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인물지도>110. 천에 자연을 물들이는 김명희씨
<담양인물지도>110. 천에 자연을 물들이는 김명희씨
  • 설재록 작가
  • 승인 2017.11.01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옷감에 자연을 옮겨 놓은 것이 자연염색입니다”

 

연꽃을 구경하기 위해 연못가에 지어 놓은 정자를 연당(蓮堂)이라고 한다. 용면 두장리에도 ‘연당’이 있다.


그런데 이곳 두장리의 연당은 ‘연당(蓮堂)’이 아니라 ‘연당(然堂)’이다.


“연당은 절친한 후배가 지어준 또 다른 제 이름입니다. 제가 하는 일을 보고 지어준 것인데 자연을 물들이는 집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김영희(63)씨가 하고 있는 일은 염색이다.


“염료에는 합성염료와 자연염료가 있습니다. 합성염료는 쉽게 말해서 여러가지 것을 혼합해 인위적으로 색을 만들어 내는 인공염료라고 할 수 있고, 자연염료는 이름 그대로 우리 자연물의 색을 천에 물들이는 것입니다. 화학염료는 착색도 쉽고 햇빛에 노출시켜도 탈색의 염려도 없는 아주 실용적인 염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십년 넘게 오로지 자연염색만 해오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에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염색을 해봤는데 그때 염료가 맨드라미꽃과 치자열매였습니다.”


자연염료는 성분에 따라 동물, 식물, 광물 등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김명희씨는 주로 광물염료인 황토와 식물염료인 댓잎과 대나무를 가마에 구워 만든 숯을 쓰고 있다.
김씨가 태어난 곳은 월산면 화방리다. 이곳에서 자라고 학교도 다녔다. 그러다가 부친이 별세하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빠가 살고 있는 강원도로 전학을 갔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제가 다른 사람보다 호기심도 많고 좀 별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합니다. 도전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바느질 같은 데 취미가 있어서 밤을 새가면서도 했습니다.”


이십대 초반, 김씨는 취미 삼아 동양자수를 배웠다.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인데 금방 익혔고, 오래 한 사람들보다 더 잘 했다. 김씨에게 동양자수를 가르쳐 준 사람은 당시에 한복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날 이 한복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그만 두고 자리가 비자 김씨는 이곳에 취직이 되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바느질을 했는데 일년도 안 되어 재단도 하고 손색없는 기술자 대접을 받았습니다. 제가 일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이왕 한복 일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씨는 서울로 올라가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 그리고 1986년에 담양으로 내려와 ‘에덴한복집’을 열었다. 그러면서 주기적으로 서울로 올라가 공부를 했다. 이때 염색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염색에 대한 강의가 있다면 광주든 서울이든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알고 싶은 것도 많아졌습니다. 당시 교수님께서 저를 가리켜 질문을 가장 많이 하는 학생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공부를 하고 나니까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8년, 김씨는 ‘한국의상대전(천연염색부문)’에 출품하기 위해 천에 물을 들이고 그 천으로 옷을 만들었다. 김씨가 만들기로 한 옷은 ‘당의(唐衣)’였다.


당저고리, 당적삼, 당한삼이라고 하는 이 옷은 저고리 위에 덧입는다. 왕비, 공주, 옹주 들이 입는 이 당의는 시용된 색에 따라 연두당의, 자주당의, 남송(南宋:노랑)당의, 백색당의로 나누어진다. 형태는 저고리와 비슷하나 앞길과 뒷길이 저고리보다 길어 무릎 근처까지 닿으며, 도련은 둥근 곡선으로 되어 있다. 옆은 진동선 이하가 트여 있어 앞길이 좌우 두 자락, 뒷길이 한 자락으로서 모두 세락으로 되어 있다.


염색을 하기 위해 채상장(彩箱匠)‘ 서한규를 찾아갔다. 서한규씨는 김명희씨의 이모부로 인척관계였다.


“이모부님이 맨드라미와 치자로 염색을 하라고 하시면서 갖고 계시던 문양 책자를 주셨습니다. 그 책자 속에 소개되어 있는 문양 중 태극문양을 선택했습니다. 시간으로 볼 때 염색은 단시간에 끝나지만 바느질은 작품에 따라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도전한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상을 받고 나자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출토복식(出土服飾)에 도전하기로 했다. 출토복식이란 무덤에서 출토된 옷을 재현한 것이다. 김씨는 이 공부를 하기 위해 2년 동안 서울을 오르내렸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대표적인 결과물이 ‘도포’와 ‘방령포’다.


배천조(16~17세기) 묘에서 출토된 도포는 명주(겉감)와 무명(안감)의 겹 도포로 안감 속에 한지를 넣어 바느질을 했으며 황련과 쪽으로 염색한 것이다. 이용해(1547~1626)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방령포는 꼭두서니로 염색한 것이다. 꼭두서니는 여러해살이 덩굴풀로 주황색의 살찐 뿌리를 가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삼십년 넘는 세월 동안 염색과 관련한 제 삶은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염색을 고집하고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경제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염색은 합성염색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의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호하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어려운 까닭 가운데 하나다.
“자연염색은 현란하거나 선정적이지 않습니다. 자연을 닮은 염색이기 때문에 요란하지도 않고 아주 친근한 느낌을 줍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시류를 따라갈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의 전통이니까 누군가는 지키고 또 다음 세대에 전승해야 합니다.”
 

김씨의 아들 윤지환씨는 대학에서 염색을 전공했다. 그리고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자연염색 일을 하고 있다.
공방에는 김씨가 보물처럼 아끼는 작품 하나가 걸려 있다. ‘땀솔’이라고 하는 기법으로 바느질을 한 것이다. 땀솔은 박음질 실이 안 보이게 감춘 기법이다.


“바느질을 하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팔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안 팔았습니다. 다시는 못 만들 것 같아서였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선물로 줄 생각입니다.”
실크에 댓잎으로 염색해 만든 발이다. 은은한 연두빛으로 물든 이 발은 김씨가 석 달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발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댓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이 글은 2017년 10월 26일 현재 이야기입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전남 담양군 담양읍 추성로 1379번지
  • 대표전화 : 061-381-1580
  • 기사제보 : 061-382-4321
  • 인쇄물,기념품,광고문의 : 061-381-3883
  • 팩스 : 061-383-211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재근
  • 법인명 : 담양군민신문
  • 제호 : 담양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232호
  • 등록일 : 2006-9-14
  • 발행일 : 2006-9-14
  • 발행인/편집인 : 최광원
  • 담양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담양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dy1@hanmail.net
ND소프트