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면앙정의 조영 배경과 경관
⑮ 면앙정의 조영 배경과 경관
  • 마스터
  • 승인 2013.02.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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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은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는 정자이다. 호남의 명산이라 일컫는 무등산의 맥이 남으로 뻗어내려 제월봉을 이루고, 그 아래 산자락에 있는 용바위에 위치한 면앙정은 행정적 구역으로는 봉산면에 속해 있으나, 이는 정자가 많은 고서면에 인접하여 같은 시가문화권의 유적으로 간주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조선조 중·명종 간의 문신인 면앙정 송순(1493~1582)이 41세 때에 사간원 사간의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서 정자를 지었다. 나라의 어진 선비들이 배척당함을 통분해 하며, 바른 말하다가 자신 역시 패하게 될 것을 스스로 깨달은 그는 귀향하여 정자를 짓고, 천지 우주의 뜻을 담아 그 이름을 면앙정이라 하였다. 다음에 드는 한시체인 <면앙정3언가>와 <잡가2수>라 하여 전하는 시조 한 수는 면앙정 건립의 동기와 당시 작자가 추구하던 삶의 뜻을 알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면앙정3언가>
?有地 仰有天 :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 보면 하늘이라,
亭其中 興浩然 : 그 중에 정자 세웠으니 호연한 흥취 이네.
招風月 ?山川 : 풍월을 불러대고 산천을 끌어드려,
扶藜杖 送百年 : 명아주로 지팡이 삼고 한평생을 보내리라.

<잡가2수> 중 시조 한 수
十年을 經營?야 草廬 한 間 지어?니
半間은 淸風이요 半間은 明月이라
江山은 드릴듸 업?니 둘너두고 보리라

‘십년을 경영?야’라 한 표현구는 누정을 건립하기 10년 전부터 정자 건립의 뜻을 세워 누정생활을 계획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송순이 다시 출사하여 관직생활에 임하고, 또한 유배되어 귀양의 삶을 보내면서 정자의 관리는 소홀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60세가 되던 명종 7년(1552)에 담양부사 오겸(吳謙)이 중창을 추진한 것이다. 그 성사를 축하하여 고봉 기대승이 누정기를 쓰고,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면앙정부>를 지었으며, 석천 임억령ㆍ하서 김인후ㆍ제봉 고경명ㆍ사암(思菴) 박순(朴淳) 등은 <면앙정30영>을 제작하였으니, 국문학계에선 면앙정을 빼고 국문학사를 얘기하지 못한다. 면앙정을 중심으로 수많은 작품이 창작되었으니 호남지방 시가의 원류적 본산이다.

면앙정의 경관으로는 정자의 뒤에 펼쳐진 광활한 평야, 춘하추동 네 계절에 따라 일어나는 갖가지 빼어난 풍경을 비롯하여, 원근의 산과 시냇물 등 산수경계의 풍광이 정자의 주인인 송순은 물론 탐승객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각종 면앙정 제영에 나타난 풍광을 즐기는 흥취를 보면 이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려니와, 특히 송순 자신이 지은 <면앙정가>를 대하면 주위에 전개된 누정 경관의 수려함을 재삼 느낄 수 있다. 예로부터 천하제일의 정자라고 상찬되어오던 그 이유를 가히 알 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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