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방보훈청 선정

‘전명운 의사 기념 조형물’은 담양읍 향교리 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8년 5월 5일 전명운 의사의 페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부지 90.9㎡에 높이 2.2m의 흉상과 3.2×2.1m의 비석이 함께 세워진 우리고장의 현충시설이다.
전명운 의사는 1908년 일제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선전 활동차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 D.W.스티븐스가 현지 신문에 “한국의 농민 대중은 일본의 지배를 원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자 3월 23일 페리부두에서 장인환과 함께 권총으로 응징, 처단했다.
전명운 의사의 의열 투쟁은 미주 내에서 일어난 첫 무력항일투쟁이었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의 한국 합병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린 뜻 깊은 의열 투쟁이었다.
이후 전명운 의사는 미국 경찰에 수감돼 심문을 받다가 보석․석방됐으며, 애국 강연을 통한 독립운동을 계속하면서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했고 194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조직된 한인국방경위대에 입대하는 등 평생을 조국광복에 헌신하다가 1947년 11월 18일 서거했다.
1962년 정부는 전명운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며, 1994년 해외 안장 애국선열 봉환사업에 따라 유해가 고국으로 모셔져 현재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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