에서 ‘바위를 끼고 그 위아래엔 단풍나무가 100여 그루 있어 계담을 둘러싸고 비추는데, 가을에는 단풍잎이 물에 내리어 물빛이 곧 단풍으로 물든 듯하다.(夾巖上下有楓百餘 環映溪潭 方秋霜葉離水 水色如染)”고 하였으니, 정자 이름을 ‘풍암’이라 한 이유를 가히 알 만하다. 정내에는 또 ‘풍암정사’라 한 현판도 걸려 있다. 어느 때 누가 쓴 것인지, 정자 앞의 커다란 바위 모서리에는 풍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누정에는 풍암정사(楓巖亭舍), 풍암기(楓巖記), 그리고 임억령, 고경명, 안방준, 정홍명, 김덕보 등의 시를 새긴 판각들이 걸려있다. 이를 보아 일찍부터 이름 있는 시인들이 이곳에 출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시인들이 남긴 풍암정 제영에 의하면 이곳의 자연 산수와 식물에 대한 묘사 역시 풍과 암, 그리고 깨끗한 물을 주된 소재로 하고 있음을 본다. 이에 등장하는 자연은 풍암정 조영의 또 하나의 배경이 된다.

풍암정 입구의 저수지 옆을 지나서 단풍나무 숲 사이를 한참 들어가다 보면 계류 바위 위의 정자와 만나게 된다. 이점이 다른 누정과 다른 독특한 입지적 특색을 나타내 보이고 있으며, 정자 안과 밖에서 느끼는 풍광은 더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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