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인물지도> 102. 담양의 선비정신을 화폭에 담는 화가 송필용 씨
<담양인물지도> 102. 담양의 선비정신을 화폭에 담는 화가 송필용 씨
  • 설재록 작가
  • 승인 2017.07.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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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참 그림은 무엇일까, 늘 고민합니다.”

<송필용 작가는 초년작가 시절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나 역시 송필용의 작업과 삶, 그 작품세계의 변이를 비교적 오랫동안 지켜보아온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작가정신을 여물게 하고 생성의 토대가 된 담양시절은 송필용의 예술세계의 잉태시기이자 앞으로의 방향을 예감케 한 시기이다. 돌담을 돌아가면 옛 우체국 자리에 화실을 열고 열심히 그리던 청년 송필용이 떠올려진다. 그때부터 특유의 자기세계를 갖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늘 신뢰감을 갖고 접근하였다.


그의 서가에는 겸재 정선에 대한 화집과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무게 있는 서책들이 그리고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저서들이 꽂혀있었다. 5.18현장을 목격하며 대학을 다녔던 그로서는 많은 회의의 시절을 겪었을 터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전국토를 발로 밟는 길을 택했고 운주사, 황토현, 백아산, 월출산을 밟으며 흙의 소리를 듣고 강토의 역사를 눈으로 보았다. 그가 잡은 큰 주제는 ‘땅의 역사’였다./이석우(겸재정선미술관장)>


화가 송필용(59) 씨는 담양사람이 되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담양 대덕 매산리에 화실을 꾸렸다. 그 세월이 어언 30년이 다 되었다.


“1990년 봄 어느 날,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 소쇄원 등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담양의 정자는 문학의 산실이나 풍류의 공간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담론도 펼쳐졌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담양의 정자는 선비정신의 표상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화가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담양의 선비정신을 화폭에 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곧바로 담양 대덕 매산리에 화실을 꾸렸습니다.”


송씨의 화실에는 신안군 하의도에서 그렸다는 인동초 그림이 걸려 있다. 하의도는 목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다. 그리고 인동초는 이름 그대로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꿋꿋이 이겨내는 풀이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화실에 걸려 있는 그림이 왜 하의도에서 그린 인동초일까?


“대학 4학년 때 5.18을 경험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사회적 복무를 어떻게 해야 할까 번민하며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하의도의 인동초는 고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하며 그린 것이 맞습니다. 하의도와 인동초는 단순히 전라도사람의 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우리 현대사의 올곧은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번민의 시간을 보낸 송 씨는 전시를 거듭하면서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살려는 의식 있는 화가>, <뚜렷한 역사 지향성을 가진 화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1989년, <땅의 역사전>(나우갤러리, 인재갤러리)에 선보인 작품은 그의 역사 지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6m나 되는 긴 화폭에 조선후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격류를 파노라마처럼 그려냈다. 또한 1992년 금호갤러리의 전시회 때는 황매천, 전봉준 같은 역사의 선각자들, 화순 운주사의 돌탑과 함께 등장한 이름 없는 민중이나 농투산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땅이든 사람이든 서사적으로 그려내려 했던 그는 대덕 매산리에 화실을 꾸리고 나서는 자연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매산리로 들어오기 전에는 10여년 동안 땅의 역사 시리즈를 줄기차게 해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또 다른 작품세계로의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담양의 정자에서 선비정신을 발견한 겁니다. 저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담양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자가 대나무나 소나무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은 다시 말해서 자연과 정신의 합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산리 화실에서 소나무와 대나무를 그리고, 그 속에 선비정신의 상징인 면앙정, 소쇄원, 식영정 등을 그릴 즈음 송 씨는 이런 작업일기를 남긴다.


<낮과 밤 사이 무수한 생명체들의 활동을 관찰하면서 우리 삶의 본질의 기록을 찾고 그 감동의 울림과 정감을 그려내는 것이다. .........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남도 땅의 황토밭들과 언덕, 이름 없는 야산, 들, 숲, 개울, 잡초, 다양한 나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인간들의 얼굴 등등../1994.1.1 작업일기 중에서>


필자와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송씨는 퍽이나 조용하다. 그림으로만 대할 때는 조금은 강하고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짐작했었는데 만나보니 그것이 아니다. 아주 부드럽고 자신의 생각도 아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런데 그 조용하고 조심스런 말 속에 예리함이 번득인다.


“사람에 따라 정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겁니다. 조선시대 지배층들의 풍류의 공간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시가문학의 산실로 보기도 할 겁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불의에 저항하고 의로움을 지키려는 선비들의 담론의 공간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 가운데서 어느 시각이 옳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이들의 생각을 어떻게 화폭에 담느냐 하는 것을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 고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담양사람이 되어야겠다. 담양사람으로서 담양의 진정한 선비정신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겠다, 그것을 화폭에 담아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매산리에 들어왔으니까요.”


이런 마음으로 시작된 송 씨의 작업은 1998년의 전시회로 결실을 맺게 된다. 1998년 12월, 서울 종로구 데미화랑에서는 <송필용, 歌辭 文化의 詩情>이라는 타이틀로 송 씨의 개인전이 열린다. 이 전시를 가지면서 송 씨는 자신이 화가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이렇게 술회한다.


“진정 나는 화가로서 몫을 다하고 있는가. 저 땅 위에 뿌리 내릴 이 시대의 참 그림이 무엇일까? 물길 따라 이루어진 땅의 역사, 물의 흐름과 그 조화 속에서 일어선 별빛처럼 고운 정자문화의 숨결, 우리네 삶의 정신이 어우러진 곳, 저 물의 생명력처럼 빛을 발하는 역동으로써 우리 정신의 풍광을 짚어보고 그려본다.”


송씨가 늘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의 참 그림은 무엇일까?’라고 한다.
“참 그림은 무엇이고 참 그림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요?”
필자의 질문은 현문일까, 우문일까?


“그걸 알게 되면 화가가 아니라 신(神)의 되는 거죠. 참 그림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는 숨이 멎어 붓을 놓을 때까지 그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숨을 쉬고 있을 때, 열심히 그리고 또 그려야겠죠. 결국 그 해답을 못 찾을 줄 빤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화가 송필용의 그림, 담양의 선비정신이 담긴 그림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일민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청와대, 미술은행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글은 2017년 7월 18일 현재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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