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독수정
16- 독수정
  • 마스터
  • 승인 2013.03.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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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정은 담양군 남면의 연천리 산음(山陰)마을 산중턱에 있는 정자이다. 고려 말에 북도안무사 겸 병마원수를 거쳐 병마상서를 지낸 서은(瑞隱) 전신민(全新民)이 나라가 망하자 이곳에 내려와 은거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그 아우 전인덕(全仁德)이 건립하였다고도 하나, 독수정에 관한 각종 누정기에 의하면 이는 전신민의 은둔으로 말미암아 조영된 것만은 확실하고, 그 창건 연대 역시 이에 준하여 조선조 초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라가 망하자 고려 말의 두문동(杜門洞) 72현처럼 불사이군(不事二君)을 다짐하며, 은사의 고절(高節)을 지키어 은둔하면서 북향집을 짓고 지냈으니, 그는 고려의 도읍지인 송도(松都)를 그리는 뜻으로 그러하였다 하겠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시인 이백(李白)의 시구에 나오는, “백이숙제(伯夷叔齊) 는 곧 누구인가. 서산에서 절개를 지키다가 굶어죽었네.(夷齊是何人 獨守西山餓)”라 한 데서 이르는 독수로 말미암은 것이다.
독수정은 이같은 유래와 조영되어온 그 역사성으로 보아 명승지로서 유서 깊은 곳일 뿐만 아니라, 주위 경관의 아름다운 풍광은 ‘독수정 14경’으로 더욱 이름난 누정명소이다.
전신민은 독수정의 후원에 소나무를 심고 앞 섬돌에 대나무를 식재하여 은(殷)나라의 멸망과 함께 수양산(首陽山)에 들어 아사(餓死)하였다는 백이숙제의 수절을 본받았다. 여기에 출입한 시인들의 작시제영에 의하면 위에 든 송ㆍ죽은 물론 고사리(薇蕨), 매화 등의 식물이 주된 소재가 되고 있음을 볼 때, 이곳은 일찍부터 지사의 절개를 상징하는 식물이 식재되었다.
독수정 제영에 나타난 식물만을 뽑아 그 종류와 출전을 보면 이러하다.
O 老梅 : 오래된 매화 (金箕疇의 <次韻>)
O 松園 : 소나무 동산 (鄭公源의 <次韻>), 松栢 : 소나무와 잣나무 (金秉圭의 <次韻>),
O 松韻 : 소나무의 운치 (宋祖憲의 <次韻>), 庭松 : 정원의 소나무 (金琦煥의 <次韻>),
O 杉松 : 삼나무와 소나무 (李光秀의 <獨守亭十四景>)
O 水竹 : 물가의 대나무 (金憲奎의 <次韻>), 竹陰 : 대나무 그늘 (송조헌의 <次韻>),
O 澗竹 : 물가의 대나무 (김기환의 <次韻>)
O 薇蕨 : 고사리 (이광수의 <獨守亭十四景>), 採薇 : 고사리를 꺾다 (鄭雲五의 <次韻>)
O 桃花 : 복사꽃 (김기주의 <次韻>), 桃 : 복숭아 (이광수의 <獨守亭十四景>)
O 火棗 : 붉게 익은 대추 (이광수의 <獨守亭十四景>)
O 黃花 : 가을 국화 (柳堉의 <次韻>)
O 丹楓 : 붉게 물든 단풍 (이광수의 <獨守亭十四景>), 霜楓 : 서리 맞은 단풍잎 (이광수의 <獨守亭十四景>), 江楓 : 강가에 있는 단풍 (이광수의 <獨守亭十四景>)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건물이 퇴락하자 그의 후손들은 몇 차례에 걸쳐 중건 중수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1913년에야 그 일은 마무리 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33년 전에 다시 중수한 것이다. 독수정은 이같은 유래와 조영되어온 그 역사성으로 보아 명승지로서 유서 깊은 곳일 뿐만 아니라, 주위 경관의 아름다운 풍치는 ‘독수정 14경’으로 더욱 이름난 누정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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