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유기농 포도로 제조한 고서와인 ‘가능성 있다’
<기획취재>유기농 포도로 제조한 고서와인 ‘가능성 있다’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09.01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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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블루베리 와인산업 연재순서>

1. 순창 쌍치면 블루베리 와인산업

2. 충북 영동군 포도 및 와인

3. 일본의 포도·와인산업 현황

①야마나시현의 산토리사와 메르시안사

②북해도의 삿포로사와 북해도와인(주)

4. 고서면 포도 와인산업

5. 미국 나파밸리의 포도 와인산업

6. 나파밸리의 포도산업과 관광·레저

7. 담양과 순창의 나아갈 와인산업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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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A 이후 수입포도 증가, 대체농산물 시장잠식 심각

작년 고서포도 136농가 59㏊ 중 45농가 22㏊ 폐업

와인·잼 등 가공, 체험관광 결합한 6차산업화 바람직

 

박일주씨 포도와인 제조 첫시도…직거래·백화점 납품

지난해 1만5천원에 3천병 판매, 올해 2천500병 예상

다양한 맛 와인, 설탕 첨가하지 않는 와인 생산 과제

 

 
#고서면 포도재배 현주소

담양군 고서면에서 포도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서면은 광주광역시와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광주호를 끼고 남면의 소쇄원과 한국가사문학관에 이르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덕분에 로컬푸드와 음식점 등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농업분야에서도 근교농업이 발달했는데 검은 토양과 비교적 큰 일교차, 좋은 일조량이 포도재배에 적합해 ‘구름다리포도’라는 이름으로 재배된 캠벨포도는 도로변 직거래(40%)와 공판장 출하(60%) 등의 방법으로 좋은 가격에 팔려나가며 포도농사가 활기를 띠게 됐다.

재배기술도 노지재배에서 1990년대 말부터 품질 향상과 안전수확을 위해 간이 비가림하우스로 전환돼 현재는 비가림하우스가 모든 농가들에 정착됐으며, 1999년부터 포도축제를 개최(2001년 이후 격년제)해 오고 있다.

그러나 2014년까지만 해도 136농가가 59㏊를 재배하던 고서면의 구름다리포도는 FTA 및 수확기 홍수출하로 인한 가격부침 등으로 폐업지원 대상으로 분류돼 지난해 45농가 22㏊가 폐업하는 진통을 겪었다.

금년에는 470톤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생과에만 국한된 판매방법으로는 또 다른 시련에 봉착할 개연성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로 가락시장의 평균 포도 도매가격은 상품을 기준으로 1㎏당 2013년 5천188원, 2014년 5천278원, 2015년 5천348원으로 외견상 꾸준한 상승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가격대를 유지하는 주된 이유가 소비량 증가에 따른 자연스런 가격인상이 아니라 폐업농 증가에 따른 생산량 감소로 인한 공급량 조절에 기인한 측면이 강한 것에 비춰보면 국내 포도농업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더욱이 FTA 발효로 2000년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수입포도, 체리 등 대체농산물들의 시장잠식도 포도농가들의 주름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담양군은 올해 포도시장 도매가격을 ㎏당 4천원대로 예상하고 있으며, 캠벨포도가 본격적으로 출하되게 되면 4천원 이하로도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2015년에 45농가(22㏊)에 폐업지원금으로 13억2천100만원을 지원하는 한편 농가들을 대상으로 와인이나 농축액, 잼 등 가공·판매는 물론 체험 및 관광과 결합한 6차산업화로 나아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유기농포도 와인

고서에서도 폐업 포도농가가 늘어가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유기농포도를 원료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유기농 명인 박일주씨가 주인공이다.

박일주 명인이 위기의 고서포도 생산농가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구자인 셈이다.

충북 영동 와이너리, 일본 야마나시현의 산토리사와 메르시안사, 북해도의 삿포로사와 북해도와인 생산공장을 취재한 경험을 밑거름 삼아 고서면의 포도 와인산업의 현주소를 엿보기 위해 고서와인 생산 현장을 찾았다.

고서면 분향리에 소재한 ‘아침이슬 포도원’에서 생산되는 ‘고서와인’은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포도를 원료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와인이다.

전환기 무농약(1천200평)과 유기농(1천300평)으로 재배한 캠벨얼리 포도 10톤 가운데 3톤을 와인의 원료로 사용한다.

생산자인 박일주씨는 송이모양이 좋은 것은 ㎏당 7천원(5㎏ 1상자 3만5천원)대에 생과로 판매하며, 수분단계에서 강우나 저온 등으로 송이가 제대로 모양을 갖추지 못한 착과 불량과(농업인들은 ‘헐렁이’라 부른다)를 가공, ‘고서(goseo)와인’이라는 상표를 부착해 750㎖ 1병에 1만5천원에 판매한다.

상질의 생과용 유기농 포도 1㎏이 7천원대에 팔리는 점을 감안하면 착과불량과 1㎏를 가공한 와인의 부가가치가 얼마나 큰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판매처는 백화점 납품이나 소비자들에게 직접 주문을 받아 판매하는 직거래가 대부분으로 지난해에는 3천병을 판매했고, 금년에는 2천500병을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판매호조에 힘입어 500㎖ 제품도 생산하고 가격도 2020년부터 인상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되도록이면 농사를 지어서 바로 내놓지 말고 가공해서 판매하는 것이 좋다”며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에 휘둘리지 말고 소비자가 찾는 제대로 된 농산물을 생산해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서와인의 탄생

고서와인의 탄생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일주씨는 ‘약을 치지 않으면 포도농사가 어렵다’는 속설을 깨고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농약 재배에 성공했지만 자신의 귀한 무농약 포도를 제값에 사줄 마땅한 판매처를 찾지 못했다.

어렵사리 광주에서 친환경농산물을 판매하는 청과상과 연이 닿아 ㎏당 6천원에 거래했는데 네번째부터는 4천500원으로 가격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들어와 딱 잘라 거절했다.

자신의 포도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는 대신 주된 판매처를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2009년 전남대학교 농업생명대학이 1년 과정으로 운영하는 가공과정을 수강하며 와인제조에 필요한 체계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 2010년 주류면허를 얻어내 현재까지 전남에서 유일한 주류면허를 가진 와인농가로 남아 있다.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생과로 부적당한 포도 몇 백㎏을 와인으로 담가 항아리에 넣고 헛간에 보관했는데 위생적으로도 그렇고 남들이 보기에도 문제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발효실과 숙성실을 갖춘 30평짜리 건물을 짓고 기계설비와 발효통, 숙성통을 마련했다.

지금은 고서와인의 판매에 힘입어 지하 20평짜리 숙성실을 증설해 연도별로 생산된 와인을 보관하고 있다.

숙성실을 증설한 것은 자신의 와인을 5년 이상 숙성시키기 위함인데 와인 감정사로부터의 숙성기간이 긴 것일수록 깊은 맛이 난다는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17~19브릭스의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해 깨끗하게 씻어내고 알멩이를 으깬 다음 설탕과 효모를 첨가해 발효시키는데 포도 10㎏에 흰설탕 300g과 효모 2g, 소독제인 식용 아황산염 2g의 비율을 유지한다.

그의 와인은 떫은 맛이 나는데 떫은 맛을 고집하는 이유는 외국인들이 단맛보다 떫은 맛을 선호해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와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발품을 팔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경북 영천이나 충북 영동, 전북 무주는 물론이고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위스 등 이름난 곳은 모두 다녀왔다.

광범위한 벤치마킹을 통해 배운 점은 행정이 주도하고 대형설비가 도입되면 좋은 와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품 와인들은 5톤 미만의 설비에서 나옵니다. 월급받는 공무원들은 깊이 있게 알려 하지 않고 대용량 설비들은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미약하지만 고서와인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박일주씨는 자신이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포도만을 와인의 원료로 사용한다.

지금은 연간 생산량이 2천500~3천병에 머물지만, 나중에 자신이 인정하는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생산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5천병까지 늘릴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공중파 TV를 탄 이후 유학생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출신의 신부님들이 자주 찾아와 ‘캠벨와인은 향이 좋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며 “좋은 와인을 만들어 외국의 유명한 와인들을 이겨보겠다는 꿈이 있기에 국제 규격에 맞는 와인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서와인의 향후 과제

박일주씨는 소비자들이 찾는 제대로 된 농산물을 생산하게 되면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새로운 시장을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비단 포도산업만이 아니라 FTA로 인한 수입농산물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업인들의 형편에 비춰보면 박씨의 소신은 우리나라 농업이 나아가야 할 길라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심혈을 기울여 실험하고 체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기농법을 확립하고 거리를 불문하고 좋은 것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익힌 노력으로 빚어낸 고서와인은 익숙치 않은 떫은맛의 와인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다만 국내 유일의 유기농포도를 원료로 사용해 만든 와인이라는 희소성에 비해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일반화된 방식을 답습하고, 떫은맛 한가지만을 생산하는 점은 아쉬웠다.

설탕과 효모 등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발효로 당도를 맞춘 다양한 맛의 와인을 만들어 낸다면 얼마든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유기농포도를 원료로 사용하면서도 당도를 맞추기 위해 설탕을 첨가하는 제조방법 또한 극복해야할 숙제다. 따라서 유기농포도 두배를 원료로 사용하더라도 농축시키는 과정을 통해 당도를 맞춰나간다면 세계 유일의 친환경 와인이 탄생될 것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와인과 견주어도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물론 박일주씨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모두 이뤄내기 어렵기 때문에 행정과 농협, 대학 등 연구기관들이 힘을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

폐업지원금으로 공급량을 조절하는 것이 그동안의 1차원적인 대책이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유기농포도는 희소성을 살려나가고 일반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들은 생과와 가공품으로 팔려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협이나 대학 등 유관기관들과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에 나서는 보다 고차원적인 정책으로 전환해야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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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주씨의 포도농사 노하우

 

“흙이 좋으면 나무가 건강해집니다”

비료·농약·한방액비 대신 포도원에 잡초 심고 퇴비 듬뿍

3년 간격 갈아엎어 건강한 토양 조성…유기농 포도 완성

 

고서와인은 유기농포도를 재배하기 위한 토양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흔히 ‘유기농’ 하면 떠오르는 것이 화학비료를 대신해 퇴·액비를 주고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해 농약이 아닌 한방제재나 친환경 약재를 뿌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일주씨는 이런 기존의 농법들을 완전히 무시한다.

“수년간 이것저것 해 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 두럭은 영양제와 한방액비를 사용하고 다른 쪽은 아무것도 안했는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좋은 토양을 만들려면 5~6년은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는 야산에 두껍게 쌓인 부엽토 덕분에 어떤 나무든지 잘 자라는 것에 착안해 과일에 퇴비를 도입하기로 결심했다.

‘흙이 좋으면 나무가 건강하다’는 소신을 갖고 질소비료를 주지 않고 바닥의 풀도 베지 않았다.

박씨가 자신의 땅에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레드클로버는 뿌리가 굵고 크며 30㎝까지 뿌리가 자라는데 갓은 1m, 피도 뿌리가 깊게 들어갔다.

박일주 명인은 이런 결과에 따라 자신의 포도원에 레드클로버를 심고 잘 부숙된 퇴비를 뿌리고 3년에 한번 꼴로 땅을 갈아엎었다.

이렇게 했더니 잎이 작고 두꺼워져 벌레가 잘 끼지 않았으며, 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연한 풀들은 벌레의 먹이가 돼 포도의 병충해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습기를 보호하는 기능까지 있어 건조피해를 막아주었다.

여기에 숯과 자갈, 맥반석을 이용해 직접 제작한 자연 정화장치를 만들어 지하수를 여과하게 하고 관수기를 통해 나무들에게 공급했다.

박일주씨는 “구체적인 데이터는 없지만 물도 그냥 주지 않고 정화시켜 주는 것이 나무들에게 더 좋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며 “농업은 자기가 직접 실험하면서 고장의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방법과 기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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