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매망 없는 영세·고령농가 저렴한 수수료 농산물 처분 ‘농가소득’
잔류농약검사 등 철저한 품질관리, 먹거리 교육 등으로 고객 확보
생존 위한 자체적 특화 전략…고서농협 로컬푸드 미래 밑그림 계기

아직은 지역사회에서 ‘로컬푸드’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2013년 4월 당시 고서농협(조합장 조해근)은 ‘농장의 신선함이 식탁까지, 농업인과 소비자 모두가 행복한 밥상’을 모토로 문을 열고 본격적인 지역 농산물 판매에 나섰다.
농산물의 유통비용 축소를 통한 농업인과 소비자의 상생을 추구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은 회원등록 고객과 일반 고객들에게 지역농가가 생산하는 100여 가지 신선한 농산물과 이를 가공한 상품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며 서서히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로컬푸드 운동은 위기에 처한 농업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B급 농산물을 상품화시켜 농가들에게 과외소득을 안겨주자’는 취지로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전북 완주군이 선발주자로서 시장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고서농협도 150만 인구의 광주광역시와 인접해 있는 이점을 살려 점차 가입농가와 이들이 생산하는 농산물 품목수를 늘리고 고객들을 확보하는 등 외형을 확대하기 위한 기초를 착실하게 다져나가고 있다.
특히 생산농가가 원하는 가격을 부착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인 만큼 생산자의 책임이 막중한 반면에 농가들은 적은 양이지만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상품화시켜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2년 남짓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로컬푸드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농가들 가운데 일부가 탈락되는 곡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참여농가들 스스로가 로컬푸드에서 뭔가 가능성을 찾고 스스로의 힘으로 농업의 위기를 극복해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에 고서농협은 지난 6월22~25일 조해근 조합장과 이사·감사를 비롯 직매장에 참여하는 23농가 등 38명을 구성해 로컬푸드의 발상지인 일본을 방문, 농협의 주도로 운영하고 있는 관서지방의 로컬푸드 직매장과 생산농가들을 둘러보고 ▲일본 농산물 직매장 운영사례 ▲일본 농산물 직매장 운영시스템과 역할분담체계 ▲일본 농산물직매장 성패요인 분석 ▲로컬푸드직매장 세부 운영전략 협의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일본의 로컬푸드 역사는 일본정부가 재정위기를 겪던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정부는 재정난을 타개하고자 각각 독립된 지위를 누리고 있던 3천개 가량의 대소규모의 지방자치단체들에 대한 통폐합을 추진, 현재 1천500개로 줄였다.
지자체들의 통폐합은 농협에도 영향을 미쳐 1990년대 후반부터 추진됐는데 우리의 첫 기착지인 나라현의 경우 42개의 농협이 1개로 통폐합돼 1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으로서 규모화를 이루는데 성공한 것처럼 치열한 통폐합의 과정을 겪었다.
일본 농협들은 비좁은 경지면적에서 생산량은 빈약하고 판매망이 없는 농가들의 농산물이 농협으로 집하돼 선별·지도·출하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30%에 달하는 수수료로 농가소득이 보잘것 없어지는 상황에서 영세·고령농가들의 농산물을 어떻게 처분해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또 몇 사람의 우등생을 만들기 보다는 한 사람의 열등생을 만들지 말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B급 농산물을 상품화시켜 농가들이 부수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하고, 농가들이 직접 가격을 결정하게 하는데 적합한 직매장을 고안하게 됐다.
현재 일본에서 운영중인 2만개 가량의 직매장은 운영주체가 지방자치단체부터 농협, 유통체인 등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경쟁이 치열하다.
이 가운데 농협이 중심이 돼 운영하는 직매장은 2천개 정도로 직매장들은 협의체를 구성하고 가격인하경쟁을 하지 않는다거나 상호간에 특화된 품목을 운영하도록 장려하는 등 상생체계를 갖추고 향후 마찰 없이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갈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와까야마현 기노사토시 JA기토사토가 운영하는 멧케몬 히로바는 현내 북부 농업지대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5개 농협을 합병해 2000년 11월 파머스마켓 형태로 오픈했는데 매실과 복숭아 등 과일로 특화를 이뤘다.
특히 인근에 고베, 이즈미, 교토, 와까야마 등 대도시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평일에도 매장이 꽉 들어찰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파머스 마켓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가교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연 60회 정도 생산자 설명회를 개최하고 생산자의 의견수렴 및 마켓운영에 관한 규정들을 수립한다.
위탁판매 회원으로 등록한 5천100여 농가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가공품을 15% 가량의 수수료를 징수하고 판매하는데 ▲농산물 가격은 지정된 범위안에서 생산농가가 직접 결정하고 ▲생산농가들은 모두 생산이력을 제출해야 하며 ▲쌀, 신선채소, 과일, 육류, 가공품을 취급하고 ▲1일 2회(7:30~9:00, 9:30~16:00) 반입 가능하며 ▲팔리지 않는 상품은 생산농가가 회수하고 ▲POS 시스템에 따라 월 2회(15일, 30일) 정산하며 ▲인근 농가에서 구입할 수 없는 농산물은 전국 JA를 통해 구입해 판매하고 있다.
또 고객과의 연락판을 설치해 고객의견을 반영하고 있으며, 요리교실·농산물 판매체험 등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홍보에 활용하고, 남은 식재료는 음식으로 만들어 지역주민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은 소포장에 쓰이는 비닐봉투부터 대용량 박스 포장지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소재와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교토시 인근 가메오까시에 위치한 교토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농축산 직판소인 다와와 아사기리 매대에는 막 수확된 엄선된 농축산물들이 진열돼 있다.
가정에서 만든 쌀가루로 쫀득쫀득한 쌀빵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현장에서 무료로 정미해 판매하는 쌀 공방, 일본 전역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가메오까 소, 갓 짜낸 우유를 한가득 사용해 만든 아이스크림 등이 호평을 받고 있다.
2009년 오픈해 6년째를 맞이하는 직매장은 900농가들이 등록돼 계약재배를 통해 출하하고 있으며, 안전한 먹거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연간 4회 품목당 무작위로 10개의 샘플을 채취해 샘플링 30만원 가량의 검사비를 지불하고 잔류농약검사를 실시해 적발되는 농가들은 철저하게 출하를 금지시키고 있다.
7~9시에 출하해 5시에 문을 닫는데 매주 수요일이 정기휴일이며, 7~8월 성수기는 휴무가 없다.
이처럼 철저한 품질관리와 소비자들에 대한 먹거리 교육, 다양한 농사체험으로 연간 30만명 이상이 매장을 찾고 있으며, 지난해 12억엔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곳에서는 당일 제분한 쌀원료에 1%의 글루텐을 첨가한 쌀빵, 3억5천만원을 투자해 도입한 도정설비에서 고객들에게 현미를 무료로 제분해주는 정미기, 발군의 신선도를 자랑하는 교토야채가 관심을 받았다.
#JA 오우미후지 파머스마켓 오우민치
시가현 모리야마시에 위치한 파머스마켓 오우민치는 직매장과 레스토랑이 결합된 형태로 2008년 오픈했다.
농협과 농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지역적 향토음식과 채소를 활용한 식단을 제공하는데 인건비를 줄이고자 손님들이 직접 접시에 음식을 담아 가는 뷔페식 식단과 식사후 식기반납, 잔반 남기지 않기를 실천하고 있다.
또 미래 고객인 후세들에게 올바른 식습관을 길러주고자 먹거리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아침을 먹지 않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밥차를 운영해 1천원짜리 카레라이스를 판매하고 있는 등 장래를 대비하는 모습은 고서농협이 나아갈 미래를 제시해주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오우민치와 연계해 농산물을 판매하는 하야시씨 농장을 견학했는데 그는 도회지 생활을 접고 귀농 7년차에 접어든 60세의 풋내기 농사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거나 일본 사람들이 즐겨 먹지 않는 작물을 심는 등 블루오션 전략을 선택해 재미를 보는 영리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2008년 퇴임하고 귀농에 접어들자마자 5월에 오우민치가 문을 열어 농협에서는 하야시상을 위해 오우민치가 문을 열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정도였다.
우선 조상 대대로 재배했던 가지를 개량해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조리된 이후에도 모양을 유지하는 ‘도로나스비’ 재배를 확대했다.<도로는 참치 흰 뱃살 부위>
처음에는 시장에 내다 팔 생각이었지만 주변의 권유로 시장과 직매장 출하를 병행하기로 방향을 수정해 8할을 직매장에 내고 있다.
그가 직매장 비율을 높인 이유는 시장은 수요일과 금요일 문을 닫지만 직매장은 노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1.5㏊의 논과 밭에서 30가지에 이르는 작물을 재배하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채를 심고 농한기인 겨울에는 유채를 심어 돈을 번다.
유채는 어린 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팔고, 꽃이 피면 꺾어서 직매장에 내다 판다.
뿐만 아니라 하우스 1개동에서도 오이, 호박, 고추, 토마토를 한줄 또는 두줄씩 재배하는데 고추의 경우 매운 맛을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감안해 맵지 않고 아삭아삭하면서도 씨가 적은 고추를 예닐곱개씩 포장해 2천원 정도의 높은 가격으로 하루 100~150개씩 판매한다.
심지어 하우스 앞에 아무렇게나 심어진 화초에서 꽃이 피면 관상용으로 놔두지 않고 직매장으로 가져가 돈을 번다.
넓지는 않지만 주어진 경작지를 최대로 활용해 끊임 없이 소득을 창출하는 하야시씨의 모습에서 고서농협 로컬푸드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부녀회 중심의 이즈미노사토 미찌노 에끼
미찌노 에끼는 휴게소가 없는 국도변 여행을 꺼리는 운전자들을 유인하고자 행정이 10억원을 지원해 주차장과 휴게시설, 지역홍보관, 농특산물 직판장 등을 조성한 국도변 휴게소다.
이즈미노 사토는 2001년 부녀회원들이 조직한 농업회사법인으로 고향의 날을 운영하며 먹거리 교육을 실시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연간 7억5천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오카다 부녀회장에 따르면 1990년대 건강검진을 계기로 식생활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농업법인이 탄생하게 된다.
오오사카 부에서 컨설턴트를 초빙해 2년간 교육을 실시했는데 30가지 종류의 음식을 먹기 위한 준비과정을 부녀회가 주도했다.
이들은 소규모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식문화 개선에 열중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품화되지 못하는 농산물의 가공에 관심을 갖게 됐다.
25년전부터 소비자들이 별로 찾지 않는 여름밀감, 산머위, 산초열매, 상품성이 떨어지는 산수유열매 등을 가공해서 농협의 협조를 얻어 1주에 1회꼴로 내다 팔기 시작했다.
또 가공품만으로는 소비자들을 유치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꽃과 야채, 과일 등으로 품목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소규모 그룹형태로는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친 후 2001년 회사법인을 설립했다.
그러나 열풍처럼 늘어나는 직매장으로 소비자가 급감하면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고, 이를 타개하고자 2년전 여름밀감을 껍질째 가공한 드레싱을 개발해 차별화를 이루게 됐다.
이 드레싱은 밀감에 버질허브를 넣은 매콤한 맛을 내는 것까지 버전이 향상됐는데 다양한 요리에 조미료처럼 사용되는데다 오직 이곳에서만 판매되기 때문에 덤으로 다른 농산물의 판매를 부추기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참신한 아이디어에 지속성이 가미되고 생존에까지 적합한 모범사례라고 생각됐다.
#연수를 마치며
일본의 농협과 농민들은 생존을 위한 끊이지 않는 통폐합 과정과 농업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로컬푸드 직매장을 창안해냈다.
일본 농협과 직매장 관계자들은 직매장 운영에 대하여 ‘연·개·소·문’ 4문자를 들려줬다.
유연하게 듣고 좋은 점을 흡수하며, 다른 고장과 직매장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로 대하고, 작게 시작하되 반드시 자기만의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연수에서 둘러본 직매장이나 농업인들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다른 것들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고 좋은 점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한 자기만의 특화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들이 가꿔 놓은 이 유산을 어떤 식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들은 먼 훗날 고서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의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