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지도>96. 소리꾼 자수장(刺繡匠) 김영희씨
<인물지도>96. 소리꾼 자수장(刺繡匠) 김영희씨
  • 담양군민신문
  • 승인 2017.05.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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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소리꾼 자수장(刺繡匠) 김영희씨
“수놓는 작품활동을 위해 생활은 소리로 합니다”

 

옷감이나 헝겊 따위에 여러가지의 색실로 그림, 글자, 무늬 따위를 수놓는 일을 ‘자수(刺繡)’라고 한다.


시집갈 날을 받아놓은 누님이 밤새워 가며 수(繡)를 놓던 모습이 기억의 저편에서 아른거린다. 그 시절의 처녀들은 내 누님 같이 스스로 수를 놓아 혼수(婚需)를 마련했었다. 베갯잇은 기본이고 시부모에게 드릴 병풍도 만들었다. 베갯잇은 베개의 겉을 덧씌워 시치는 헝겊을 말하는데 이 말을 써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베개는 대개가 라텍스 같은 기능성베개들이다.


요즘 사람들은 수를 놓지 않는다. 만약 그런 물건이 필요하다면 돈을 주고 구입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물건들에 그려진 그림들은 한 땀 한 땀 사람이 수를 놓아 그린 이른바 ‘손수’가 아니라 ‘기계수’다.


담양읍내 승일식당 바로 옆에 ‘김영희 갤러리’라는 간판을 내건 작업실이 하나 있다. 이 작업실의 주인은 소리꾼이며 자수장인 김영희(58)씨다. 갤러리의 벽에는 그녀가 수놓아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고, 손님을 맞이하는 작은 방 한가운데는 북 하나가 놓여있다. 판소리 반주에 쓰는 소리북이다.


그런데 이 소리북이 다탁(茶卓)이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주앉은 사이에 북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갈색빛깔의 차가 담긴 잔이 올려졌다. 고욤나무 잎으로 만든 차인데 김 씨가 손수 만든 차다. 틈틈이 차를 만드는 것은 김씨의 또 하나의 취미다.


“오월 중순경의 감나무 잎이 제일 좋습니다. 잎을 따 그늘에서 하루 이틀 말리면 쭈글쭈글해지는데 이걸 조심스럽게 비벼 또 음건을 합니다. 음건한 잎이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면 그때 약한 불에다 빠르게 덖어내면 됩니다.”


고지혈증에 좋다는 고욤잎차를 마시며 자수 이야기를 나눈다.


“예전의 처녀들은 혼수로 신방에 놓을 부귀목단(富貴牧丹) 병풍, 시부모에게 드릴 천년송학(千年松鶴) 병풍을 준비하고, 구봉침(九鳳寢)이라고 해서 봉황 한 쌍에 새끼 일곱 마리를 수놓은 베개, 부부가 함께 쓸 보통보다 좀 긴 원앙침, 시집살이를 견디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백내침(百耐寢)을 기본으로 준비했습니다. 원앙침은 첫날밤 한번 쓰고 나서 장롱 깊숙이 보관하기 때문에 농지기라고도 합니다.”


김씨의 친정집의 가업은 수를 놓는 일이었다. 직원을 여럿 데리고 수를 놓아 가게에 납품하는 일종의 수 공장이었다. 맏언니는 30명의 직원을 데리고 특별한 자수 일을 했다. 일본에서 보내온 천에 수를 놓아 다시 일본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그 천으로 그들의 전통의상 기모노를 만들었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20대 때는 ‘난설동양자수원’이라는 학원 겸 가게도 운영했다.


그런데 김씨는 마음속에 또 하나의 꿈을 품고 있었다. 가수가 되고픈 꿈이었다. 이미자, 조미미를 좋아했다. 어느 날 목포MBC가 주최하는 노래자랑에 나가 2등상을 받았다. 소감을 묻는 MC에게 국악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아마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대금을 아주 잘 부셨거든요.”


김씨는 수놓는 일을 잠시 접고 목포시립국악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소리꾼 안애란(무형문화재29호)의 제자가 되었다. 안애란으로부터 춘향가와 심청가를 배웠다. 안애란의 심청가는 동편제 김세종의 맥을 잇고 있다. 서울로 가서 흥보가, 수궁가를 배웠다. 이 또한 동편제다. 서편제가 여성적이라면 동편제는 남성적이다.


“진도에서 소리공부를 하고 있는데 우연찮게 담양과 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남산리 용화사 주지스님의 ‘금란가사’에 수를 놓게 된 것입니다.”


금란가사는 용화사의 대덕 묵담스님이 입었던 것이다. 이 가사는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용화사 현 주지 수진스님이 입게 될 가사였다. 2003년 담양에 와서 방을 하나 얻어 살면서 꼬박 100일이 걸려 금란가사 수놓는 일을 마쳤다. 사천왕의 눈썹과 수염을 섬세하게 나타내기 위해 일반 색실이 아닌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수를 놓았다.


“일을 끝내고 고향집 목포로 가려니까 수진스님께서 전생의 고향이 담양인데 가긴 어딜 가요? 원래 고향 찾았는데.... 이러셨습니다.”


김씨는 그 길로 담양에 눌러앉았다. 죽녹원 뒤편에 있는 시가문화촌 안에 있는 우송당에서 4년을 살았다. 낮에는 학생들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밤에는 수를 놓았다.


“혼자 있기 때문에 밤에는 무서워 한 걸음도 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수를 놓으면 무섬증도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때 가장 열심히 수를 놓았던 것 같습니다. 우송당에 들어갈 때는 살림이 단출했는데 나올 때는 몇 배로 불었습니다. 살림의 대부분은 수놓아 완성한 작품이었습니다.”


100여점이 넘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본떠 수로 놓았다. 춘향가 중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을 나누면서 부르는 ‘사랑가’ 대목을 상상하여 수를 놓았다. 이 사랑가 작품으로 그녀는 2016년 대한민국공예예술대전에서 대상을 받는다. 아울러 대한민국공예예술대전의 추천작가로 이름을 올린다.


대상을 받은 작품 속에는 이도령이 있고, 가야금을 연주하는 춘향이가 있고, 두 사람 등 뒤에는 천년송학 병풍이 펼쳐 있다. 수를 놓은 것이 아니라 세필로 꼼꼼히 그려놓은 그림 같다.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매도 내 사랑아.> 중중모리 가락으로 사랑가를 부르는 이도령과 춘향이의 모습이 참으로 섬세하고 생동감이 있다.


‘미인도’, ‘사랑가’ 등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그녀는 자수장이라는 이름도 함께 얻었다.


“큰 상을 받고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니까 수놓는 일이 예전보다 많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내 작품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도 생겼고요. 요즘 수놓은 작품들은 팔지 않습니다. 작품이 많이 모아지면 내 개인의 이름으로 전시회도 한번 갖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생활은 어떻게 꾸려 가나? 나의 현실적인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아주 간명하게 답했다.


“수놓는 작품활동을 위해 생활은 소리로 합니다.”


수도 놓아야 하고, 여기 저기 공연도 다녀야 하는 그녀의 한 주일은 부산하게 돌아간다. 월요일에는 ‘신나는 예술학교’ 강사로 전국을 돌아다닌다. 화요일에는 담양 김영희갤러리에서 학생들에게 소리를 가르친다. 토요일에는 무안에서 수업이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 행사(초청공연)도 뛰어야 한다. 이렇게 부산하게 그녀의 마음에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눈이 더 침침해지기 전에 관음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관음도를 제대로 완성하려면 서른여섯 분의 부처님인데 그것은 엄두가 안 납니다. 우선 열두 분을 하려고 하는데 한 6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앞으로 6년 후, 김 씨의 관음도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선보일까?

*이 글은 2017년 5월 17일 현재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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